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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뻔뻔하고 도덕적이지 않은 우리네 민낯, 극단하땅세의 <그때, 변홍례>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7/16 06:14 수정 2019.07.16 08:00
2019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넌 왜 여기 쓰러져 있니?’를 처연한 질문을 우리시대에 던지는, 연극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극단 하땅세의 파격적인 연극 <그 때, 변홍례>가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욕망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자들의 수직 낙하쇼’를 선사하고 있다.

'그 때, 변홍례' 공연사진 1 /(제공=극단 하땅세)
'그 때, 변홍례' 공연사진 2 /(제공=극단 하땅세)

<그때 변홍례>는 1931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변흥례 하녀가 희생되고 확증이 있는 범인은 처벌받지 못한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에 관한 작품이다. ‘변흥례’라는 이름이 있지만, 일본어로 부르기 쉽게 ‘마리아’로 불린 한 사람의 이야기다. 먼 이야기 같지만, 태어난 시기로 보자면 우리네 할머니와 같은 시대의 한 사람이다.

'그 때, 변홍례' 공연사진 3 /(제공=극단 하땅세)
'그 때, 변홍례' 공연사진 4 /(제공=극단 하땅세)
'그 때, 변홍례' 공연사진 5 /(제공=극단 하땅세)
'그 때, 변홍례' 공연사진 6 /(제공=극단 하땅세)

<그 때, 변홍례>의 배우들은 무성영화처럼 죽음의 진실과, ‘변홍례’의 삶을 놀이로 장면화시키고 행동과 말투는 1930년대 신파조와 그 시절 말투로 표현한다. 배우들은 현대적인 변사로 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극에 개입해 등장인물 대사를 여러 배우가 맡아 전달한다.

이 작품은 ‘마치 탐정소설 같은’이라는 실제 신문기사의 글처럼 그 시대 대중문화인 무성영화의 촬영기법을 적극적으로 공연에 접목시켜 작품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시대의 가장 진정성 있는 표현방식이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와 재미를 주고 있다. 배우들이 알맞게 ‘재현(re-presentation)’한다는 느낌을 더욱 강조시켜, 작품의 허구성을 극대화시키며 ‘사과’와 ‘그림 속 사과’ 사이를 걷는 연극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소리와 빛의 활용은 단순한 효과를 넘어서 배우가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뒤쫓다가 어느 순간엔 앞서가며 ‘소리’와 ‘빛’ 자체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갖는다. 빛을 쫓아가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는 인간의 모습은 시대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인간의 비극일 것이다.

‘우연히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라고 이 작품을 일컫는 어단비 작가는 모든 만남 자체를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홍례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에게 변명할 거리를 주고 싶었다”며 착한 사람이 없는 이 연극이 보는 내내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침전되어 있는 ‘이기심’과 ‘인간의 욕망’을 흔들어 떠오르게 만들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홍례의 촛불이 꺼져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본인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작품의 드라마트루그를 맡은, 장르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 선욱현은 처음 어단비 작가에게 초고를 받아들며 빠르게 읽은 후 “이 신예작가의 당돌 단순한 스토리에 끌렸다. 일제 강점기라는 배경만 있을 뿐, 이건 오늘 우리 세상이야기였다. 모두 뻔뻔하고 도덕적이지 않는 ‘민낯’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며 극단하땅세의 윤시중 대표에게 이 작품을 추천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술이 도리어 사물의 진실을 꿰뚫을 수 있다. 연극이 사건의 진실과 닿을지는 의문이며 목표는 아닐 수 있다”며 그녀의 죽음으로 이미 묻힌 진실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극단하땅세의 대표 윤시중은 “연습과정에서 자료를 모을수록 그 사건의 객관적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기사나 법정 기록 자체에 점점 의심이 들었다. 희곡이 그 사건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가공의 창작 작업이 필요한 것처럼, 그 시대의 기사 또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고민의 시작을 이야기했다. “20살에 사라진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실재 사건과 연출을 얼마의 거리를 유지해야 할까? 그 사람의 심정을, 상황을!” 치열하게 고민 고민과 사투를 벌이며, ‘권력과 욕망의 뒤틀린 문제’로 제기된 최근의 움직임으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전한다. ‘욕망’의 본질과 그것으로 인한 ‘변질’을 알고 싶다는 그의 여정은 관객들에게도 치열한 고민들을 선사하고 있다.

로비에서 열리는 '그 때, 변홍례' 분장실 사진 1 /(제공=극단 하땅세)
로비에서 열리는 '그 때, 변홍례' 분장실 사진 2 /(제공=극단 하땅세)
로비에서 열리는 '그 때, 변홍례' 분장실 사진 3 /(제공=극단 하땅세)
로비에서 열리는 '그 때, 변홍례' 분장실 사진 4 /(제공=극단 하땅세)
로비에서 열리는 '그 때, 변홍례' 분장실 사진 5 /(제공=극단 하땅세)

‘하늘부터 땅 끝까지 세게 간다’는 정신으로 시작된 ‘극단 하땅세’는 <그때, 변홍례> ,<위대한 놀이>, <파우스트l+ll>, <파리대왕>과 같은 개성 있는 작품을 창작하며,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로부터 호평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연극제에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극단이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을 살핀다' 는 공동체 작업을 통해 터득한 사유의 정신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는 극단으로 매 작품마다 관객과 평단 모두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해외초청을 거치고 쉴 틈 없이 다시 한국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2019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그 때, 변홍례>는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 분장실을 오픈하며 배우들이 분장을 하거나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무대 위 배우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추천한다.

'그 때, 변홍례' 포스터 /(제공=극단 하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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