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13회
테니스 대회
흑비단 같은 머릿결에 약간 마르고 날씬한 몸매, 하체가 꼭 끼는 진바지에 하얀색 남방을 청바지에 넣어 벨트를 한 모습, 약간 높은 민자 하얀 구두를 신은 지선의 모습은 청순하고 매우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앞 가리마를 하여 턱 선과 일직선으로 자른 단발머리는 그녀의 넓은 이마와 크고 깊은 눈매와 매우 잘 어울렸다. 게다가 지선은 늘 손에 책을 들고 다녔다. 대학 캠퍼스에서 그녀를 스치는 젊은 남학생들은 누구든지 한번쯤은 그녀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찰랑거리는 청순하고 지적인 단발머리, 날씬하고 가녀린 허리, 탄력 있고 희고 고운 피부, 거기에다가 환하게 웃을 땐 석류 속 같은 붉은 입술! 지선은 그토록 아름다웠다.
그 시절 지선은 남학생들과 많은 교제를 했다. 그렇다고 연애대장으로 이 남자 저 남자를 사귀는 헤픈 여자는 아니었다. ‘형’이라 부르면서 좀 거리를 두고 관망하며 관찰하여 자신에게 맞는 배필을 탐색 연구하는 기간이었다. 이 점에서 그녀는 매우 여우같은 기질이 발휘되었다. 그들 청년들의 가슴에는 지선이 우러러 볼 수 있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젼을 향해 나아가는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명석했고 잘생겼고 모두 실력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모와는 다르게 젊은 그들의 내부는 협소하고 초라하게 여겨졌다. 오직 제 한 몸의 출세와 안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르게 편안한 인생코스를 걷게 될 것인가에 골몰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에 편향되고 방탕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그 중 명석하고 잘생긴 멋진 조건을 가진 엘리트가 지선에게 다가왔다. 지선은 흥미를 가지고 몇 번의 데이트를 하다 그만 싱거움과 함께 신물이 났다. 그도 역시 외모와 화려한 조건을 구비했지만 그의 내부에는 의식이나 철학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화제의 빈곤과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피상만이 그의 전부처럼 보였다. 지선은 그와의 만남이 지겨워지고 단순하고 유치함에 실망하였다.
그 후 지선은 이성과의 교제를 중단하고 청년들의 그런 내부적 빈곤을 가슴 아파했다. 자신은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아서 많은 책을 섭렵했다. 그 후〈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그녀의 고민거리였다. 시대의 청년들! 그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의 하나였다. 술과 여자를 탐닉하고 이데올로기에 빠졌으며 불법을 거침없이 행하고 방탕과 쾌락을 선과 진리인양 합리화하는 무신론자들이었다. 지선은 알료샤와 같은 그런 남성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시 한 번 애춘을 떠올렸다. 정감이 가고 연민이 가는 모습이었다. 지선은 애춘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기도하며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자각
테니스 대회가 지난 뒤 애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매우 의기소침한 분위기였다. 여느 때처럼 농담을 하며 남자 선생님들의 술자리에 끼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 동료교사들은 갑작스런 그녀의 태도에 의아해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세원의 무관심에 나타나는 침체상태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이혼을 추진하고 있어서 심각한 상황이라는 소문이 맴돌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정세원을 짝사랑하다가 테니스 대회 때 무관심한 마음을 알게 되어서 마음으로부터 정리한 상태가 아닌가 여겼다. 그들에게 장애춘은 ‘좀 모자라는 푼수 끼 있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애춘은 어떤 큰 깨달음이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테니스 대회 때 정세원의 태도에서 그가 지선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 때문에 질투의 화신이 된 것만도 아니었다.
‘이제부터 종지부를 찍어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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