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러시아의 대작가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포에마(운문 서사시)가 무대 위에서 연극으로 재해석되어 국내 초연작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연극 <집시들>은 지난 14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극장 동국에서 관객들과 함께 무대 위에 ‘자유’를 채워 나가고 있다.
알레코는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군상과, 소유권을 지키기 위한 법이 지배하는 문명 세계 안에서 끔찍한 부자유를 느낀다. 구도자처럼 자유를 찾아 떠돌아다니던 알레코는 좌절감 속에 죽음을 결심한다.
죽음을 실행에 옮기려는 바로 그 순간, 자유로운 집시 여인 젬피라가 알레코 앞에 나타난다. 젬피라는 알레코를 집시들의 세계로 데려가고, ‘겁 많고 착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집시 공동체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인다. 그로부터 2년 후, 집시들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알레코는 점차 젬피라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자유를 동경하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포획하려는 알레코의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동시대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는 연극 <집시들>은 처음부터 희곡으로 쓰이지 않은 포에마를 연극화한 만큼, 시적 언어의 여백을 관객이 스스로 채워나가는 실험을 시도한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창작벨트 선정작 ‘G의 영역’에서 여성들 간의 사랑과 우정을 감각적인 대사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던 신예 장영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
한국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을 재해석해 온 극단 호호바다의 조하영 연출은 2017년 창작발표된 전작 ‘치치코프’에서 니콜라이 고골의 원작 ‘죽은 혼’을 각색하여, 죽은 노예들을 사들이며 ‘소유’에 골몰하는 치치코프를 통해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 <집시들>에서는 문명의 대안세계로서 ‘소유’하지 않은 가상의 집시공동체를 상상해 낸다. 무용과 움직임 디렉팅에 강점을 지닌 연출가답게, ‘자유’의 질서로 움직이는 집시 공동체만의 색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젬피라의 어머니로서, 집시 공동체를 이끄는 대모인 노파 역은 ‘모텔판문점’으로 제6회 서울연극인대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며, ‘햄릿아바따’, ‘숨통’ 등에서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20년 경력의 베테랑 이미숙 배우가 맡아 독보적인 표정과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자유의 공동체에서 자라난 여성 젬피라 역은 ‘처의 감각’, ‘너에게’, ‘나의 사랑하는 너’ 등에서 지적이면서도 전복적인 힘을 보여준 팔색조 매력을 지닌 황순미 배우가 맡아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집시의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유를 동경하여 집시 세계로 들어간 현대인 알레코 역은 ‘엘렉트라’, ‘댓글부대’,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김원중 배우가 맡아 이중적인 알레코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MINI INTERVIEW -
1. 작가님과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러시아 문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연출) 러시아문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접해본 러시아 문학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들이 어떤 한 특정한 다수에 의한 일화라기보다는 사람과 자연 만물에 대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 아름다움과 철학(!), 깨달음과 가르침(!) 그리고 코미디까지요. 그래서 어두운 내면을 이야기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어지는 그런 것…….이런 게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작가)연출님이 예전에도 ‘죽은 혼(니콜라이 고골)’을 ‘치치코프’라는 연극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연출님이) 러시아에 가 보았던 만큼 러시아 문학을 저와는 다르게 이해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체감해서 이해하는 사람의 즐거움이 보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러시아 문학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유명한 희곡이나 소설 작품들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유머들, 유머 밑에 항상 깔려 있는 존재론적인 고민 그리고 사유를 좁히고 좁혀 들어가서 끝까지 생각하는 진지한 인물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2. 압축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포에마란 장르를, 푸쉬킨의 많은 장르의 작품들 중 희곡화를 결정하게 만든 매력이 어떤 점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각색과정에서 작가님과 연출님의 소통 과정들도 궁금합니다.
(연출) 좀 긴 이야기입니다. 우선 결정하게 된 계기는...저는 대본에서 보다는 소설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푸쉬킨은 러시아에서 사랑받는 작가 중 한명입니다. 거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푸쉬킨의 운문 서사시는 소설과 같습니다. 이야기가 있고 (기자님도 언급한) 압축의 미학(!)에 매료되었습니다. 과거의 것을 가져와 우리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각색 과정에서 작가님과 정말 신나게 데이트했던 것 같습니다. 겨울에 만나서 작품선택과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논의하고 희곡화 시키고 공연으로 올라가기까지 두 계절이 지났습니다. 공연이 끌날 즈음엔 이미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겠네요.
