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험난한 이 세상을 스스로 꿋꿋하게 헤쳐 나가야 하는 이 시대 청소년에게 보내는 격려와 응원의 무대이자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응원의 박수와도 같은 작품, 창작연극 <엑소더스>가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판타지적 상상의 흥미와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달려! 우리는 폭탄이 될거야!"
도시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변신은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질병처럼 번져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되고 나이키 운동화나 돌멩이가 되기도 하며, 머그컵으로 변신한 사람을 깨뜨려 과실상해죄로 검찰에 회부되는 사람도 생겨난다. 어느 날, 지호라는 남학생이 집을 찾아달라며 변신대책관리본부를 찾아온다. 지호는 변신했다가 돌아와 보니 자신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다른 변신자들과 달리 지호는 자신이 무엇으로 변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조사원은 지호에게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보게 한다. 지호는 어렵게 기억을 더듬어 머릿속에서 지워진 일들을 떠올린다. 과거를 되짚어 엉킨 기억을 풀어낼수록 점점 더 깊은 외로움만 쌓여가는 지호. 과연 지호는 집을 찾고 자신을 변신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수 있을까.
무심코 던진 외침 한 마디로 사물로 변해버린 청소년들. 그들 개인의 일상, 고민, 사연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청소년들이 사물로 변하는 도시 풍경은 코믹하고 밝고 역동적으로 그려지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은 그 뒤에 드리워진 쓸쓸한 그림자를 함께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변신’을 극단 내 마음의 지도의 이시원 대표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재창작하고 연출을 맡았다. 그는 '녹차정원', '좋은 하루', '내 심장의 전성기' 등 다수의 희곡과 연출작인 '내 심장을 쏴라', '외톨이들', '나무도령 이야기' 등을 통해 소소하고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무대 이창원, 조명 성미림, 의상 한복희, 소품 박현이, 음악 이남우, 사진 이강물, 디자인 노운, 조연출 강수현, 김윤아, 추태영, 신시현 등이 스태프로 참여한다.
배우 백종승, 이창민, 김설빈, 조수지, 박석원, 김수민이 출연하며, 특히 배우 김왕근, 유승일, 박종태, 오민석, 김동현, 문상희, 이갑선, 최영도 등 수 년 간 연극 무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온 배우들이 1인 다역으로 출연하며 후배 배우들의 지원사격에 나서며 극의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 MINI INTERVIEW - |
1. 이번 연극 <엑소더스>는 연출님의 원작, 중장년층이 사물로 변하는 이야기 '변신'을, 'Exodus(집단탈출)'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청소년극으로 재창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재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어떤 것들일지 궁금합니다.
→ 제목은 변신에서 엑소더스로 바뀌었지만 변신 모티브는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욕망과 분노, 연약한 감성들이 뒤섞여 격변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어른들은 변하지 않고 청소년들만 변한다, 왜 청소년은 변할 수 있는데 어른들은 변할 수 없을까. 그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저는 청소년의 변신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에 중점을 두었고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은 청소년의 변신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연극이지만 기성세대의 세태가 담긴 장면들이 더 많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기성세대의 생각과 가치관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있는 청소년들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2. 저도 중고등학교 졸업한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네들의 요즘 시간표를 보면 당시 도대체 어떻게 그걸 다 해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작품 속 다양한 변신들 중 기성세대에게 공격이 가능한 대상으로 변신한 것은 체제의 전복만이 정답이란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어디로, 어떻게 '탈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작품 속에서 청소년들이 변신하는 사물은 무척 다양합니다. 의자에서 공부하고 의자에서 먹고 자고 하던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가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학생은 돌멩이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던 학생은 폭탄이 되기도 하죠.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하는 기성세대들은 청소년들이 폭탄으로 변신해 어른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중에서 곰폭탄으로 변신한 중학생을 해체하러 온 어른들은, 폭탄으로 변신한 청소년을 시민들을 위협하는 불법무기라고 규정하고 폭탄을 해체해버리지만 중학생의 누나는 ‘폭탄이 아니라 내 동생일 뿐’이라고 말하거든요. 어쩌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기에 자폭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른이 되면 10대 시절을 쉽게 잊습니다. 무엇을 좋아했고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까먹어버리죠. 이 작품은 그렇게 청소년 시절을 까먹은 어른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청소년을 바라보는 작품이랄까요.
3. 작품에서 청소년들은 살아 숨 쉬지 않는 무생물, 사람이 만들어낸 사물로 변합니다. 유럽소설이나 그리스 신화에서는 때로 사람이 신이 만드는 창조물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 식물이나 벌레 등으로 변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로 변신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엑소더스’의 원작인 ‘변신’이란 희곡을 쓸 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우리가 사람일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을 권리를 갖는 것도 인간일 때만 가능하게 됩니다. 동물이나 식물처럼 생명을 가진 생물이라고 해도 인간존엄성은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로 본다면 사물은 말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사물일 때 우리는 그 사물을 어떻게 대할까요. 그래서 저는 생명력이 없는 사물로 청소년을 변신시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청소년들 스스로가 사물로 변신하여 아무것도 아닌 채 잠시 쉬고 싶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모든 걸 내려놓고 정말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삶을 끝내고 싶다는 의미보다는 삶을,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이죠.
청소년들의 변신은 사람이기를, 청소년이기를 잠시 거부하는 일종의 ‘파업’ 선언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4. 연출님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대사가 왜 가장 인상 깊은지 궁금합니다.
→ 주인공인 지호가 공원에서 만나는 뮤지션의 노래 가사인데요, 이 뮤지션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는 변신곡을 만들어서 유튜브를 장악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그 뮤지션의 노래 중에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왜 살고 있나. 무엇 때문에 살고 있나.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가사가 나와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주 간절히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분노와 절망을 머리에 넣고 가슴으로 울면 변신할 수 있다는 대사가 이어져요. 저는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질문들이 너무 어렵습니다.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라서 계속 제 삶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죽을 때까지 그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갈 테고, 어린 제 딸도 그런 질문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죠.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로 꼽아봅니다.
어른은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의식과 사고가 성장하지 않은 채 겉으로 나이만 먹은 사람은 성인으로서 제 앞가림을 하며 살기 힘들다.(나이를 한두 살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람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적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 외적 변화는 내면의 변화에 영향을 줄 만큼 강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 김병완 저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자칭 ‘어른’들은 자신들도 모두가 지나왔던 ‘청소년’ 시기를 각자 힘들어하며 보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만의 욕망을 무조건 억제하고 조정하려 한다. ‘어른’들의 인식이나 판단이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다. 그리고 ‘어른’들도, ‘청소년’들도 정체성 또한 불변하지 않고 항상 변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어른’에게만 향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있을 때 자신의 가치 또한 확인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꿈꿀 수 있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작품 <엑소더스>를 통해 당신이 꿈꾸는 변신이 무엇이든 그것이 당신을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