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 제2회
- 만남-
어느 새 점심을 다 먹었는지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스러워지고 운동장에는 뛰어 노는 학생들로 가득찼다. 저쪽 등나무 밑에서 형석과 호성이 과자봉지를 들고 벤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새로 오신 미술 선생님이시다!”
학생들이 달려와 꾸뻑 인사를 했다.
“선생님 꼭 제 여자 친구 같아요. 제 여자 친구해 주세요!”
“그래? 그렇게 젊어 보이니?”
애춘은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드셔 보세요!”
호성이가 과자를 한 줌 쥐어 애춘에게 건넸다.
“야! 나, 다이어트 중이야. 과자로 날 유혹하면 안 돼!”
“아이, 날씬하시면서 그래요. 조금만 드셔 보세요!”
애춘이 손바닥을 벌리자 꼬깔콘 과자가 손바닥에 조금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은 지선에게 인사를 하고 등나무 쪽 교실로 사라졌다.
지선은 호성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호성이는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아 가정파탄의 위험에 처한 아이지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자 어머니가 가출하고 지금 아버지와 가까스로 살고 있어요!”
“아, 그래요? 어쩐지 항상 어두워 보였어요!”
“저희 반 미술수업을 들어오시니까 좀 알아두시면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희 반은 결손 가정이 삼분의 일이나 됩니다. 그 중에서 부모가 별거 중인 학생, 어머니가 가출한 학생, 부모의 불륜에 얽혀있는 학생…, 아무튼 제대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학생이 드물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어떻겠어요! 호성이도 얼마 전에 가출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 그래요?”
애춘은 동정어린 표정으로 호성이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가출한 집안의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어머니가 가출한 상태이고 아버지와 같이 생활하고 있더군요!”
“어머! 그래요? 하긴 핏덩이 제 자식도 버리는 여자도 있다지만 아무튼 여자들 참 독해요!”
“옛날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아무리 모질고 힘들어도 자식을 위해서 참고 견뎌냈잖아요. 그 덕분에 아이들은 가정의 울타리 속에서 탈선하지 않았죠!”
“자식 때문에 남편의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참고 견딘다…, 참 대단하네요. 난 자식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지선은 약간 놀랐다. 애춘은 별 관심 없이 그냥 지나치는 분위기였다.
“요즘 여자들 걸핏하면 자식 버리고 남편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요….”
“남자들이 오히려 순한 어린 양이 되어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니까요!”
지선은 세태에 대해 근심하고 통분히 여겼다.
“아휴! 난 자식이 없으니까 상관없다!”
무의식적으로 애춘은 관심 없다는 듯 내뱉었다.
“자! 우리 학생부로 커피나 마시러 갈까요?”
“학생부에 친한 분이 계시나요?”
“네, 정세원 선생님… 아까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잖아요!”
두 사람은 학생부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선은 애춘이〈정세원 선생과 친하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정세원!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불타는 시선을 자신이 외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쩌다 그가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자신을 향해 응시하는 시선을 느끼면서 모르는 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일에만 열중하는 척 하였다. 사람이 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눈빛을 모르겠는가! 인간의 본성 중에는 누가 자기에게 호감을 보내면 호감으로 반응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지선은 그에게 향하려는 마음이 일어서지 못하도록 차단시켰다. 그는 외모도 준수하거니와 기품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 지식인이었고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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