작품을 희곡화 할 때 작가님과 저의, 지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세계관이 있었고, ‘당신이 생각하는 자유는 어떤 것인가?’란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 물음 속에 소유라는 것, 그 소유를 통해서 자유를 느끼진 않은지...란 생각이 들었고 자유와 소유는 어떻게 보면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으로 작품을 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소유의 끝판을 달려보자’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었고,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사랑하지 않더라도..그 무엇이라도 사랑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푸쉬킨의 작품 속에서는 남성서사인 아버지의 역할을 여성서사(어머니)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연극 <집시들>에서는 한 사람의 자유를 가장한 소유로 몰아갔습니다. 그런 마음이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되는 괴물로 만들어버림을 미학적으로 풀고 싶었습니다.
(작가) (아아)지난해 겨울부터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일단 이 작품은 전적으로 연출님이 하자고 하셔서, 연출님의 촉을 믿고 하게 된 작품입니다.
연극대본으로 만들면서 부터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서사시이니까 인물들이 대화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다 풍경과 상황 묘사입니다. 그것도 심상치 않은 시적 언어로 잔뜩 쓰여 있습니다. 일단 묘사들, 그걸 어떻게 극으로 만들지? 누가 이 지점을 말하게 하지? 어떻게 시적인 표현들을 쓰되, 이해하기 쉽게 만들지? 하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작의 경우 서사만을 따라가면 ‘집시 여자의 심장은 자유롭다’고 묘사되고, 그래서 어느 날 그냥 젬피라가 덜컥 바람이 납니다.
노파 역할도 원래는 젬피라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주인공 알레코에게만 주로 이입을 하시구요. 그래서 알레코의 입장에서만 진행된다는 게 연출님과 저에게는 큰 벽이었고 문제였습니다. 고민 끝에, 젬피라와 노파의 서사를 더하고, 결코 ‘자유’를 얻지 못하는 알레코의 모습을 그려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작에서 알레코가 계속 도시의 부자유에 대해 묘사하는데, 거기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럼 자유롭다는 건 뭘까? 왜 이 인물은 부자유에 대해 이렇게 끊임없이 경멸하면서, 결국 젬피라의 목숨을 빼앗는, 부자유의 극단을 보여주는 짓을 하는가? 그때 당시에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를 읽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거기서 각색의 기준이 될 만한 힌트들이 잡혔던 것 같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자유로워지겠다고 하는 남자가, 집시 공동체 안에서도 사실 ‘여전히’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소유욕의 극단은 사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짓일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걸 당연한 진리로 알고 있는 집시 공동체에서, 절대 변하지 않겠다고 과장되게 말하는 어떤 현대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여전하다는 말을 계속 포인트로 잡아서 쓰게 되었습니다. 여전하고, 여전하고, 끔찍하도록 여전한 내 안의 ‘소유욕’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이 떠올리면서 나름대로 제 안에서 소유, 자유의 축을 세워서 각색을 시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연 끝에 노파와 젬피라가 알레코를 정말 생경한 풍경을 보듯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비난하지도 않고 낯설게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출님한테도 아직 말씀을 안 드린 것 같은데, 그 장면을 보면서 ‘아, 난 이런 장면을 정말 보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전체가 다 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진짜 연극으로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시에서 ‘시간의 경과’라고 처리된 부분들이 있어서, 그 부분들을 서사적으로 채워야 할지 고민도 끝까지 들었지만. 연출님의 전작 ‘치치코프’를 영상으로나마 봤기 때문에 ‘이 분이라면 할 수 있지!’라는 믿음으로 달려왔습니다.
공연 이후의 반응들을 전해들으면서 관객들이 여백을 자연스럽게 채워주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고 안심이 됩니다.
3. 포에마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운율의 반복을 무대 위에 구현한 점 참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독특한 움직임과 표정, 시적인 대화 그리고 그것들이 한데 어울리는 여백 가득한 프레임 안의 무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우와 스텝들 모두 구현이 쉽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연출님과 배우님 사이 디렉팅 면에서 어떤 것에 중점을 두었을지 궁금합니다.
