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세상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사회와 폭력, 인간과 위로에 대한 연극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가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군대에서 3일 먼저 휴가 나온 현태는 휴가 첫날을 맞이하는 주영을 위해 부대 앞까지 마중 나온다. 주영과 현태는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함께 탈영하기로 약속한 사이다. 두 사람은 군대 밖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을 마주하는데…….
작품은 2014년 8월 부대에서 휴가 나온 두 명의 청년의 자살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사를 접한 작가는 몇 년 동안 청년이 남긴 몇 줄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분명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오늘도 매일의 뉴스에서 군대의 폭력과 집단 획일의 강요,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등의 사회 구조의 고질적 집단 폭력으로부터의 문제점들로 선택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듣는다. 작품의 제목,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가장 먼저 사건을 지나치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은 타인의 말을 들을 귀와 전달할 위로의 손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
윤미희 작가는 '상상해볼 뿐이지', '투명한 집', '나를 사로잡는 촌스러운 감정들' 등의 작품을 집필하였고 다른 작품들의 드라마투르그로도 활동하고 있는 차세대 극작가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김지나 연출과는 2016년부터 드라마터그로 만나 ‘이주’를 화두로 한 작품 세 편을 함께 올리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장시간 디아스포라와 경계, 삶과 죽음에 대한 연구와 고민들을 바탕으로 작품을 함께 만들면서 사회 속에 잠재되어있는 경계와 집단에서 소외된 ‘사람’에 주목하게 되었다. 두 창작자는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를 통해서 폭력과 집단성, 외로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김지나 연출은 연극이 사회의 현상을 가져와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작의 과정에서부터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객과의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내일로의 삶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하면서 이 공연을 통해 사회 속 사건을 직시하고 원인과 반성을 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타인’에 대한 위로의 노래이자 ‘나’를 위한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상집단 뚱딴지, 극단 불의전차, 극단떼아뜨르봄날, 극발전소301, 드림플레이 테제21 등 연극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극단 배우들의 조합으로도 주목 받고 있는 작품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배우 이국호, 류제승, 서정식, 송은지, 권겸민, 문승배, 정명군, 장석환, 이연, 도예준이 출연한다.
- MINI INTERVIEW -
1. 윤미희 작가님과 김지나 연출님은 '레일을 따라 붉은 칸나의 바다로'에서 작/연출가와 드라마터그의 인연을 이어 이번 작품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에서 작가와 각색/연출가로 함께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품의 각색/연출과정에서 작가님이 가장 중점으로 둔 부분들과 그 과정들이 궁금합니다.(‘처의 감각’의 작품도 고연옥 작가의 고선웅 각색/연출작과 김정 연출작의 두 가지 작품이 존재합니다. 무대미술과 함께 배우의 연기로 생명을 잉태하는 극화 작업에서 옮겨지는 매체의 특성에 따라 별다른 변경 없이 그대로 가져오거나, 뼈대를 빌려 매력이나 핵심적인 주제를 살리려 각색을 하고는 합니다. 무대화 이후 해석은 이제 오롯이 관객들이 몫일지도 모릅니다.)
윤미희 작가 ➜ 이전 작품에서 드라마터그 작업에서는 객관성을 유지하며 연출의 의도를 파악한 후 그것이 어떻게 잘 연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한 세계를 만든 작가로서 이해받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습니다. 연출의 의도도 충분히 존중하고 이해하지만 희곡의 대본화 과정에서 많은 부분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무대화 과정에서는 작가의 세계와 다른 부분이 많았기에 각색에 더 가까운 작업이라 판단하여 연출님에게 각색/연출로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2. 이 작품은 여러 극단의 배우들이 함께 모였기에 캐스팅 오픈부터 신기한 조합이란 느낌도 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캐스팅 과정과 서로 다른 극단 배우들의 호흡을 조절하는 디렉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지나 각색/연출 ➜ 희곡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살아있음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영과 현태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오랜 시간이 걸려 캐스팅을 완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상집단 뚱딴지(문승배), 극단 불의전차(도예준,정명군), 극단 청우(장석환), 드림플레이 테제21(서정식), 극단 차이무(류제승), 극단 떼아뜨르 봄날(송은지), 극단 낭만오빠(이국호), 권겸민 배우,이연 배우 10명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작업해온 방식이나 속도가 다를 것이라 예상했기에 각각의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섬세하게 그 방식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언어를 알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것은, 그간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함께 작업해보지 않은 배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불구하고 서로의 존중을 바탕으로 화합이 무척이나 좋았던 팀이었습니다. ‘팀’으로 하나가 되어서 쉽지 않은 연습 과정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공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배우들의 덕이었습니다.
3. 소수자,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여유가 없기에 상대방의 슬픔과 고통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버티라는 장면들은 참 속상하고 마음 아파지는 부분들이였습니다. 공연을 진행하면서 '위로'에 대한 작가님, 연출님, 각 배우님들의 마음의 진행들을 듣고 싶습니다.
김지나 각색/연출 ➜ 때로 남이 전하는 위로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위로인 지도 모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위로는 ‘말’로서만 전달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아직 위로를 전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타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그 사람 또한 나를 볼 수 있고, 그 서로의 공기 속에서 ‘혼자’의 고독이 아님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는 "저 왜 이렇게 떨리죠? 가슴이 쿵쾅거려요."란 주영 역 대사입니다.)
