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소설의 기발함과 믿고 보는 창작집단LAS만의 독특한 매력이 함께 만나는 사이언스픽션멜로드라마,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1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낯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의 이야기를 평범한 부부의 일상을 통해 전한다. 지구 정복을 위해 사전 탐사를 온 외계인들은 인간의 몸에 영혼처럼 침투하여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개념’을 수집한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조차 믿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원작 희곡을 국내 무대로 옮긴 연극이다. 일본에서 연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로 만들어졌고 소설은 최근 국내 ‘알마’에서 출간됐다. 창작집단LAS가 매년 2편의 신작을 선보여온 ‘기상프로젝트’의 일환인 ‘라스낭독극장’을 통해 2018년 6월 산울림소극장에서 처음 소개됐고, 2018년 11월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초연했다.
<산책하는 침략자>가 펼쳐지는 세계는 외계인에게 개념을 빼앗긴 사람들이 그 순간 바보가 되어버리고, 외계인의 존재를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이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하면 역시나 바보 취급을 당하는 그런 곳이다.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사람, 그리고 ‘인간다워지는’ 외계인이 존재하는 세계. 그렇다면 이 세계를 만들어낸 것은 비단 지구를 침략하기로 마음먹은 외계인뿐인 걸까?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과 눈앞에서 명징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왜하고 불신하려고 애쓰는, 그런 이상한 사회적 시스템이 존재하는 세계였진 않은가? 그렇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인간다움’이란 것은 정말로, 무엇일까? <산책하는 침략자>의 이기쁨 연출은 관객들에게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 나갈지 또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창작집단LAS는 즐겁게 공연을 하기 위해 모인 젊은 예술가들의 집단이다. LAS는 반짝임, 갑작스러운 나타남, 활활 타오른다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다. 그들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고 감각적인 표현력으로 무대화하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들의 독특한 색으로 풀어내고 있다.
- MINI INTERVIEW -
1. <산책하는 침략자>라는 작품은, 전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로 처음 접해보았습니다. 낭독극 그리고 연극을 볼 때 아무래도 가장 먼저 접했던 영화와 캐릭터를 비교하면서 보게 되긴 했지만 매력이 반감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가 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에카와 토모히로 작가님의 희곡을 이홍이 번안가님과 함께 해석을 하며 작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 작가의 작품을 우리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해석에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두셨는지, 그리고 배우들의 캐스팅 과정도 함께 궁금합니다.
이기쁨 연출 ➜ <산책하는 침략자>는 마에카와 토모히로 작가의 희곡으로 처음 발표되었고, 마에카와 작가가 재구성한 동명 소설이 발간된 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드라마와 영화로 재창작한 것으로, 한 편의 글이 다양한 장르로 확장된 작품입니다. 큰 틀과 주된 내용은 비슷하지만, 이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풀어나가는 방식, 인물을 대하는 시선은 모두 다 다릅니다. 희곡 <산책하는 침략자>는 나루미와 신지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 각자의 시선과 태도를 다각도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나라마다 가지는 문화는 당연히 다르지만, 이 희곡에 담긴 본질적인 질문은 어떤 특정 나라를 떠나 공통적으로 통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책하는 침략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적 특성이나 그 인물이 가지는 심리의 변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낭독극과 초연을 거치면서 캐스팅이 조금씩 변화를 거쳐 왔는데, 이번 재연에는 사쿠라이 역의 권동호 배우와 히로키 역의 김대웅 배우, 쿠루마다 역의 김연우 배우가 합류하여 좋은 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번역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이라 하긴 힘들겠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는 '창작'이라 여겨집니다. 극단 라스의 낭독극들이나 이번 작품 그리고 '안녕, 잘가' 작품 등을 보면서 일본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정서에 너무나 어울리게 가져온다는 느낌을 받았고 참 대단하다 느꼈습니다. 번안가님이 느끼시는 일본작품의 매력(이번 작품의 매력 포함)과 우리말로 번역하실 때 가장 유의하시는 점이 궁금합니다.
