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은 진실에 대한 판단의 두려움, 편견의 어리석음, 생각의 편협함,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소통이 되지 않는 사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에 대한 연극은 다소 어려운 주제라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볍게 참여하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연극으로 다가서고 있다.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강봉훈 연출은 원작 희곡의 12명의 배심원들을 8명의 각양각색의 인간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에 녹여내어 재편집하였다.
영화와 연극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져 있는 극작가 레지널드 로즈의 ‘12인의 성난 사람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의 대답 여하에 따른 다른 결론을 내리는 관객 참여형 연극은 어떤 면에서는 색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처음 시도하는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익숙한 것들을 조합하여 오히려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였을 뿐 아니라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performance)’의 단점으로 꼽히던 극의 완성도나 완결성까지 두 말 할 나위 없는 연극 <시비노자>는 스토리의 변주와 관객들의 호흡에 속도를 맞춘 전개 그리고 매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관객들의 반응에 어색하지 않게 반응하도록 모든 변수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당신이 본 연극 <시비노자>와 내일 공연될 연극 <시비노자>는 같을 수도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관객 참여형 연극에 대해 노골적인 관객 참여 연극 ‘민중의 적(2016, LG아트센터)’ 연출가 오스터 마이어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런 연극적 경험을 통해 현실 속에서 ‘노(NO)’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일상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관객 참여형 연극 양식의 긍적적인 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당신이 연극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
‘당신은 함께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공동창작자이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당연하게 짓밟히며, 다른 이들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쉬이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슬픈 영혼들이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작이 되길 원하는 바람이 이 작품에 담겨 있을는지도 모른다.
작품 <시비노자>는 어렵거나 무겁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다. 관객들의 대답 여하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연극 <시비노자>의 ‘에필로그 공연’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떠올릴지, 연극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어떤 고민들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