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가 주관한 고전발레 <지젤>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무용수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한상이-간토지 오콤비얀바, 홍향기-이동탁, 최지원-마밍이 함께 주역을 맡아 각기 다른 4색 매력으로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극 전체를 이끄는 여주인공은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을 나는 듯 한 고난도의 테크닉은 물론, 1막의 순진무구한 시골처녀와 2막의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려는 헌신적인 여인까지 기교 이상의 연기력과 아름다운 우아함이 보이는 마임 등이 요구되기에 <지젤>은 발레리나라면 반드시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자 기량과 경력을 쌓은 발레리나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낭만발레의 대표작 <지젤>은 1985년 국내 초연부터 러시아의 ‘마린스키 버전’을 지키고 있는데 1999년 스페인, 이탈리아, 헝가리에 이어 이듬해 그리스, 독일,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작품성과 흥행성을 입증했다. 낭만발레의 대표작 <지젤>은 ‘백조의 호수’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귀족 신분의 남자와 평범한 귀족 신분의 남자와 평범한 시골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배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숭고한 사랑’을 주제로 19세기 문예사조에서 찬미했던 초자연적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작 전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의 해설로 시작된 고전발레 <지젤>은 전막에서 시연되는 마임에 대해 우아한 동작으로 관객들에게 친절한 해석을 더해주었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는 ‘노크’, 두 손을 심장 쪽으로 포개어 표시하는 ‘사랑’, 한쪽 손으로 다른 손의 약지를 가리키는 ‘결혼/약혼’, 양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둥글게 흔드는 ‘춤춘다’, 한 손이나 양 손을 주먹 쥐어 아래를 향해 교차시키는 ‘죽음’ 등은 관객들이 <지젤>에 더욱 빠질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었다. 1막에서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순진무구한 시골 소녀에서 사랑의 배신에 광란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여인으로, 2막에서 영혼 ‘윌리(독일 신화에 등장하는 결혼 전 죽은 처녀귀신)’가 된 후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지젤의 1막과 2막의 극적으로 대비되는 연기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2막에서 푸른 달빛 아래 꽃잎처럼 흩날리는 순백의 튜튜를 입은 24명의 ‘윌리’들이 풀어내는 아름답고 정교한 군무가 환상적이다.
발끝으로 서고 공중으로 들여 올려지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발레의 포즈는 결국 낭만적인 주제를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얀 로맨틱 튜튜를 입고 공기 속을 부유하듯 춤추는 발레 기법은 ‘발레리나’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여주인공 ‘지젤’이 보여주는 극적인 연기 변화와 푸른 달빛 아래 대열을 맞추며 움직이는 윌리들의 군무와 초자연적 러브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지젤>의 1막에서 순수하고 발랄한 시골 소녀의 모습에서 사랑의 배신에 오열하며 광란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여인으로, 2막에서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외형은 단순히 신체의 표현이 아닌 정신적인 영역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발레 블랑(Ballet Blanc)’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발레 <지젤>은 1841년 프랑스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시인이자 발레 평론가였던 ‘테오필 고티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독일, 겨울이야기』에서 ‘윌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 고티에는 당대 발레리나이자 ‘지젤’ 세계 초연의 주인공이었던 ‘카를로타 그리시’를 연모해 대본을 집필했다. 그러나 고티에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시는 ‘지젤’을 안무했던 쥘 페로의 연인이자 후에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비하인드 러브스토리는 작품 ‘지젤’과 만나 묘한 여운을 남긴다. 초연 이후, 고전 발레의 대표적인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러시아 황실 극장의 무용수로 성공하며 1860년 ‘쥘 페로’, ‘장 코라이’ 안무의 ‘지젤’을 재공연하게 되며 이후 그 형태가 영구적으로 보존되어 러시아의 레퍼토리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상연되는 ‘지젤’은 바로 이 수정본에 토대를 두고 있다. 또한 파리 오페라좌의 전속 작곡자이자 지휘자 아돌프 아당의 연주곡은 발레 <지젤>의 감동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1막’ | 라인 강변의 농가 – 사랑의 끝, 비극의 시작
라인 강변을 따라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에서 사랑에 빠진 시골 처녀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사랑의 춤을 나누고 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 ‘알브레히트’와 ‘지젤’. 이 때 ‘지젤’을 흠모하는 사냥꾼 ‘힐라리온’은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질투를 느끼고 ‘알브레히트’의 정체를 의심한다.
