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마음 속 깊숙이 숨겨놓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한 부부의 이야기, 인생에서 스탑버튼을 누를지 플레이 버튼을 누를지에 대한 선택을 담은 좋은희곡읽기모임의 두 개의 연극 <싱싱냉장고+졸혼>이 오늘 9월 5일부터 15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76 극장에서 관객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려 한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희곡을 읽고 함께 토론한다. 처음부터 ‘배우’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배우가 희곡 속에서 어렵게 인연을 맺고, 그 긴 고통의 낮과 밤을 지내며, 함께 동시대를 숨 쉬는 그 ‘배역’으로 살면서, 이 시대의 ‘배우’로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연극인이 가장 최근의 무대예술체험 직후부터 그 다음의 무대예술체험이 있기까지 너무나 오랜 인내의 시간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연극 생태계를 감내해 내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예술적인 불만족으로 인한 영혼의 피폐함 그리고 예술적 가치의 불신으로 더 이상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좋은희곡읽기모임’은 현재 연극계의 제작 시스템에서는 쉽게 공연되기 어려운 희곡을 찾아서 읽기도 하고, 이미 무대화된 작품을 공연 직후에 희곡으로 다시 만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희곡’을 ‘텍스트’ 그 자체로도 맛볼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하여 서가에 꽂혀 있는, 잠자는 희곡을 새롭게 깨워 일으키고 있다. 지속적인 희곡읽기를 통하여 희곡의 문학성과 연극성을 고르게 체험하며 연극적인 소양을 기르고 있다. ‘다양한 희곡 읽기’야말로 배우와 연출 그리고 희곡을 읽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예술적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극인 뿐 아니라 연극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도 포함하여 공연예술의 가치를 나누고, 소통하는, 상호양방향의 예술적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0년 7월 처음 시작하여, 2013년에는 2ㆍ30대를 위한 ‘쇼팽의 희곡 읽는 아침’, 4ㆍ50대를 위한 ‘드뷔시의 희곡 읽는 아침’으로 나뉘어 이어지고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희곡을 다 읽는 것이 목표라 한다.
싱싱냉장고(작 김숙종, 연출 장용철) |
작은 방,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냉장고, 그 속엔 선희가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들어 있다. 냉장고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까지. 냉장고가 영원히 신선도를 유지해 줄 거라 믿었던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까? 과연 선희가 놓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멈추고 싶은 시간과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을 멈추고 싶을 때도 있다. 인생에서 기억의 스탑버튼을 누르고 싶은 선희의 이야기 <싱싱냉장고>는 선희 역 이보라 배우, 춘범 역 이진샘 배우가 원캐스트로, 동식 역 곽유평 배우와 송의동 배우 그리고 미진 역 김서정 배우와 박민선 배우의 투캐스트로 진행하여 배우마다 다른 색깔의 공연을 맛볼 수 있다.
졸혼(작 이은숙, 연출 장용철) |
젊고 아름답던 시절 결혼해 자식들이 출가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중년의 부부 상범과 인애. 사랑이란 감정은 퇴색되고 반복되는 일상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무렵 그들의 선택은 ‘졸혼’, ‘결혼을 졸업합니다’이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중년 부부의 이야기이다.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경쾌한 이야기 <졸혼>은 중년의 한의사 민상범 역은 작품의 연출을 맡고 있는 장용철 배우가, 아침드라마 전문배우로 민상범의 아내 정인애 역은 김나윤 배우가, 방송국 음향감독으로 정인애의 애인 홍상우 역은 이봉하 배우가 맡아 열연을 보여주고 있다.
- MINI INTERVIEW -
1. <싱싱냉장고>의 선희는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냉장고에 물건들을 넣어두고 기억, 추억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어합니다. 연출님과 배우님들은 어떤 물건이나 기억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은 게 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지 듣고 싶습니다.
