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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의 [빵굽는 여인]중 [딱새의 성] -제 9회..
기획

한애자의 [빵굽는 여인]중 [딱새의 성] -제 9회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8/23 03:10


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9회

인영은 예술 애호가였던 결혼 전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월급을 타면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등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고가의 티켓을 구매하였다. 홀로 중앙 자리에 앉아 배경과 의상, 무대장치들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동작들을 새기며 간직하였다.

'이 세상에는 예술이 필요한 것이야.'

그 환상적인 발레의 모습! 그 신선함은 세상사로 혼탁해진 흐리고 더운 피를 신선하게 해주었다. 그 감동과 신선함은 6개월 동안 생생하게 그녀의 감성을 지배하였다.

그 당시엔 철없이 예술적 감흥에 젖어 사는 부르주아적인 생활이었다. 발레의 경쾌한 몸동작을 기억하며 집에서 거울 앞에서도 한 번씩 껑충거렸다. 마치 발레리나가 되지못한 아쉬움을 남긴 것처럼……. 그때만큼 행복한 때가 없었다. 인영은 매우 환상적이며 예술적 분위기와 낭만과 정열을 사랑하였다.

이 남자를 만나고 나니 한동안 접어 두었던 자기의 기질이 녹아져 어우러지기 시작하고 고개를 들었다. 과묵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산만하게 이어폰을 끼고 흔들흔들 하면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현대판 신세대의 젊은 남자와는 다르게 여겨졌다.

머리 모양이 단정하고 옷차림도 점잖고 기풍이 어려 있다. 도사처럼 수염을 길게 길러서 특이한 차림의 예술인의 흉내를 낸 흔적도 보이지 않는, 그저 평범한 남방에 기지바지 차림이다. 여자를 만난다고 해서 멋을 낸 흔적도 없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의식은 인영을 침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네?”

“혹시 연극을 하신 경험이 있나요?”

그가 연극에 관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티 홀에서 기획실장과 얘기할 때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글쎄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대에서 연기를 해 본 경험은?”

“고등학교 때 <방황하는 별들>이라는 작품에 출연한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 경험은?”

“대학교 때 <창밖의 사람들>이라는 사이코드라마를 공연하였는데 거기서 여자 의사 역을 맡았죠. 아마 장애아 위문 공연 작품이었던 같습니다.”

계속 묻는 대로 착한 초등학생처럼 답하는, 자신이 너무도 우스워 ‘풋’ 하고 웃었다.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그도 순수하게 웃는다. 서로가 ‘왜 웃어요?’라고 따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는 마치 범인을 심문하듯 질문공세를 한 것이 겸연쩍은 듯 유쾌하게 웃는다. 턱이 견실하게 그의 주름진 코밑의 가로주름과 조화를 이루었다.

“아, 그래요? 지적인 분위기에 여자 의사 역이 매우 어울립니다.”

인영은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마치 그때의 공연을 한눈에 꿰뚫는 능숙함 때문에 뭔가 허점이 드러날까 하는 순간적인 두려움이었다.

“쌍둥이를 키우며 어렵게 생활하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인영 씨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인영은 자신의 약점을 너무 무례하게 들춰내는 그에게 화가 치밀었다.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고 쉽게 내뱉을 수 있을까. 그의 표정이 악의 없이 선량해 보여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다.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죠!”

복잡한 감정 속에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인생을 평가하기는 너무도 이르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틀면서 그는 사뭇 여유 있게 말하였다. 사실 그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가슴이 벅찼다. 그 치솟는 그리움의 샘물을 막아버리듯 짐짓 이런 여유 있는 제스처로 감정을 숨기고 있는 중이다. 냉담하고 사려 깊은 고요함 가운데 그는 조용히 서두를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연극단에서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인영 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연극단에요? 제가 무슨 힘이 됩니까?”

“파티 홀에서 처음 뵈었을 때 지금 추진 중인 작품의 여주인공과 이미지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적당한 인물을 찾던 중에 인영 씨를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릅니다.”


비로소 자신을 만나고자 한 분명한 목적을 알게 된다. 그것은 사업상의, 직업상의 일이었다.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던 시선은 사랑과 애정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사무적인 시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렇다! 그때 그의 태도는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사업에 대한 관심이었다.

‘내가 착각했다!’

쓸쓸함이 전신에서 밀려온다. 자신이 초라하기 그지없고 처참하였다. 인영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부족한 천으로 가리듯 말했다.

“쌍둥이 아줌마입니다. 연극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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