포도 수확을 마친 마을 처녀들과 ‘지젤’은 즐거움에 들떠서 춤을 춘다. 평소 심장이 약했던 ‘지젤’은 이내 비틀거리며 모두를 긴장하게 한다. 그리고 결혼 전 춤추다가 죽으면 처녀귀신 ‘윌리’가 된다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힘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조금 후 사냥을 나온 귀족들이 마을을 방문한다. 귀족인 ‘바틸드’와 ‘지젤’은 사랑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바틸드’는 ‘지젤’에게 목걸이를 선물한다.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춤을 추면서 더 없는 행복에 빠져있는 순간, 힐라리온이 등장한다.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가 귀족임을 밝히며 귀족을 상징하는 검을 보여주지만 ‘알브레히트’는 자신이 귀족임을 부인한다. 격분한 ‘힐라리온’은 사냥중인 귀족들을 소집하는 뿔피리를 불고, 이 소리를 듣고 나타난 ‘바틸드’는 ‘알브레히트’가 자신의 약혼자임을 밝힌다. 이에 놀라움과 슬픔으로 이성을 잃은 ‘지젤’은 즐거웠던 날을 회상하며 비통함 속에서 괴로워하다 죽는다.
‘2막’ | 윌리들의 춤 –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스산함이 가득한 숲 속, ‘지젤’의 무덤가. 갈대 사이로 희미한 유령의 그림자처럼 윌리의 여왕 ‘미르타’가 나타난다. 이 때 구슬픈 음악과 함께 비탄에 잠긴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무덤을 찾아와 한 아름의 백합을 놓는다. 그가 무덤 앞에 앉자 한줄기 빛과 함께 지젤의 영혼이 나타나 두 사람은 재회의 기쁨으로 춤을 춘다.
‘지젤’의 죽음으로 자책감에 휩싸인 ‘힐라리온’이 나타난다. 그러나 사랑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은 처녀귀신 ‘윌리’들은 그를 용서하지 않고 계속 춤추게 한다. ‘윌리의 전설’이 생각난 그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나지만, 결국 ‘윌리’들의 복수로 연못가에 빠져 죽게 된다.
이후, 여왕 ‘미르타’는 ‘알브레히트’ 역시 죽이도록 명령하지만, 이때 ‘지젤’이 나타나 그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애걸한다. 그러나 여왕 ‘미르타’는 ‘지젤’에게 유혹의 춤을 추도록 명령하고, 우아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젤’의 춤에 매혹된 ‘알브레히트’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고 이내 쓰러진다. 그러나 ‘지젤’의 영원한 사랑의 힘은 새벽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시간까지 ‘알브레히트’를 지켜낸다. 쓰러진 자신을 감싸고 있는 ‘지젤’을 발견한 ‘알브레히트’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사라져가는 ‘지젤‘을 바라보며 막을 내린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믿고 보는 갑판스타’ 수석무용수 강미선은 작년 어깨부상으로 올해 정기공연인 ‘백조의 호수’ 무대에 오르지 못해 반 년 만에 국내 팬들을 만나 디테일한 <지젤>을 보여주었다. 강미선의 파트너 무용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역시 뛰어난 감정연기로 감동을 주며 환상적인 듀엣 연기를 보여주었다.
또 다른 커플인 한상이와 간토지 오콤비얀바는 작년 ‘호두까기 인형’에서 첫 호흡을 맞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지젤>에서는 보다 깊이 있는 해석으로 사랑을 통해 성숙해지는 젊은 연인을 절묘하게 연기하였다.
무용수 홍향기와 이동탁은 그간 ‘심청’, ‘춘향’에서 파트너로 함께 한 바 있는데, 이미 연기와 작품 해석이 뛰어나고 호흡이 잘 맞기로 정평이 나 있다. 무용수 홍향기는 무용수 이동탁을 가장 편안하고 성숙한 연기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파트너로 꼽았던 만큼, 이번 <지젤>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무용수 최지원-마밍은 무용수 최지원의 <지젤> 첫 데뷔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적 있는 마밍은, 두 번째로 만난 이번 공연에서 더욱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비전에 따라 1854년 5월 창단한 민간예술단체 ‘유니버설발레단’은 초대 애드리엔 델라스, 제 2대 다니엘 레반스, 제3대 로이 토비아스, 제 4대 브루스 스타이블 예술감독으로 이어지는 명장의 손길에 의해 로맨틱 발레와 클래식 발레, 모던 발레의 주요 레퍼토리를 다수 보유하며 한국발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제 5대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의 부임으로 러시아 키로프(현 마린스키)의 정통발레를 재현하면서 유니버설발레단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적인 발레스타도 배출하고 있다. 현재 제6대 유병헌 예술감독의 연출과 지도 아래 창작발레 공연에도 힘쓰고 있다.
모던 발레 안무가들과의 교류로 레퍼토리를 넓히는 한편, 한국 최초의 창작발레 ‘심청’을 제작하고, ‘춘향’과 함께 세계무대로 역수출하는 등 발레단의 독자성을 개발하는 일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오는 10월 ‘춘향’과 ‘심청’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