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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차별과 혐오에 대한 가슴 뜨거운 치열한 고민,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7/27 04:38 수정 2019.07.27 08:44
'레라미 프로젝트' 마지막 무대 사진 | 매튜 쉐퍼드가 묶여 있던 울타리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민감한 소재에 대해 단어, 어투, 표정 하나하나 세심하게 다루며 치열하게 고민한 연극 <레라미프로젝트>가 지난 13일부터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많은 관객들을 머리는 뜨겁게 마음은 먹먹하게 만들어 주며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 와이오밍 주에 위치한 도시, 레라미.

1998년 10월, 와이오밍 대학교에 다니던 21세 청년, 매튜 쉐퍼드는 2명의 20대 남성들에게 폭행당하고, 강탈당하고 고문당했다. 울타리에 묶여 있던 그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5일 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 잔인한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8명의 극단원들은 직접 취재를 떠나게 된다.

“아, 매튜, 그 게이새끼요?”

'레라미프로젝트' 공연사진_배우 이준희, 윤소희, 이승헌, 김수민, 정현준, 조하나, 임영우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레라미프로젝트' 공연사진_배우 이준희, 이달, 윤소희, 정현준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레라미프로젝트' 공연사진_배우 조하나, 정현준, 이달, 윤소희, 임영우, 김수민, 이준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레라미프로젝트' 공연사진_배우 윤소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레라미프로젝트' 공연사진_배우 조하나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레라미프로젝트' 공연사진_배우 이달, 조하나, 이준희, 이승헌, 윤소희, 김수민, 임영우, 정현준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8명의 배우들은 70여명의 레라미 주민들이 된다. 살인을 저지른 20대 남성들과 사건 담당형사, 피해자의 부모,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최초 발견자, 마을의 종교인, 피해자의 친구와, 피고의 친구들 등 살인사건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이 되어 ‘동성애’와 ‘혐오’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끄집어낸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매튜에 대해 작가 모이세스 카우프만은 사건 이후 약 1년 반 동안 레라미의 마을 주민들과 200번이 넘는 인터뷰를 했으며 그 기록을 재구성하여 연극 ‘레라미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2009년 미국의 혐오범죄 보호법인 "매튜 쉐퍼드 혐오방지 법령"의 시발점이 된 매튜 쉐퍼드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 연극 ‘레라미프로젝트’는 미국 전역에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는 등 작품성과 더불어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이룩해냈다. 국내에서는 여러 단체들의 낭독공연과 미니공연 이후, 2018년 3월 국내최초로 정식허가를 받아 우리의 삶에 다양한 시선을 담아 연극을 만드는 젊은 극단 '극단 실한'과 신명민 연출가가 정식 국내초연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재공연을 통해 그 작품성을 입증했다.

'레라미프로젝트' 출연진_정현준 배우, 이달 배우, 임영우 배우, 김수민 배우, 윤소희 배우, 이승헌 배우(위쪽) 조하나 배우, 이준희 배우(아래쪽) /ⓒ권애진

두산아트센터와 극단 실한의 공동기획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이번 작품 <레라미프로젝트>는 초연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신명민 연출가를 비롯한 기존 창작진들과 함께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 무대 위 영상을 새로이 하며 가슴 울리는 깊은 연기를 통해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레라미 프로젝트' Mini Interview -

1. 작품을 보면서 많은 고민과 울분이 느껴져서,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적극적 평등주의자’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많은 부분에서 느껴졌습니다. '혐오'와 '동성애' 부분에 대한 표현들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점에 두었을지 연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신명민 연출가, 아직 많지 않은 나이이지만 세심한 연출로 작품세계를 그만의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권애진

신명민 연출가 : 사실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과거 제가 그 ‘선량한 차별주의자’ 였습니다... 남들과 같게? ‘난 혐오하지 않아! 내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는데! 넌 말을 왜 그렇게 해!’ 라며 참 무식하게 대응하며, 제가 혐오자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혐오’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세월을 가해자로써 살아왔고 쉽게 내뱉은 제 한마디가 누구에겐 공포와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보편적인 사회의 시선’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의 악의 없는 한 마디 한 마디, 그 시선들이 쌓여 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칼을 들고 죽이는 것만이 혐오가 아니라는 것. 결국은 같은 선 긋기 라는 것. 그래서 인물 군을 배우들과 구축할 때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인과 악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뉘앙스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들과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인물들과 말들을 우리 주변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보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가해자인 아론과 핸더슨 까지도말입니다. 그 둘이 나쁜 놈이다.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2. 홍성수 교수님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와 여러 강론 등에서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허용하거나 금지할 때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한 생각을 시작하였습니다. 책이나 강론 등을 접하지 않으셨더라도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규제 부분도 고민을 해 보셨을 듯합니다. 연출님의 혐오표현의 법적규제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신명민 연출가, 올곧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담긴 다음 작품도 궁금해진다 /ⓒ권애진

