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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것, 감성의 본능에 던지는 신선한 충격 - 연극 ..
문화

인간적인 것, 감성의 본능에 던지는 신선한 충격 - 연극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08/14 23:00 수정 2019.08.15 00:02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단체사진_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로스(이준영), 라성연 연출, 스티비(김수아), 마틴(박윤석), 빌리(박지훈)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과 상식 속에서 인간적인 것 혹은 감성의 본능에 많은 질문을 던지는 연극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작년 공연보다 더욱 탄탄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아쉽도록 짧은 기간 동안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였다.

마틴과 스티비, 그리고 아들 빌리는 완벽한 결혼생활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 최연소 프리츠커 상을 받은 뛰어난 건축가인 마틴은 이번 주에 5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수상과 생일을 축하할 겸 40년 지기 친구이자 TV 진행자인 로스는 마틴을 인터뷰하러 온다. 그러다 마틴은 로스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데...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뛰어난 건축가이자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마틴(박윤석) /ⓒ박일호(제공=베타프로젝트)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마틴의 40년지기 친구이자 TV진행자 로스(이준영)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함께 둘 만의 비밀이야기를 나누는 로스(이준영), 마틴(박윤석) /ⓒ박일호(제공=베타프로젝트)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암흑같은 절망속에 갇힌 듯한 스티비(김수아)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서로의 이해를 구하지만, 공허한 대화를 계속하는 스티비(김수아), 마틴(박윤석) ⓒ박일호(제공=베타프로젝트)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곳을 이야기하는 빌리(박지훈), 로스(이준영), 마틴(박윤석)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또 다른 비밀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빌리(박지훈), 마틴(박윤석) /ⓒ박일호(제공=베타프로젝트)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공연사진_먹먹한 결말을 맞이하는 로스(이준영), 스티비(김수아), 마틴(박윤석), 빌리(박지훈) /ⓒ권애진

극은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50살의 건축가가 염소와 사랑에 빠지며 부인, 아들, 친구와의 관계가 변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기에 나무랄 데가 없는 부부의 결혼생활, 십대인 아들이 동성애자이지만 그것마저 인정하는 이 가정은 동물과의 사랑 혹은 성적인 결합을 마주하면서 파국을 향해 간다.

지난 2002년 토니상, 뉴욕비평가협회상, 드라마데스크상, 외국비평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마지막 희곡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의 이번 공연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소재를 전면에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 배우들의 작은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호흡의 간격 하나하나까지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흡사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만드는 쉽지 않은 경험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무대 위 공연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 당연하다 여기던 상식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하게 만들며 오래되록 회자시키는 신기한 매력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마틴 역 박윤석 배우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스티비 역 김수아 배우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빌리 역 박지훈 배우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로스 역 이준영 배우 /ⓒ권애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컨셉사진_로스(이준영), 스티비(김수아), 마틴(박윤석), 빌리(박지훈) /ⓒ권애진

에드워드 올비의 미국 상류층 이야기를 다룬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는 번역가 임선희, 드라마터그 박새라와 라성연 연출가의 세심한 작업을 거쳐 한국의 관객들에게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로 재탄생되어 관객들과 함께 하였다. 박윤석 배우, 이준영 배우, 박지훈 배우, 김수아 배우의 절묘한 호흡과 연기의 앙상블은 러닝타임 내내 눈빛과 호흡, 대사 하나하나까지 위화감 없이 관객들의 마음속에 가감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어 주었고, Shine-Od 무대감독, 박소라 조명감독, 이승호 음악감독과 움직임을 지도한 배유리 안무가는 그들의 연기에 아낌없는 힘을 실어주며 작품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 MINI INTERVIEW -

1.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뻔하지 않은 유머와 독설, 아이러니들로 정면 돌파하며 대사 하나하나, 호흡 하나까지 따라가며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텍스트의 힘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독특한 작품을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번역과 연출에서 어떤 점들에 주안점을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를 연출한 라성연 연출가 /ⓒ권애진

: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에는 미국 상류층 문화에 대한 풍자와 언어에 대한 시니컬한 유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들은 미국 문화 풍토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화에 대한 언급이 그러하고, 영어 알파벳으로 장난을 하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들은 원작의 의미를 한국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배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새롭게 쓰여졌습니다. 원작을 직역하는 것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맥락 속에서 그 의미가 더 잘 전달 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2. 이 작품은 경계와 금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여깁니다. 자크 데리다의 '동물-정치',질 들뢰즈의 '동물되기' 등 타자화되었고 인간중심으로 분리되던 동물과 인간의 경계의 근대 이후 변화에 대한 연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스티비의 대사가 가장 깊었다고 전하는 라성연 연출 /ⓒ권애진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현대 21세기의 사회학의 개념들은 만들어진 상식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능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사회적 선택의 영역의 문제라는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야생과 문명이 더 이상 직선적인 발전 과정이 아니라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제는 더이상 놀랍지 않은 개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에는 여전히 통념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성이라는 것과 문명적 우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은 우월하고, 그렇지 않은 집단은 뒤쳐져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현상들이 드러나는 요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수간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합리와 논리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정상이라는 것의 원형이나 본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증오나 미움보다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순수예술이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들을 비롯한 모든 문제들을 감정의 밑바닥을 직접 두드리지 않고 언어유희를 통해 우회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고품격 코미디, 우리나라의 신파와 다른 격조 높은 작품이라는 평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들 중 이러한 유형의 작품들이 있을까요? 알고 계신 다른 작품들의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작품은 우리나라의 신파적 드라마보다는 오히려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구조를 띄고 있다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신파는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공감하며 그 사람의 상태로서 상황을 바라보게끔 합니다. 하지만 브레히트 식의 서사극은 한 인물의 감정을 따라 가기보다는 계속해서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깨면서 상황에 대해 관객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을 주는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작가의 공연 중 신파를 제외하고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지만 꼽아보자면 고연옥 작가님의 작품들이 신파와 서사의 경계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곡을 읽는 것으로 생각하여 추천한다면 헨릭 입센의 <유령>과 아서 밀러의 <시련>을 추천합니다. 신념과 믿음에 대한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가에 대한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이 굳건해진 만큼 타인의 생각들도 굳건해질 수 있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여 추천합니다.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포스터 /(제공=라성연X베타프로젝트)

2015년 태어난 ‘Beta Project’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관계회복을 목표로 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집단으로 매 회 프로젝트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현상을 표현해 내고, 그것을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로 구성하여 끊임없이 Beta-test(제품을 정식상품으로 내놓기 전에 오류가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자 계층들이 써보도록 하는 것)함으로써 목표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퍼포먼스 공연 ‘불현듯,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전시퍼포먼스 ‘캐리어’ 등 실험적이고 미학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베타프로젝트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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