이홍이 번안가 ➜ <산책하는 침략자>의 매력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개성이 강하고 흥미롭다는 점, 그리고 이런 SF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형식은 일상적인 대화극이고 테마는 철학적인데, 장르는 SF니까요. 일본 희곡은 극작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은 게 장점 같아요. 우리와 다르게, 연극이나 희곡을 배울 수 있는 학교(대학)가 거의 없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작정 써보면서 연극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장단점이 있겠지만,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그 작가가 성공하는 데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 연극은 굉장히 다양하다는 인상을 받고요. 우리나라에 알려진 작가들은 사실 극히 일부분입니다. 제 일은, 그런,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관을 고스란히 옮겨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연출가, 배우, 디자이너, 관객들이 최대한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늘 주의하고 있습니다. 말 자체보다는 뉘앙스를 포착해서 옮기려고 노력하는데, 이 과정은 <산책하는 침략자> 속 외계인들이 말이 아닌 개념을 가져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단, 혼자만의 해석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연습 때 나오는 얘기들을 주의 깊게 보고 배우들의 평소 말투도 열심히 들어둡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집단 라스 같은, 잘 맞는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3. <산책하는 침략자>의 소설과 희곡은 실연의 관람 이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결말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희곡과 연극의 결말 부분도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사실 낭독극을 보았지만서도 공연이 끝났다는 사실을 정확히 바로 인지하지는 못했기도 합니다. 결말 부분에 대해서 희곡의 결말을 그대로 하실지 등 여러 고민을 하셨을 듯합니다. 결말에 대한 고민들이 듣고 싶습니다.
이기쁨 연출 ➜ 낭독극이라는 것은 표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희곡의 결말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극의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마에카와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선택과 집중’이,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조금은 불친절하다거나 과도한 생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낭독극 공연 당시,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지점은 과감하게 덜어내고 나루미와 신지의 결말을 임팩트 있게 보여주는 것으로 그 종결을 내었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인물들의 결말은 보이지 않고 펼쳐놓은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짓지 못했었습니다. 낭독극을 본 관객들의 반응도 반반으로 나뉘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신지와 나루미의 이야기에 큰 충격과 감동을 느끼거나, 갑자기 이야기에서 사라진 사쿠라이와 마루오의 행방에 의문을 가지기도 했죠. 그래서 본 공연을 준비하면서 낭독극 때 선택했던 결말과 본래 희곡의 결말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아내고자 하였습니다.
4. 작품의 무대는 바닥은 타일, 횡단보도, 다다미 등 높낮이가 다른 구조물들로 정면의 벽면은 여러 재질의 네모난 면들을 모자이크처럼 꾸며 놓으셨습니다. 창 등 무대미술과 디자인에 각기의 의미를 두셨을 듯합니다. 일본에서의 공연은 접한 바 없지만 일본의 공연장과 연관 지은 디자인일지 새로이 창조해 낸 디자인일지와 디자인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기쁨 연출 ➜ 일본 공연에 대해서는 희곡 말고는 접한 것이 없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동일한 작품의 이미지나 영상을 보게 되면 그 잔상이 오래 남기에 굳이 찾아보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비교해보는 경우는 있지만요. 희곡을 읽고 처음 생각했던 것은 신지가 계속해서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장면이 진행되는 중에도 계속해서 산책하고, 개념을 수집하고 학습하는 외계인의 모습이 보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죠. 그리고 이 희곡에는 22개의 장으로 진행되는데, 장면마다 등장하는 수많은 공간들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지요. 서지영 무대디자이너와 많은 논의를 한 끝에 ‘산책하는 길, 산책하는 세계, 산책하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습니다. 외계인이 만나는 다양한 공간들이 무대 위에 존재하길, 이 공간들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이 그 무대 위에 존재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다다미방은 나루미의 친정집이어야 하고, 잔디밭은 골프장이라는 제약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물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 대한 커다란 이미지 위에서, 어떠한 공간 설정도 가능한 연극적인 무대로 표현되길 바랐습니다.
아르코ㆍ대학로예술극장 기획공연 ‘아르코 파트너’는 우리 시대 주목할 만한 예술가를 선정하여 공동 제작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각자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꾸려온 여섯 명의 연출가와 안무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결핍, 욕망과 이기심을 담담히 짚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