조하영 연출 ▶ 포에마를 희곡화시키고 여백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상상하고 그리는 것을 말로 구연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제가 말을 너무 못하고, 연기도 못하니 (저의 생각을)보여 줄 수도 이해시키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모두가 한 뜻으로 이해하려 하고 또 말의 해석까지 함께 하며 정말 재미있게 연습했습니다.
저희 연극 <집시들>은 정말 단순한 이야기 구조라서 그냥 무대에 올리면 아마도 막장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꿈으로 시작해서 꿈으로 가자는 말을 먼저 하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집시들의 생활이 그대로 무대로 옮겨지고 그것을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닌,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면 ‘보게 된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꿈' 이라는 것에 집시들의 말과 몸짓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종국엔 자유와 소유가 맞닿아 있는 것이 흡수된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 작품은 그 무엇보다도 배우의 연기가 다 인 것 같습니다. 배우들이 수백 가지의 아이디어를 내고, 장면들을 같이 해보고 정말 신나고 치열하게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웃겨서 저희들 눈가에 주름을 걱정할 정도로 행복하게 연습했습니다.
이미숙 배우 ▷ 상상력과 표현력을 통한 트라이(시도) 통해서 계속 소통하면서 깨고 부수고를 반복한 점에 중점을 두며 연습을 했습니다.
김원종 배우 ▶ ‘계속 새롭게 볼 것’이 연습 중에도 그리고 지금 공연 중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순미 배우 ▷ 이 작업의 과정이 (다른 공연들과는) 조금은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연출의 방향과 연출이 제시하는 큰 틀을 함축적으로 또 인생의 어떤 '순간' 들로 표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장면에서 배우들이 각자 구현해 낸 것을 연출이 보고 그 순간의 감정에서 느껴지는 것들에서 어떤 부분은 더 증폭하거나 방향을 수정하거나 또 더 끌어내 주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던 것 같습니다
4. 연출님과 배우님이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조하영 연출 ▶ 연출이 아닌 조하영인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웃길 때’입니다. 실컷 웃을 때...(하하)전 웃음이 아주 많습니다.
이미숙 배우 ▷ 자유... (그냥 그 자리).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꿈꿉니다. 정작 자유의 본질이 무언지 잘 모르면서, 이상을 쫒듯...그렇지만 자유는 우리가 편하게 느낄 때 인 것 같습니다. 늘 인간은 가까운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죠. 그래서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들을 하죠. 아주 큰 게, 무언가 대단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냥 ‘그 자리’인 것 같습니다. 자유란 것은.
김원종 배우 ▶ 자유는 옥죄는 것이 있을 때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알바를 안가는 주말이나 비가 한참 오다가 해가 쨍쨍한 어느 날을 마주하거나 한정판 신발을 내 노력으로 가졌을 때......무한한 자유를 느낍니다.
황순미 배우 ▷ ‘자유’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으로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저도 처음으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 같고요. 지금 제가 생각 하는 자유, 그리고 젬피라가 알고 있는 자유는 ‘사랑’과 동반 할 때에 가질 수 있는 개념 인 것 같습니다. '자유가 없는 사랑', '사랑이 없는 자유'는 진정한 사랑 혹은 자유 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알레코에게처럼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요. 사랑,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 ,우주적인 큰 개념의) 그 안에서 내가 오롯이 나 일수 있을 때 그것이 '자유'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용, 연극 분야에서 공연 경력을 바탕으로, 극예술에 필요한 배우들의 행동양식과 연기를 위한 움직임들을 다년간 연구 및 체계화 시키고 있는 1인 극단 '호호바다'는 넓고 넓은 바다와 같다는 뜻이다. 1인 구성이지만 기술 감독, 제작, 기획, 배우 등 10인 이상의 프로젝트 팀원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연극 연출뿐만 아니라, 극에서의 미장센을 만드는 작업과 움직임 디렉팅을 함께 수행하고 있으며, 극예술의 요소에 필요한 움직임과 행동 양식을 체계화하여 연극, 무용 등 창작을 기반으로 무대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삶이 관철하고자 하고 있는 극단 호호바다의 <집시들>에 이어질 다음 작품들도 기대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