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소설읽기 - 한애자의 [빵굽는 여인]..
기획

소설읽기 - 한애자의 [빵굽는 여인]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7/07 08:23

한애자의 소설 <빵굽는 여인> 제8회

 

노인숙은 자신의 소설의 내용을 잠시 중단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벼가 익어 곳곳에 허수아비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스물다섯 살의 자신의 모습, 이미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였을 때, 왜 감쪽같이 지우지 않았을까! 후회스럽다. 그것은 남자를 진정 사랑하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 후 임신한 그녀를 데리고 석호는 자신의 별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여자가 고마웠다. 그동안의 수없이 겪어온 마음의 고통, 자신이 정상적인 남자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괴로운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녀의 자궁에서 남자의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여자는 이 남자의 부와 명예를 꿈꾸었다. 이제 교사가 되는 것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였다.

세월이 흐르자 그녀의 몸은 만삭이 되었다. 곧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어 병원으로 옮기는 중 석호는 갑자기 사업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떠났다. 그가 속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해산 기운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여자는 홀로 쓸쓸하게 고통 가운데 아이를 가까스로 해산하였다.

아이를 해산하고 눈을 떠보니 텔레비전에서 사업이 부도가 나자 고층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한 어느 사업가의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바로 그 사업가는 ‘강석호’였다. 갑자기 부도가 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채무자들의 독촉은 아이를 가졌던 기대와 기쁨마저도 빼앗아 가버렸던 것이다.

‘내 인생을 망친 놈!’

여자는 저주를 퍼부으면서 통곡하였다. 그 후 3개월이 지나자 그녀는 그 동네 일대를 탐색하였다. 야산에 가까운 외딴 지역에 ‘해 돋는 집’을 발견하였다. 여자는 이른 새벽 아이를 강보에 싸서 출입문 앞에 놓았다.

“아 앙. 응아 응아…….”

새벽 공기 속에 아이의 울음은 싸늘하게 거리를 파고들었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눈물도 없이 주위를 살피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집안은 고요 속에 잠겼다. 숙희는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세리도 침대 밑에 쓰러져 있었고 침대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벌써 며칠이 지난 듯하였다. 그들의 맥은 움직이고 있었고 죽지는 않았다.

노인숙은 너무도 놀랐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곧 사람을 불러 병원에 입원시켰다. 세리도 장 선생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으로 옮겼다. 이제 잔뜩 꿈에 부푼 자신에게 숙희라는 계집 때문에 김이 세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분하였다.

“그렇게 세리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도대체 얼마나 먹을 것을 안 주었으면 이 지경이 되었을까!”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의 세리는 장 선생의 도움으로 서서히 기력을 회복되어 갔다. 노인숙은 숙희가 입원한 병원은 들르지 않고 세리의 동물병원을 더 자주 들렀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에 기진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세리가 죽었으면 정말 무슨 재미로 살아요?”

“무슨 재미로 살다니요? 재산가께서 아직도 청춘처럼 아름다우신데 인생을 맘껏 즐기셔야죠!”

장 선생이 살짝 윙크를 하면서 눈웃음을 쳤다. 그녀는 세리를 살려준 장 선생이 더욱 자랑스럽고 대단해보였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모닝커피 한 잔은 감미로움을 더해 주었다. 그들은 이어 바둑을 두기 시작하였다.

저녁 시간이 되자 그녀는 주변의 일식집으로 장 선생을 데리고 갔다.

“오늘은 세리를 살려 준 은혜로 최고급의 요리를 대접하고 싶어요.”

“아닙니다. 노여사가 그동안 매번 샀는데 이번엔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애완견 경진대회에서 메리가 일등을 해서 상금을 탔습니다 !”

줄곧 침묵하던 장 선생이 들뜬 음성으로 두 눈이 반짝였다.

“이제 애완견 훈련소를 차려서 본격적인 사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요? 앞으로 유망주가 될지도 몰라요. 요새 애완견 많이 기르잖아요. 추진해볼 만하지요!”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한 달이 지났다. 식사를 마치고 회복 중에 있는 세리를 돌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장 선생이 두 마리의 진돗개를 데리고 방문하였다. 밖에는 비가 내렸다.

노인숙은 두 마리의 진돗개를 주시하면서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하였다. 장 선생은 침대에서 상의를 벗은 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녀는 장 선생의 곁으로 다가가서 속삭였다.

“어머! 메리가 귀족스럽게 보이는군요!”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쳤다.

“동물병원을 처분하고 애완견 훈련소를 차리고 있는 중인데... 노 여사와 좀 상의해볼까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상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장 선생에게 갑자기 친밀감을 느꼈다.

