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일상 속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친구 사이에서 진심어린 속내를 드러내는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연극 <언필과 지우개>가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관객들과 진심 가득한 관계를 만들기를 소망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예술창작소 호밀의 창작극 시리즈 3번째 작품 <언필과 지우개>는 제 40회 서울연극제 프린지 부문 창작공간연극축제 우수작품 재공연작으로 관객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함께 호흡하고 있다.
고교동창이던 지우와 언필.
고교시절에는 절친 이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후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서로 안부조차 묻지 못했던 그런 친구사이이다. 아주 오랜만에 동창회에서 재회한 후 언필은 늘 그렇듯 지우라는 존재를 스쳐지나 보냈다. 며칠 후 지우는 언필이 준 명함 한 장을 들고 집으로 찾아간다. 혼자 익숙한 언필에게 갑자기 찾아 온 지우는 상당히 불편한 존재다.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가 불편해진 언필과 지우는 의도치 않은 동거로 서로 반복되는 일상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
언필은 잘 나가지 못하는 작가이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이제는 그 목적조차 불분명하다. 위층의 소음도 이제는 익숙해져 있다. 이어폰을 꽂고 못 들은 척 하면 그만일 뿐이다. 언필은 삶을 살아간다기보다는 일 분, 일 초를 그저 견디며 흘려보낸다.
지우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에게 일상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뿐이고 마주봐야만 하는 아픔이다. 안 보면 그만일는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으로 ‘도망’쳤다.
오늘의 우리는 삶의 고단함에 치여 일상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누군가 내 영역으로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족을 얻지도, 관계에서 위안을 받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연극은 이런 우리의 고민을 이야기 한다.
일상 속의 나와 너를 만나게 되는 작품 <언필과 지우개>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윤광희 연출은 ‘개인과 사회, 남자와 여자, 보수와 진보, 갑과 을. 수많은 층간들’, ‘때론 시끄럽고 때론 고요하고’, ‘소리와 소음의 사이. 침묵과 저항의 사이’, ‘때론 무관심하기도, 때론 간절하기도’, ‘너와 나의 관계. 겉과 속이라는 나와 나의 관계’, ‘때론 외롭기도, 때론 설레기도’, ‘경계, 그 곳은 항상 복잡, 미묘한 지점인 듯하다’, ‘그럴 법도 한데, 아님 말아야지’, ‘조금만 더 가벼워지길 바랄 뿐이다’라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극 중 인물들의 독백과도 같은 대사처럼 읊조렸다.
공연예술창작소 호밀은 고향친구, 함께 뭉쳐 다니는 친구라는 뜻의 ‘Homie’와 J.D. 셀린저의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착안한 이름이라 한다.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쉼터이자, 그 아이들을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주인공 홀든처럼, 호밀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공연에 접목시킴으로써 관객들의 쉼터가 되어줄 뿐 아니라, 현 시대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공연을 통해서 함께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결성된 단체이다.
- MINI INTERVIEW -
1. 윤광희 '배우님'으로 계속 만나왔지만 첫연출작에서 처음 만난 '연출'이란 타이틀 또한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냥 연극을 좋아하는' 연극작업자'입니다(부끄럽지만...). 주로 배우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론 작가로 연출로 이야기 하는 걸 즐기기도 합니다. 타이틀은 딱히 중요하게 생각 안하는 편입니다.
작품을 통해 빈 무대 위, 배우와 관객 사이엔 무형의 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마음을 나누며 함께 호흡합니다. 누군가는 즐거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따분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죠.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그것은 모두의 자유니까요. 다만 우리가 서로 만났고, 바라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늘, 우리의 관계가, 아무 감정 없는 벽 사이에 막히지만 않길 바랄 뿐입니다. 더 열심히, 더 활짝 문을 열고 기다리겠습니다.
2. 연출님과 두 배우님은 친구 사이라 들었습니다. 희곡이 실제 일화들에서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들을 각색한 것일까요?
예, 친구 맞습니다. 근데 실제 에피소드는 아니구요(ㅋㅋ). 가상의 이야기들입니다.
3. 단어들을 나열하던 혼잣말은 톤도 독특했습니다. 의식의 흐름들을 보여주는 듯 한 혼잣말을 연출님은 어떻게 넣게 되었고 독특한 톤은 특별한 의도가 있을까요?
혼잣말은 사실 생각의 말들입니다 그래서 문장이 아닌 이미지 혹은 단어의 나열식이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경계라는 의미가 좀 강한데요 예를 들어 소리와 소음 문과 벽 나와 너 등등 그 경계들을 넘는 다양한 소통의 방식 중 하나라 생각했습니다. 나와 나의 경계를 소통하는. 하지만 그것조차 왜곡되기도 하고 오해가 생기고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죠.
언필, 지우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땐 생각의 말들이 사라지고 분절의 말 '어', '아', '응' 으로 서로 소통을 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이게 맞다 옳다 까진 아니고 그래도 이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일 수록 작품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 따뜻한 우정을 이야기하는 이야기에 살아숨쉬는 힘을 불어넣은 <언필과 지우개>의 윤광희 연출, 황현태 배우, 이광재 배우의 다음 행보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