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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 11회 - 한애자의 <빵 굽는 여인 >..

소설읽기 11회 - 한애자의 <빵 굽는 여인 >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7/18 04:26

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11회

 

‘아웃사이더.’

어쩌면 저 여자는 선택 받았고 자신은 아웃사이더가 되었는지 모른다. 일용할 빵을 교인들에게 먹이듯 자신도 인류에게 일용할 빵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나는 세계적인 빵 굽는 CEO이다. 만약 저 목사가 일요일마다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면 나 노인숙은 하나님의 우편에 있다는 예수에게 제일 맛있고 영양가 있는 빵을 선물할 것이다. 그러면 예수는 그 빵을 먹고 계속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훈련한 장 선생의 애완견은 아마 심판대의 양편에 서서, 죗값을 계산하는 카운터 옆에서 예수를 보좌할 것이다. 장 선생의 잘 훈련된 개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데 그 몫을 단단히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자, 거기에 서시오!”

하얀 옷을 걸친 심판장이 불꽃같은 안목으로 자신을 쳐다볼 것이다. 그때 나 노인숙은 그 앞에 서서 말할 것이다.

“홍신애가 데려온 아이들과 제가 데려온 개와 빵 자루는 어떻게 차이가 나나요?”

심판장은 나를 바라보며,

“차이가 없다.”

라고 말할 것이다. 서쪽에서 별빛이 반짝였다. 노인숙은 밤안개가 싸인 도시의 밤거리를 내다보았다. 현란한 네온사이로 도시는 춤을 추고 있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장 선생의 음성이 들려온다. 왠지 두렵다. 고독과 외로움이 싸늘하게 휩싸고 돈다. 세리가 손을 핥는다.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으며 몽롱함 가운데 침대로 다가갔다. 뭔지 모를 배신감이 몰려오며 분노에 떨며 겨우 잠이 들었다. 밤은 깊어갔다.

 

어느덧 오월의 싱그러운 날씨가 성큼 다가왔다. 그녀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머리에는 회색 헤어밴드로 고정시켰다. 귀에는 커다란 링으로 된 귀고리를 달았다. 외국 영화배우 같은 각진 선글라스를 착용하였다. 언뜻 보면 영화배우의 차림이었다.

늘 조깅하던 한강 공원으로 세리와 함께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파워워킹을 하고 있었고 조깅,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팅을 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강변 근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간간이 떨어져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직장에서 명퇴를 당한 분위기였다.

노인숙은 강변 쪽으로 잔디가 있는 풀밭에 자리를 잡아 잠시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중년남자가 유모차에 아이를 밀고 있었다. 건너편 교회의 구 목사였다. 아마 교회행사로 소풍을 온 듯하였다. 그녀는 그들을 마주칠까봐 재빨리 일어나서 잡풀이 우거진 쪽으로 몸을 감추듯 이동하였다. 세리의 용변을 위해 한적하고 남이 보지 않는 장소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일동들이 그녀 쪽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구 목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노인숙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매스컴에서 한번 날리기 시작해서인지 꼭 유명인사 같단 말이야!’

구 목사의 출현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하필 그때 나타난 것이 괘씸하고 얄미웠다. 구 목사는 반가운 듯이 웃으며 목례를 하였다. 목사 옆에는 자기 또래의 오십 줄의 여인이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구 목사는 그 여인에게 ‘김 권사님’이라고 하며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노인숙은 그 여인이 끌고 있는 유모차의 아기에게 시선이 고정 되었다. 세리는 살짝 내민 아기의 발을 핥았다. 아기가 깜짝 놀라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기의 입언저리가 언청이처럼 떠 있었다. 그 아기의 발가락을 날카롭게 훑어보며 그녀는 속히 세리를 재촉하여 저쪽의 테니스장이 있는 잔디밭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낚시를 하던 중년남자가 그녀에게 담배를 물고 다가왔다.

“혈통이 좋은 것이라서 확실히 다르지요. 보세요! 이 세리는 귀족의 혈통이라서 품위가 있잖아요!”

세리를 쓰다듬어 주는 남자에게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혹시 애완견을 구입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이곳을 애용해주세요. 아주 서비스도 좋고, 혈통도 제대로 된 품종을 소개 받을 수 있으니까요. 호호호…….”

노인숙은 활짝 웃으며 팸플릿을 건네주었다. 이제 장 선생의 애완견 사업에 철저한 동료의식과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외출 시에는 언제나 빵의 여러 종류를 선전할 것과 애완견 사업의 홍보에 관한 팸플릿을 가방에 챙겨서 다니곤 하였다. 그러다가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애완견 협회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였다. 작은 비닐봉지에 신상품으로 개발한 파이나 빵을 예쁘게 포장하여 곁들여 주었다. 말하자면 빵의 맛을 선전하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었다.

어느덧 날씨는 쌀쌀해지고 해가 짧아져 벌써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보니 장 선생이 무슨 일인지 매우 들떠 있었다.

“내일은 전국 최대의 애완견 경진대회의 날이오. 이번엔 꼭 상금을 타야 하지 않소!”

어제 ‘바다의 도시’를 경영하는 친구로부터 동업의 제의가 들어왔소. 투자가치가 있는 거요.”

결국은 자신에게 자금을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장 선생을 탓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선 흥행 사업이고 전망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남편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인숙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장 선생에게 투자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이제 제빵 사업에서 대박을 터트려야만 자신의 부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돈을 장 선생에게 건네주고 나서, 장 선생에게 젊은 여자가 생긴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들를까 말까 했다. 노년에 또 헤어지거나 이혼하는 것은 거추장스러웠다. 자신에게 더욱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더 이상 비참해지기 싫었다. 한때 자랑하던 미모도 이제는 젊음 앞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싱싱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장 선생의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이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였다.

쌀쌀한 가을 날씨다. 나이가 먹어서인지 뼛속에 벌써 바람이 스미는 것을 느낀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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