“애완견 훈련소를 차리려는데 땅값이 너무 비싸서 원…….”

자금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 하시려고요!”

“고양시의 약간의 변두리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물색하고 있는 중이죠!”

노인숙은 장 선생의 애완견 사업에 대한 소리를 듣고 그 분야에 대해서 좀 알아보려고 서점에 들렀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서점에서 구매하여 테이블 위에 얹어 놓았던 『애완견 창업 성공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자! 한 번 읽어보세요. 모험을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 선생에게 책을 건네었다. 장 씨는 책을 대충 한번 죽 훑어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자금이 문제라니까!”

책에는 별로 관심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압박하였다.

 

그날 밤 노인숙은 장 선생에게 자신의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 주었다. 말하자면 재혼과 더불어 동업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잘생기고 매력적인 장 선생을 자기의 곁에 두는 것을 그녀는 진심으로 필요로 하였는지 모른다. 정보통신에 의하면 이곳 대전지역이 앞으로 세종시가 들어서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그곳에서 도시의 화려함을 꿈꿀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 장 선생의 사업부터 챙겨주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숙희가 눈을 떠보니 병원공기가 자신의 코밑을 스치기 시작하였다. 팔에는 링거 주사가 꽂혀 있었다. 창밖은 낙엽이 떨어지는 만추의 계절이었다. 제법 공기가 쌀쌀하여 스산하였다. 그녀는 고아원 시절의 춥고 쌀쌀하였던 날들이 떠올랐다. 저녁이면 연료를 아낀다고 난방을 가동시키지 않았고 아주 추운 12월부터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맘때의 해질 무렵이면 금세 쌀쌀함과 어두움이 밀려왔다. 너무 추워서 고아원의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배달되는 우유와 빵을 먹고, 슬프고 슬퍼서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 그 시절! 추위가 더욱 거세지면 교회에서 온 언니 오빠라면서 풍선과 선물을 한 아름 안겨 주었던 사람들! 그러나 그 밤이 지나면 그 사람들은 영영 보이지 않았다.

숙희는 슬픔이 밀려왔다. 자신은 언제나 울어야만 하는 비극배우였다. 저 창밖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신의 삶은 언제나 낙오되어 뒹구는 비참함을 느꼈다. 그런 자신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식사를 하였던 성석! 그 주인집 아들이 텅 빈 자신의 가슴에 작은 등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링거 병을 이동하며 병원의 뒷산 산책로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곳의 한 쪽에 통나무 의자에 자기 또래의 환자가 보였다. 얼굴이 몹시 창백하고 머리에는 수건을 둘렀다. 여자의 눈빛은 초점이 없이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하였다. 그 옆에는 애인처럼 보이는 청년이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다정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숙희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성석을 떠올려 보았다. 자석과 같이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찌개를 맛있게 먹어주어서인지 모른다.

“매일 빵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지겹고도 지겨워요. 제발, 이제 저 제빵 도구를 모두 처분했으면 좋겠어요!”

그날 그들은 매운 고추장에 열무를 비벼먹고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맛있게 잘 먹었다. 총각김치와 함께 먹음직하게 두 볼을 움직이며 맛있게 식사하였던 그가 정겹게만 느껴졌다. 그는 자신에게 언제나 ‘누님’이라고 호칭하면서 존댓말을 썼다. 숙희는 처음으로 자신이 여자로서 존경을 받아 행복하였다. 그는 요새 젊은이처럼 되바라지지 않은 모습이라 좋았다. 성석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깊은 우수가 깃들었다. 숙희는 언젠가 온 몸이 쑤시고 아파서 병원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었다.

“혈액에 염증이 생긴 병의 일종입니다. 과자나 빵에 들어있는 방부제를 많이 섭취하면 걸리게 되는 병이라고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희귀성 난치병의 일종 같습니다. ”

의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자신은 거의 빵으로 식사를 때울 때가 많았다. 명절 때나 특별한 때만 찌개로 밥을 먹었던 같다. 주인집에서도 상당히 많은 빵을 먹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주인여자가 대전에 내려가자 숙희는 자유롭게 마음껏 찌개를 끓여 먹었다. 정말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을 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을 바라보고 싱긋 웃었던 성석! 지금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날은 찌개와 사랑의 감미로움의 최대의 호화파티였다. 뱃속에 꿈틀거리는 이 생명을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야 한다. 성석을 닮은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강박관념처럼 마음이 조여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숙희는 배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 배가 상당히 불러왔다. 아비 없는 아기를 낳았다고 손가락질 당하면서 죽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포기하면 살 가망이 있다고 하였다.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