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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애자의 <빵굽는 여인>중 <딱새의 성> -제 15회

한애자 기자 입력 2016/09/17 08:02




그녀는 시종 환하게 웃으며 인영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였다. 여인에게 속되지 않음과 교양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두렵거나 꺼리지 않았고 담대해진다.

생과자를 권하며 원장은 인영의 용모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넓은 이마와 깊은 눈매, 현모양처처럼 보드랍고 후덕해 보이는 입언저리, 그러나 무엇보다 넓은 이마 속에 삶의 현숙함이 빛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요즘 현대 여성에게서 볼 수 없는 바지런한 인상과 함께 고전미가 흐르고 있었다.

비록 인영은 약간 오래된 듯한 엷은 초록빛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생기와 총명이 반짝였다. 결코 누추하지 않고 오히려 기품이 있어 보인다.

다과를 나누다가 인영은 잠시 쇼핑백에서 아이들에게 줄 요구르트를 꺼내어 들고 다목적실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신 나는 듯 찰흙놀이를 하고 있고 한쪽에는 각자가 만든 작품을 진열하고 있다. 아이들의 얼굴은 뽀얗고 옷차림들이 귀티가 흘렀다.

“선생님, 오늘은 우리 아빠가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어요. 우리 아빠 정말 멋지거든요!”

아이는 아버지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는 표정이다. 이때 바다와 별의 표정은 매우 불행하며 어색하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그 어리둥절한 모습. 이어 바다가 험악한 표정으로 찰흙 인형의 손과 목을 자르기 시작한다. 잔인하고 공격적이었다. 인영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바다야!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바다의 팔을 잡고 저지시키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바다는 눈초리가 여전히 날카롭다.

“옆집 할머님 마귀할멈이니까 죽어야 한다고요. 맨날 나만 보면 애비 없는 놈이라서 역시 표가 난다고 꾸짖어요!”

바다는 계속 몸통을 난도질하듯 하였다. 옆집 노파는 남편이 사고로 하직했을 때부터 순 억지를 쓰고 심술궂게 대하였다. 인영이 손을 끌어 저지하려고 할 때, 원장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그만 두세요. 마음의 상처를 노출시키면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이 됩니다!”

바다는 부서져 흩어진 찰흙을 다시 한데 모으기 시작하였다. 좀 화가 풀린 듯 옆 친구와 얘기하며 놀이를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바다는 아버지가 왜 계시지 않느냐고 캐물었다.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쓰린 마음으로 겨우 핑계를 댔다.

“먼 나라에서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올 거야!”

‘결국 우리 아이들은 아비 없는 성에 갇혔어! 그 구멍이 이제는 크게 드러나고 있는 거야!’



하늘이 기회를 준다면 그 성벽을 막아줄 성주를 찾으리라. 마치 동화 속의 용감한 장군이 나타나 성안의 왕비와 왕자와 공주를 방어해 주고 무서운 대적들로부터 용감히 싸워주는 그 구원자를…….

요즘 같은 세상에 뭐 그렇게 아빠의 존재가 대단하다고, 여자가 남자 없어 쩔쩔매는 것은 구시대적이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아빠가 빠진 구멍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정보라로부터 정의식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은 것은 실로 엄청난 정보였다. 왠지 자신의 결혼과 자꾸 연관되었으나 섣불리 나설 수 없다. 그저 인연이 있다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

착각일지도 모른다. 불안감이 다시 밀려온다. 단단히 마음을 준비하자. 기대하는 만큼 절망의 물결도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 보류인 자존심마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여자에겐 직관력이란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운명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지켜보자. 결코 초라하게 조금도 서두르거나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집착하지 말자. 집착하면 비굴해진다.

인영은 아이들을 씻기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공상에 잠기듯 아득한 어린 시절을 더듬었다.

시골 학교를 마치고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의례히 마루에 올라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께서 이제 갓 찌어 온 따뜻한 고구마를 햇볕을 쬐며 먹고 있노라면 머리 위에 갈색의 액체가 떨어졌다. 떨어진 따끈한 액체가 정수리에서 식어져 갈 때 고개를 들어 제비집을 오래토록 쳐다보았다. 그 제비집을 쳐다보면 어떤 신비한 경외심과 같은 묘한 기분에 젖었다.

하루는 어미 제비가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않고 계속 둥우리 밖에서 이리 쫑긋 저리 쫑긋거렸다. 어미 새는 새끼들의 부리를 마주치며 왔다갔다 분주하였다. 어린 인영은 궁금하여 마당에서 파를 다듬던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은 저 어미 제비가 이상하지요? 왜 집에만 있죠?”

“새끼 하나가 아프면 어미 제비는 잠시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어미의 심정이란다.”

“그럼 아빠 제비는?”

“글세……. 아빠, 엄마가 모두 다정하게 있을 때 새끼들에겐 무슨 걱정이겠니?”

몽롱하고 아늑한 어린 시절의 봄 하늘이 보였다. 제비들이 떼를 지어 날아갔다.

‘그렇다. 새끼들에게는 곁에 다정한 부부가 있어주면 된다. 그 새끼를 품고 키워줄 사이좋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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