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의 교회도 어느덧 7층 건물로 번창하였다. 자신의 제빵 사업의 확장으로 건물이 지어져 올라갈 때, 건너편의 개척교회도 수많은 성도를 확보하였는지 날로 건물이 세련되고 번창해 가고 있었다. 그 건물의 1층은 예배당처럼 보였다. 2층은 입양아동센터, 3층은 노인과 장애인복지관, 4층은 소년소녀 가장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든 기숙사였다. 맨 마지막 7층은 무슨 시민운동단체의 연합본부인지 항상 노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
‘복제인간 -생명의 파괴를 경고한다!’
깃발을 휘날리면서 무리가 서울광장을 향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건물의 맨 꼭대기는 십자가 종탑이 중세 건물처럼 우뚝 치솟아 있었다.
그녀는 지금 새롭게 7층에서 휘날리는 현수막을 보았다
‘바다의 홍수 -휩쓸리는 민생을 누가 만들었나!’
어떤 때는 노인들이 고깔을 쓰고 장구를 치고 무슨 잔칫날처럼 즐거워하면서 그 교회의 정문에 출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옆집 세탁소의 노인의 말을 들으면 어버이날이나 명절 땐 그 교회의 사모님이 노인들을 위한 위로잔치를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자식도 없고 버려진 독고노인들을 정기적으로 초대하고 그들의 삶을 보아준다는 것이다.
“사모님이 어찌나 좋은 분인지 몰라요. 얼굴도 뽀얗고 미인이고요!”
세탁소 노인은 홍신애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그 후 노인숙은 자신의 제과점을 확장하여 건물이 신축되는 날, 특별한 이벤트를 행사하였다. 아침식사용 빵을 시식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진열대에는 여러 종류의 과자와 케이크, 빵을 전시하였다. 일종의 찾아드는 손님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특선으로 무료 시식시키고 한 봉지의 빵을 증정하였다.
곧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 대부분이 거지나 노숙자였다. 노파는 초라하고 지저분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빵 가게의 이미지를 더럽힌다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곧 행사를 중단하였다.
“애완견 경진대회 준비는 다 됐어?”
“네, 곧 미용 손질을 하려고 해요.”
“빨리 준비하지 않고 뭐하는 거야! 이번엔 세리가 꼭 상금을 타야 한다고, 알았나?”
윽박지르는 목소리에 추락해 가는 듯하여 한숨이 나왔다. 서둘러 경진대회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였다. 경진대회가 내일 개최되기 때문이다.
노인숙은 3층의 애완견 미용센터로 향하고 있는데 맞은편의 교회 정문에 많은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풍선을 들고 신나게 장난을 치면서 어른들의 손을 잡고 일렬로 줄지어 서 있었다. 셔틀버스에 오르기 위해서 기다리며 어린이날 행사를 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런데 교회 뜰의 맨 마지막 가까이에 다섯 살 정도의 아기의 뒤통수가 보였다. 곁에는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인 홍신애가 어린이에게 주스를 먹이고 있었다. 주스를 마신 어린이에게 홍신애가 풍선을 크게 입에 대고 불었다. 어린이들은 신기해하면서 계속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중 한 어린이의 웃는 모습이 노인숙의 시선에 사로잡혔다.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익은 모습이었다.
홍신애는 긴 양말을 여자아이에게 신기려고 더러워진 양말을 벗기었다. 여자아이의 발이 드러났다. 홍신애는 긴 타이즈를 여자아이에게 신기느라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곧 타이즈를 다 신겼는지 여자아이는 여인에게 안기며 뽀뽀를 하였다. 잘 갔다 오라고 여인이 손짓을 하자 여자아이는 셔틀버스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여자아이의 입에선 침이 흐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어린이 노래가 들리면서 셔틀버스는 서서히 교외로 향하였다. 아이들의 손 안에는 선물이 가득 차 있었다. 노인숙은 사라지는 그 버스를 바라보다가 곧 3층의 애완견 센터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미용도구를 챙겨 세리를 깔끔하게 손질하기 시작하였다. 머리와 귀 발목을 특별히 신경 쓰며 손질하였다. 이번 경진대회에서 한 몫을 단단히 하기를 바라면서 정성껏 살폈다.