장용철 연출 → 내 마음, 내 그리음, 내 추억들. 물건이라고 한다면 내가 자주 만지고 연주하는 악기들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습니다. 악기는 내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악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먼 기억을 새로이 아로새겨 주고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보라 배우 →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 그 기억들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손녀를 지극히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 돌아가셔서 지금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할머니의 품과 그 시간들이 제게는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합니다. 앞으로도 그 기억들을 꺼내 볼 수 있게 계속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습니다.
이진샘 배우 → 저는 처음 무대에 첫 발을 내딘 순간의 그 기분을 싱싱하게 보관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항상 초심을 유지하며 배우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김서정 배우 → 저는 저의 어린 시절, 가족과 행복했던 추억을 신선하게 기억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온전한 보호 아래 걱정없이 사랑받던 시절, 어른으로 가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없던 시절이 불현듯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 때의 기억을 가능한 한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습니다.
박민선 배우 → 저는 싱싱하게 보관하고 싶은 물건과 추억이 있습니다. 거의 아빠와 관련된 추억입니다. 집안이 어려웠던 시절, 외식 중에 제일 가기 쉬웠던 곳이 순대국집이였습니다. 그 순대국집에 가는 길, 가족과 함께 아빠와 손잡고 해가 지는 노을을 보며 식당으로 향하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 때 그 그림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물건 중엔 아직도 집에 있지만 7살 눈 오는 크리스마스 때 아빠가 선물해 주신 금색 연필깍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습니다.
송의동 배우 → 요즘 저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닳고 닳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영원히 잊혀지겠지만, 어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사람과 생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는 연기자가 있었다고 기억되고 싶은 것이 저의 큰 소망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가슴 안에 가득 차 있는 연기와 그림을 구상하고 표현하고 싶은 열정을 싱싱하게 오래 보관하고 싶습니다.
곽유평 배우 → 2016년 연극 '옐로우 하우스 : 반 고흐, 고갱과 아를에서의 9주' 작품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났었습니다. 반 고흐가 그림을 찢는 장면을 연습하던 중에 스피커에 머리가 찢겨 피가 흐르는 상황이 생겼었습니다. 저는 연습을 이어가자고 고집했지만 상대배우의 만류로 응급실로 갔었습니다. 온 몸으로 치열하게 연습을 했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담았던 눈물겹고 소중한 시간들을 싱싱냉장고에 깊숙이 넣고 싶습니다.
2. 결혼을 졸업하고 새로운 인생을 서로 축하해 주는 작품 <졸혼>의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생각하는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 궁급합니다.
장용철 배우 겸 연출 → 사랑과 결혼은 별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 결혼은 눈에 잘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안개 같은 것, 결혼은 돌담 같은 것ㆍ바람으로 만든 집ㆍ벽돌을 쌓아서 만든 탑일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시작 그리고 중간과 끝이 모두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쪼록 작품을 만나는 관객분들 모두 건강하고 슬기롭게 사랑과 결혼을 시작하고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나윤 배우 → 사랑...달콤쌉싸름한 사랑을 입에 물고 다 녹아 없어지면, 다른 사랑을 찾는 것 같습니다. 결혼...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봉하 배우 → 사랑? 안 보면 보고 싶고 생각나고 설레이고, 보면 더 설레이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결혼? 사랑이 합쳐져서 결실을 맺는 것이라 여깁니다. 졸혼? 결혼 생활이 무의미해지고 지쳐서 각자 다른 만남을 인정해 주는 것이기에, 결국 졸혼도 또 다른 시작일 것입니다.
다채로운 작품과의 만남의 장 ‘STUDIO76 愛 서다’의 네 번째 무대를 선보인 <싱싱냉장고+졸혼>에 이어 페스티벌의 마지막 작품 ‘최후만찬(극단 바람풀, 9.19~29)’을 끝으로 페스티벌의 아쉬운 막을 내린다. 지방극단과 해외 극단과의 교두보를 꿈꾸는 새로운 페스티벌은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