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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의 빵굽는 여인중 [딱새의 성-제 8회]..
기획

한애자의 빵굽는 여인중 [딱새의 성-제 8회]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8/19 02:57

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8회

약속한 금요일은 아이들을 평소보다 좀 일찍 저녁을 먹였다.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서 다녀오라는 듯 신기하고 얌전하게 일찍 잠이 들었다. 가까이 계시는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부탁하고,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대학가라서인지 학생들로 메우고 있다. 앞에 가는 남학생의 뒤를 여학생이 바짝 다가가 남자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정하게 속삭인다. 빨간색 코트를 걸쳐 입은 여학생은 매우 적극적인 현대여성, 강한 여성으로 각인되었다.



남학생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마치 그 머릿속에 다른 여학생과 사랑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먼 곳의 아득함과 안개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바지에는 무릎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머리카락은 노란색의 물을 들인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빨간색 더블단추코트에 검정색 미니스커트를 걸치고 귀에는 커다란 은색 귀고리가 출렁거렸다. 안달하듯 남자에게 계속 매달리듯, 애원하는 듯 하는 모습이다.

‘왜 여자는 정열적일까! 나도 저 여학생처럼 그 남자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추하게 느껴졌다. 왜 여자는 안달이고 남자는 초연하고 여유로운 것일까. 여자들은 초연한 듯 하는 남자에게 어쩌면 더욱 매력을 느끼며 집착하는 것인지 모른다.

‘집착하지 말자…….’

무장하듯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무관심하게 흘려버리듯 하였다.

 

레스토랑은 조용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렀다. 카페는 사십대의 중년층들 몇몇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추억의 가요들이 메들리로 이어졌다.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패티 김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안쪽에 자리를 잡고 테이블 위에서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짓고 무슨 원고인지 열심히 줄을 그으면서 읽고 있었다. 아마 무슨 드라마 대본을 수정하는 듯하다. 인영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곳에 다가갔다. 그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죄송합니다. 약속시간보다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바쁘신 분을 불러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인영이 맞은편의 자리에 앉자 그는 웨이터를 불러 식사를 주문하였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오, 내 사랑아! 아, 사랑은 타오르는 불꽃. 아, 까맣게 잊으려 해도 왜 나는 너는 잊지 못하나……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못 잊어…… 못 잊어…….”

계속해서 유심초의 노래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카페는 중년층의 문화가 흠씬 풍기는 분위기였다. 메뉴판의 맨 왼쪽의 상단에 낙지볶음과 와인을 주문하였다. 테이블 위에는 조그마한 대바구니에 팝콘이 가득히 담겨 있었다. 그는 인영에게 권하며 팝콘을 입에 넣었다. 아까 그 원고뭉치를 자신의 서류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웨이터가 낙지볶음과 와인을 가져왔다.

“드세요. 여기서 드실 만한 것입니다. 양식보다 한식을 즐길 것 같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왠지 인영 씨는 빵과 우유로 식사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우려낸 국물 종류의 식사를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식성까지 감성적인 예지를 번뜩이며 파악하고 있어 약간 당황스러웠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순수함이라서 그저 신기하고 좀 우습기도 하였다. 인영은 말없이 웃다가 남자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말없이 먹는 그의 모습에서 품위가 베어 나왔다.

 

처음 만나는 여자 앞에서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어떤 조용한 침착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 품위는 아까 테이블 위에 원고를 수정하는 모습에서 느꼈던 지성미와 결부된 모습이다. 자신이 읽은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잘 듣고 감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도 그가 좋아하며 함께 예술적 취미를 이해하고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일치감을 너무 빠르게 느껴버렸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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