마지막으로 세리의 발목을 손질하면서 아까 교회 뜰의 여자 아이의 발가락이 떠올랐다. 그 발가락은 아들 성석의 발가락과 너무도 똑같았다. 어느 때인가 한강변에서 구 목사를 만났을 때, 유모차의 아기의 발목이 떠올랐다. 아마 그 유모차의 아기가 그 여자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새 어둠이 짙어오기 시작하였다. 맞은편의 자주색 커튼이 변함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내일은 경진대회의 날이라 일찍 서둘렀다. 장 선생의 윽박지르는 소리가 쟁쟁히 귀에 울리는 듯했다. 재빨리 1층의 제과점 매장으로 내려왔다. 경진대회에 가서 홍보할 빵과 간식을 챙기기 위해서 출입구에 들어서려 할 때였다. 저 건너편의 교회 쪽에서 노파가 다가왔다. 그는 제과점의 입구에서 언제나 주변에 떠돌던 노파였다. 어버이날이라 교회에서 큰 잔치를 베풀어 오랜만에 포식을 하였다고 트림을 하였다.
“자식은 날 버렸지만 저 교회의 사모님은 언제나 딸처럼 나를 신경 써주었지요. 참말로 고마워서…….”
노파는 전번에 이벤트 빵 행사 때, 노인숙의 제과점에서 무료로 빵을 증정 받아갔었다. 그때 노인숙은 행색이 남루하여 빨리 내보내려고 하자,
“빵 한 봉지만 더 주소!”
하며 떼를 썼던 노파였다. 하도 보채기에 유효기간이 지난 식빵을 한 보따리 주어 내보냈었다.
노인숙은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찾아오는 자식이 없음에 외로움이 밀려왔다. 눈을 감고 미국의 아들을 생각하였다. 아들을 그곳의 한인 처녀와 결혼을 시켰다. 그러나 아들은 서서히 우울증 증세를 보이더니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박사 과정도 그만둔 채, 샌프란시스코에 제과점을 하나 개업하여 운영하게 하였다. 아들은 언제나 넋이 나간 듯, 죽은 ‘숙희’의 이름을 자주 불렀다. 아들의 우울증에 시달린 며느리는 곧 가출하였다. 지금 스위스의 요양원에 있는 아들을 어찌할 것인가! 노인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장 선생에게 휴대전화가 울렸다.
“빨리 서둘지 않고 뭐하고 있어!”
악을 쓰며 닦달하는 소리에 노인숙은 곧 세리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곧 행장구와 빵 보따리의 짐을 챙겨 세리를 데리고 주차장 쪽으로 향하였다. BMW 정도는 끌고 다녀야 자신의 품위를 나타내는 것 같아 몇 달 전 새로 장만한 승용차다. 곧 짐을 싣고 세리를 곁에 앉히고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세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꼭 일등을 해다오!”
마치 교회의 목사가 성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듯 그녀는 간절히 속삭였다.
이제 시동을 마치자 운전대를 잡고 서서히 교외로 빠져 나갔다. 내일 있을 경진대회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서둘러야만 했다. 우선 하루 전에 일찍 출발하여 그곳의 여관에서 밤을 보내고,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차가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핸드백을 열어 휴대전화를 꺼내려 하였다. 장 선생에게 출발하고 있다는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서두르다보니 휴대전화를 챙기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화장대 위에 놓은 채 출발한 것이다.
화장대 위의 남겨진 휴대전화에는 문자 메시지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댁의 아들이 동맥을 끊어 자살하였습니다. 연락바랍니다. -스위스 요양원에서’
밤은 붉은 잿빛의 안개 속에 서서히 깊어만 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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