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4회
어느덧 새벽 다섯 시를 가리켰다. 장애아 보조 일을 한 후 신문 배달은 그만두었다. 여인의 몸으로 새벽에 다닌다는 것이 두려웠다. 습관적으로 일찍 일어나 창가에 다가갔다. 맞은편 이층 건물에서 조용히 찬송가가 들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가슴이 답답하여 자신도 모르게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의 교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건물의 2층 창 밑에 잠시 섰다.
“어둔 밤 쉬되리니 힘써서 일하고…….”
교회에 들어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주일성수라는 타이틀에 매이고 교인들에게 생과부의 사실이 드러나서 동정 받는 것도 싫고 두려웠다.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자신을 휘어잡았다. 땅이 갑자기 치솟아 공중에서 몸이 비틀거리듯 하는 불안감…… 어둔 동굴 속의 박쥐에게 쥐어뜯기는 듯한 참혹함…… 그 동굴 속에서 한 가닥의 불빛을 찾듯 그렇게 절규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차가운 고드름처럼 냉각된 외로움이었다. 인간의 부피를 줄이고 조이고 밟아오는 듯한 폭력은 외로움과 두려움이었다. 2층의 교회 건물의 불이 꺼지고 계단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인영은 재빠르게 골목 쪽으로 몸을 숨겼다.
이제 미명의 하늘 저편에선 붉은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어디선가 도둑고양이가 스산하게 울어댔다. 저쪽의 골목길에서 검은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담벼락 쪽에서 남자와 여자는 상체를 밀착하여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있다. 긴 머리의 뒷모습의 윤곽이 드러나자 동창인 규희의 얼굴이다. 여자에게서 몸을 뗀 남자는 도로변으로 향하여 걸음을 멈추더니 손을 들어 택시를 불러 세웠다.
“자기 안녕!”
떠나는 남자에게 여자는 손을 흔들었다.
인영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웬일이야, 또 신문배달! 바보야, 쉽게 좀 살아라!”
몸을 와락 기대며 딸꾹질을 하였다.
“이 꼴이 뭐야!”
화가 치밀었다. 밤새도록 남자와 유흥에 빠져서 비틀거리며 사는 규희의 삶이 마땅치 않았다. 어쨌든 부축하여 오피스텔로 향하였다. 방의 공기는 매캐하였다.
“아까 그 남자는 누구니?”
“남편!”
“남편? 언제 결혼했어, 나도 모르게?”
“꼭 결혼하여 같이 살아야만 부부냐? 바보야, 떨어져 살면 얼마나 편한데 그래!”
“편해서 떨어져서 산단 말이냐?”
“같이 살면 서로 싫증이 나고 물리고 싸우고 결국 이혼하게 되잖아!”
“아무튼 이해할 수 없다!”
“그만하자. 순진한 너에게…….”
규희는 핸드백을 더듬거리더니 담배를 꺼냈다. 곧 번쩍하며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입에 물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깊게 담배를 빨아 허공에 연기를 내뿜었다.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눈 밑엔 다크써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말했다.
“너 쌍둥이 키우느라고 언제 한 번도 신나게 놀아본 적 없지? 세상살이 뭐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 있니?”
규희는 일어나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그곳의 서랍을 열더니 초대장 같은 엽서를 꺼내어 인영에게 내밀었다. 가장자리를 붉은 장미로 금박으로 수를 놓아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게 뭔데?”
“파티 초대장이야. 잔말 말고 이번에 꼭 나와라. 거기서 임도 보고 뽕도 따게 될지 어떻게 알아? 자꾸 사람들을 만나도 보고 건수를 만들어 봐. 그 인물에 뭐가 부족해서 그러니?”
“갈 수 없어. 바쁘다는 거 알잖아!”
“요, 맹추야! 그냥 한 번 나와 봐.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고 구경도 좀 해보고……. 아휴! 답순이, 이 언니가 너를 챙겨주지 누가 널 챙겨 주겠어!”
규희는 다시 한 번 담배를 깊이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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