신명민 연출가 : 그래서 이 부분이 참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법적규제에 대해 저는 기본적으로 찬성합니다. 그 말은 곧 시선이기 때문이죠. 사실 그 전에 모든 사람들이 이 ‘혐오’라는 지점을 도덕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과 서양에서도 매튜 쉐퍼드의 사건이 불씨가 되어 ‘혐오’라는 것에 대해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혐오방지법은 그 이후 10년 후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흑인인권이 보장 된 이후로 치면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음... 한국에서는 이태원 살인사건이 있었지만 단지 한미 당국의 줄다리기 식으로만 인지되어 흐지부지 됐었죠. 강남역 살인 사건이후에서야 사람들은 조금씩 혐오에 대해 사람들이 공부하고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런 법적규제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인지. 그러나 그런 규제들이 빨리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3. 연출님 뿐 아니라 배우님들, 제작진들 모두 함께 고민을 한 흔적들이 많은 부분에서 느껴졌습니다. 연출님은 작품 구상과 여러 과정 중에 당연히 많은 준비시간을 거쳐 왔지만, 상대적으로 배우들은 짧은 시간에 공연에 대해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배우들이 공연 전과 후에 달라진 생각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레라미프로젝트' 연출과 배우들_정현준 배우, 이달 배우, 신명민 연출, 임영우 배우, 김수민 배우, 윤소희 배우, 이승헌 배우(위쪽) 조하나 배우, 이준희 배우(아래쪽) /ⓒ권애진

신명민 연출가 :

사실 많은 배우들이 ‘혐오’라는 것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긴 테이블 작업을 거쳤습니다. (공연 전 배우들이)이 작품에서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띄고 있었습닌다. “혐오하진 않는다. 내 앞에서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대부분의 의견이었습니다. 저는 배우들에게 각자 왜 그런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요인들을 체크해보며 분석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군가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혐오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 자신이 잘못 했던 점들을 인정하는 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배우들과 공유한다는 건. 자신의 시선을 분석하는 것, 왜 그런 시선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공부하는 것. 그렇게 흘러가버린 사회, 역사의 흐름의 공부도 함께였습니다. 아 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프로덕션에 절실한 크리스천이 꽤 있었거든요.

'레라미프로젝트' 정현준 배우 | 카톨릭 신부 로저슈미트 신부의 대사 /ⓒ권애진

정현준 배우 :

작품 안에서 레라미프로젝트를 연습하기 전에 어떤 인물의 시선과 가까웠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인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매 공연 전에 점검하게 됩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혐오적인 발언에 대해 자각하는 순간이 많아졌고, 제 안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지점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레라미프로젝트' 임영우 배우 | 피의자 아론 맥키니 대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임영우 배우 :

20살 청년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단어 '변태', '게이'가 사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혐오란 너무 곳곳에 스펀지의 스며들어있는 물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다가도 그 스펀지를 누르면 미친 듯이 쏟아지는 형태 잡을 수 없는 그런 물인 것 같습니다다. 저 조차도...

'레라미프로젝트' 이달 배우 | 와이오밍대학교 연극과 학생 제다디아 슐츠 대사 /ⓒ권애진

이달 배우 :

참 무지하게 살았구나... 또 다른 사람을 내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된다를 명확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레라미프로젝트' 이준희 배우 | 택시기사 오코더 대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이준희 배우 :

무지와 둔함에서 오는 혐오적인 시각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막연한 생각. 그 자체가 이미 그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었던 거였죠. 평생 동안... 그래서 더 알려고 그리고 더 애민해지려 노력했고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레라미프로젝트' 조하나 배우 | 매튜의 친구로 동성애자 로메인 패터슨 대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조하나 배우 :

이 작품을 하면서 혐오에 대해 마주한다는 건 결국 사람 마음을 살피는 일이구나 ... 라는 것에 대해 더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레라미프로젝트' 이승현 배우 | 매튜 사건 담당 형사 합 드브리 대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이승헌 배우 :

레라미를 만나기 전에는 '차별' '혐오' '성소수자' ....이런 단어들은 낯선 뉴스기사나 사전 안에 있는 표준어 중 하나 일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진행 할수록 이 단어들은 내 삶 안에 너무나 밀접한 것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엄마부터 내 친구,동료까지...

공연 막바지에 있는 나는 아직까지도 공부 중입니다. 내가 뱉고 있는 대사들, 인물들을 노력하여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체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레라미프로젝트' 윤소희 배우 | 이슬람 페미니스트 쥬바이다 우라 대사 /ⓒ박태양(제공=극단 실한)

윤소희 배우 :

현재, 나라는 사람이 가진 ‘다름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직면하고 인정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레라미프로젝트' 김수민 배우 | 딸이 경찰관인 지역토박이 아주머니 마지 머레이 대사 /ⓒ권애진

김수민 배우 :

저에게도 무의식 속에 차별과 혐오가 있었고 사실 지금도 그게 온전히 사라졌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항상 그 지점을 경계하고 인지해야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김지혜 저 『선량한 차별주의자』 -

혐오포현 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을 “영혼의 살인(야스코)” “말의 폭력” “따귀를 때린 것”에 비유하곤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말이 칼이 될 때”라고 지은 것도 그런 이유다. 왜 혐오표현이라는 말이 칼이 되고 폭력이 되고 영혼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는지, 독자들이 그 이유에 조금이라도 더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망치보다 메스가 낫긴 하지만 모든 질병에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듯, 혐오표현도 금지하고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혐오표현을 낳는 근본원인을 제거하고 사회의 내성을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 홍성수 저 『말이 칼이 될 때』 -

우리 사회는 너무나 당연하게 차별당하고 혐오를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들은 없다 여긴다. 너무나 같지 않은 불평등한 조건에서 차별을 당하는 소수자들에게 당연한 권리를 돌려주는 것조차 오히려 차별이나 특권이라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자신들의 말이 어떤 식으로 상대를 죽이고 있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하기에 이 작품 <레라미프로젝트>는 세상에 계속해서 외치고 소리치고 있다. 사회라는 구조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모두가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와 닿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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