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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권력의 모순을 뒤엎다 - 통렬한 고통과 쾌감, 연극 <비너스 인 퍼>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8/10 00:08 수정 2019.08.10 09:17
당신도 같은 걸 원하고 있잖아요, 나처럼
'비너스 인 퍼' 포스터 /(제공=달컴퍼니)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가장 에로틱하고 신선한 연극 <비너스 인 퍼>가 지난 시즌보다 더욱 탄탄한 모습으로 재단장하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18일까지 곱씹을수록 겹겹이 드러나는 욕망의 실체로부터 드러나는 짜릿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자허마조흐의 소설을 각색하여 새로운 연극을 쓴 작가 겸 연출, 토마스

비굴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진 미스터리한 배우, 벤다

환상과 현실, 유혹과 파워, 사랑과 섹스

그 모든 것들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그들만의 오디션이 시작된다

마조히즘을 모티브로 쓰인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새로운 연극의 여주인공을 찾는 오디션장.

오디션이 종료된 후, 참가한 모든 배우의 부적절성에 대한 불만을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는 토마스 앞에

난데없이 오디션을 보겠다고 벤다가 나타나지만,

토마스는 자신이 싫어하는 ‘배우의 습성’을 모두 가진 것으로 보이는 벤다를

보고 오디션장을 그냥 떠나려고 한다.

어떻게든 오디션이 보고 싶었던 벤다는 토마스를 어르고 달래고 유혹하지만
토마스가 꿈적하지도 않자 비굴한 모습까지 보이며 그를 붙잡는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시작된 그들만의 오디션.

오디션이 시작되는 순간, 완벽하게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변하는 벤다를 보며

토마스는 그녀에게 장악 당하고,

그들 사이의 힘의 균형은 그의 소설처럼 완전히 뒤바뀐다.

'비너스 인 퍼' 리허설 사진_벤다(이경미), 토마스(김태한), /ⓒ김종범(제공=달컴퍼니)
'비너스 인 퍼' 리허설 사진_토마스(김대종), 벤다(임강희) /ⓒ김종범(제공=달컴퍼니)
'비너스 인 퍼' 리허설 사진_토마스(김태한), 벤다(이경미) /ⓒ김종범(제공=달컴퍼니)
'비너스 인 퍼' 공연사진_토마스(김대종), 벤다(임강희) /ⓒ김종범(제공=달컴퍼니)

2017년 약 한 달간의 짧은 초연으로 모두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연극 <비너스 인 퍼>는 초연부터 함께 하며 국내 프로덕션의 틀을 다져온 김민정 연출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으며, 지난 시즌 ‘벤다’로 호평 받은 이경미 배우를 비롯하여 배우 김태한, 김대종, 임강희 등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해 더욱 섹시하게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너스 인 퍼' 커튼콜 사진_벤다(이경미), 토마스(김태한) | 수면아래 비치는 물그림자처럼 무대 아래 비쳐지는 그림자는 무대 위와 아래의 실체의 모호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권애진
'비너스 인 퍼' 커튼콜 사진_멍청한 배우를 극도로 싫어하고 배우들에게 모욕감을 줌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주장하는 사티스틱한 연출가 토마스 김태한 배우 /ⓒ권애진
'비너스 인 퍼' 커튼콜 사진_벤다(이경미), 토마스(김태한) /ⓒ권애진
'비너스 인 퍼' 커튼콜 사진_토마스가 쓴 작품을 'SM포르노'라며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연출에게 상대 역할을 강요하는 등 당찬 모습과 비굴함을 동시에 가진 미스터리한, 가부장적 시선 속에 규정된 여신이 아닌 '나는 나'인 존재, 현대적이면서 독립적인 아프로디테 벤다 역 이경미 배우 |/ⓒ권애진

연극<비너스 인 퍼>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심리상태를 일컫는 ‘마조히즘’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오스트리아 작가 자허마조흐(L.R.von Sacher-Masoch)의 동명 소설을 2인극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2010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에 ‘가장 섹시하고, 가장 신선한 연극’이라 평을 받으며 개막과 동시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국내에서는 2017년에 초연을 선보였으며, 평단 및 관객들의 호평 속에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시즌을 함께하는 배우들은 “다소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 위트가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대본을 다 읽었을 때에 프레임을 박살 내는듯한 쾌감을 느꼈다. 짧은 공연 기간이지만 배우들이 느꼈던 쾌감을 관객들도 함께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개막 소감을 밝혔으며, 김민정 연출은 “연극 <비너스 인 퍼>는 연극의 내용이 연극 자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메타연극의 형식이 매우 강화된 연극이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의 분석과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배우들과 제작진들이 계획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잠자리 날개 같은 세밀한 한 겹 한 겹들이 무대의 요소들과 만나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번 시즌 작품에 대한 소망을 관객들에게 전하였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작품 <비너스 인 퍼>를 제작한 달 컴퍼니는 창작 뮤지컬에 특화하여 공연 소재를 발굴하고 디벨롭 공연을 통해 우수한 작품을 육성, 발전시켜 상업 공연으로 최종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2013년 설립한 회사이다. 작품 제작 외에도 공연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획과 제작을 대행하는 제너럴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하여 높은 작품성과 최고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하나씩 파고 들어가면 모호하고 모순되는 속성들을 만나게 된다. 연극 <비너스 인 퍼>는 집요하게 질문을 파고들어 고대, 르네상스, 근대와 현대를 이어온 권력과 욕망, 존재에 관한 논쟁을 펼친다.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타치아노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거울을 통해 비너스의 얼굴을 보고, 비너스는 자신의 얼굴과 자기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루 리드의 노래 '비너스 인 퍼스'(극 중 토마스가 '에스 없이 그냥 퍼'라며 희곡이 독일 소설을 각색한 것이라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알반 베르크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기악곡 '리릭 슈트'(극 중 토마스가 장면 전환 음악으로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저흐의 극단적 감각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 등 르네상스 회화 뿐 아니라 근대소설, 신화와 현대음악까지 방대한 예술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관통하며 속속들이 들여다 본다는 지적 허세와 함께 극대화시킨 언어의 해일 속에 날카로운 모순을 집어내는 장면들은 웃음을 넘어선 짜릿한 쾌감마저 안겨주고 있다.

권력은 지나가는 바람이다. 애쓰며 지키려 할 수록 어디서 누가 채갈지 모르는 잡히지 않는 위태로움이다. 권력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계급사회에서 탄생된 파괴적이고 억압적인 구조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전복은 새로운 구조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예절'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강요하는 행동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연극 <비너스 인 퍼>에서 전복된 지배구조와 예절의 파괴는 당연하게 억압을 받아오던 이들에게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며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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