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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칼럼- 고호의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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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칼럼- 고호의 해바라기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7/09 21:51

나에게는 잠들기 전에 언제나 눈에 띄는 한편의 정물화가 있다. 바로 침대 맞은편의 벽면에 걸린 <고호의 해바라기>이다. 그것은 복제품이라서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꽤 큰돈을 드려서 구입한 것이었다. 크기는 가로 1미터 50센치 세로 1미터 50센치 길이의 꽤 큰 정사각형의 액자이다. 유리 액자로 되어 집으로 이동하는 데 무게가 가중되어 무척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파우스트>를 관람하고 난 후 대학 선배와 차를 마시고 주변의 미술 소품을 둘러보았다. 그 중 많이 보아 왔던 <해바라기>라는 고호의 작품이 유달리 마음을 끌었다. 언제나 자그마한 액자나 달력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큰 액자에 복제되어 걸려 있으니 훨씬 우아하고 기풍이 있어 보였다.

우선 그 정물화를 대하였을 때, 배추색과 황토색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아늑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복제품이지만 너무 좋아서 구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참을 망설였다. 가뜩이나 물가가 오르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때에, 그림을 산다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었다. 한 참 궁리 끝에 얼마 전에 남편이 핸드백을 구입하라고 주었던 그 돈으로 기어코 구입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핸드백을 산 기쁨보다 더욱 뿌듯하였고 마치 진귀한 보배를 소유한 듯하였다.

곁의 선배가 이동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이렇게 힘들고 비싼 것을 무엇 때문에 사서 그렇게 고생하느냐!”

고 반문하였다. 나는 신비로운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것은 특별히 아름답기보다는 화가의 어떤 내면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대답하였다. 오직 순수 예술의 경지를 향한 삶의 열정과 고뇌가 깊었던 고호의 인생행로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는 병든 해바라기처럼 누렇고 시들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둥그렇고 탐스러운 해바라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약간 이지러진 모습이면서 고개는 무르익은 열매의 무게에 짓눌려 약간 숙여진 성숙한 분위기였다. 그 모습은 마치 칠전팔기의 고호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서산에 해가 질 때까지 태양을 바라보며 고개를 향하는 썬 플라워는 인생의 상당한 철학적 반전을 제공한다. 그것은 지치고 힘들지만 어느 높은 이상을 향한 정열에 불타는 모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떤 생에 대한 구심점을 향하여 가면 결국 성숙한 열매를 맺게 된다고 외치듯 하였다. 생시에 늘 좌절과 고독 속에 갇힌 고호였지만 소망 가운데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호는 늘 태양의 정열을 사랑하였고 그의 예술혼을 불태웠다.

어둡고 빛이 없는 내면을 따뜻하게 해주고 밝은 빛을 비춰주는 치유가 절실할 때에 삶의 소망과 활력을 공급해주는 고호의 <해바라기>는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위대한 미술작품의 진가가 바로 이것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예술이 필요하게 됨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예술작품의 맛을 경험하였기에 지금도 전시장이나 공연장마다 예술을 애호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이다. 애호가들은 내가 경험한 <고호의 해바라기>처럼 어떤 내적인 의미와 치유, 삶의 신선함을 경험하여 그 풍성함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몇해 전에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고호 전>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고호는 해바라기를 그리며 자신의 그림의 진가를 언젠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꿈꾸었다.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 그의 작품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불행했던 삶이 승화되어 작품에 투사되고 있었다. 그 전시회는 여전히 고호의 진면목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때 천경자 화가의 작품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난다. <미인도>를 한 참 동안 바라보며 나름대로 작가의 의도와 예술적 영혼이 무엇일까 상상하여 잠기곤 하였다.

최근 미술작품의 위작 사건이 지속되는 것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러한 위작논란은 천경자,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꾸준하게 거론되어 왔다. 지난해 거론된 천경자, 이우환 화백의 위작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이를 계기로 미술위작 근절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 전작도록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전작도록은 작가의 모든 작품에 연대, 크기, 상태, 이력, 소장처 변동, 전시기록 등을 상세히 기록하기로 한 것이다.

이럴 경우 미술가의 작품 감정 및 거래 시에 참고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위작 논란이 없도록 하는 차원에서 훨씬 이전에 이같은 제도가 도입되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제도를 마련한 것이 다행스럽다. 남의 작품을 본떠서 그 작가의 작품인양 시장거래 하는 부도덕한 양심가들이 문제다. 이는 예술가의 인격과 영혼을 훔치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위작논란을 근절하지 아니 하면 미술시장은 더욱 가짜가 판을 치고 끝내는 복제품이라고 밝힌 그 작품이 진품이 될 수도 있는 헤프닝 사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예술과 국가적 위상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릴케이나 괴테 때문에 독일의 위상이 높아졌고 피카소 때문에 스페인이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세익스피어를 자랑하는 영국... 이제 박수근이나 이중섭, 천경자와 같은 훌륭한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여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문체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전작도록을 제작하는 출발부터 미술시장의 전반적인 검토와 관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체계적인 관리를 통하여 향후 해외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세계 미술계에 제공하여 국가경쟁력과 국가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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