윤미희 작가 ➜ ‘위로’라는 단어 하나로 저는 이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여깁니다. 연출님은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있다’로 만들려고 한 듯 합니다. 하지만 작가인 저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자 함이 더 중요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유일하게 쓰다듬어주는 손마저 잘라버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불편하고 불편할지라도 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했고 진짜 ‘나’의 모습을 대면했어야 했습니다.(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는 무대에서 아쉽지만 전체 대사를 보여주지는 못했던 주영 역의 대사입니다. "나 너무 살고 싶어. 나 진짜 잘 살고 싶어. 나도 좀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 진짜 미치겠는데......다들 죽어라, 죽어라 하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까. 저 병신 새끼, 진짜 못 견디고 죽었네. 그것도 못 견디고 죽었네. 나약한 새끼, 병신 새끼, 열라 욕하겠지.")
이국호 배우 ➜ ‘위로’는 지켜봐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정식 배우 ➜ 자세히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위로’는 손을 내미는 것 그리고 내민 손을 부여잡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송은지 배우 ➜ 어떤 어려운 시간이 온다 해도 언젠가는 결국 지나갈 것이 분명하기에, 어떤 유효한 ‘위로’가 있다면 바로 ‘그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권겸민 배우 ➜ ‘위로’라는 것을 받고 싶을 때가 많지만 이젠 ‘위로’라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문승배 배우 ➜ ‘위로’는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듣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명군 배우 ➜ 위로라는 것, 위로 받는 것, 그런 것보다 있는 그대로 그냥 당신을 봐주는 것, 당신을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 그게 그대들을 위한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의 외침은 그 무엇을 원하는 소리가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그러나 그래주지 않는 현실에 외로워지고 슬퍼지며 힘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와 그들은 틀린 사람이 아닌, 조금은 다른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런 시랍들일 뿐입니다. ‘위로’는 그냥 봐주는 것 같습니다.
류제승 배우 ➜ 서로가 표현이 다르기에,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위로'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장석환 배우 ➜ 감히 제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가 얼마만큼의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의식과 무의식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불편해 하는 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위로의 의미는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한 인간을 바라보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와 같은, 어쩌면 당신이 겪었을 모든 고민과 외로움에 대해서 정치, 종교, 편견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인간으로써 손을 뻗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연 배우 ➜ 작품을 준비하면서 위로는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단어는, 이 감정은 어떤 것일까? 참 단순하게도 위로는 어떤 말보다 그저 들어줄 귀만 있음 되지 않을까? 위로라며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위로 받고 싶은 나 그리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그저 듣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예준 배우 ➜ 타인의 괴로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본인이 아니기에 가늠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는 당사자가 원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면, 오히려 당사자에게 괴로움을 더욱 크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마음 자체가 많이 무뎌져버린 우리네 세상은 분명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4. 작가님, 연출님, 각 배우님들의 차기작들이 궁금합니다.
윤미희 작가 ➜ 복수극을 쓰고 싶습니다. 주영이와 현태처럼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칼로 찌르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지 않으면 복수할 수 없는…… 하지만 그 마음이 쉽지 않아서 아직 가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지나 각색/연출 ➜ ‘레일을 따라 붉은 칸나의 바다로’가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되어 겨울에 공연될 예정이며, (2020 1-2월) 2020년 신작의 개발 리서치 단계에 있습니다.
이국호 배우 ➜ 내년 연출 예정으로 작품은 구상 중입니다.
서정식 배우 ➜ 10월 부평아트센타에서 전윤환 연출의 ‘아몬드’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송은지 배우 ➜ 국립극단에서 9월부터 공연되는 게오르크 뷔히너 작, 이수인 각색/연출작 ‘당통의 죽음’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권겸민 배우 ➜ 이 작품이 끝나는 바로 다음 주부터 극발전소301의 정범철 작/연출작 ‘그날이 올텐데’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문승배 배우 ➜ 10월에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3에서 공연되는 공상집단 뚱딴지의 황이선 작/연출작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장석환 배우 ➜ 11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중국 작가 궈스싱의 작품을 김광보 연출님이 연출한 ‘물고기인간’이라는 작품이 예정되어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류제승 배우 ➜ '내가 죽던 날'이란 영화를 촬영할 예정입니다.
이연 배우 ➜ ‘에쿠우스’ 연극의 지방공연과 서울공연 특별 출연이 있습니다.
정명군 배우 ➜ ‘나에게는 하반기를 채워줄 스케줄이 없다.’(작품의 제목을 패러디한 듯 한 대답에...오디션 결과들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도예준 배우 ➜ 올 하반기 미정입니다.(곧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열전 2017!’ 연극 극작 분야 발표작이자 2019년 서울문화재단 연극부문 작품지원 선정작인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도록 감추어져 있는 강압적인 위계와 말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폭력과 집단성, 외로움에 대해서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이 공연을 통해 사회 속 사건을 직시하고 원인과 반성을 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타인’에 대한 위로의 노래이며 ‘나’를 위한 믿음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길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