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16회
자각
자신이 추파를 던지면 다가오는 미남자와 몸을 섞는 일도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죄의식도 없었다. 그녀는 진한 화장과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했다. 특이한 이브닝드레스를 걸치고 자신이 돈 많은 마담이 되어 모여든 비둘기들을 어루만지고 희롱하는 것을 오락으로 여겼다. 그러한 지난날들이 허무하게 흩어지는 흑백사진 조각과 같았다.
애춘은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남자라면 모두 좋아했다. 이런 애춘에게〈풍기문란〉하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니들이 내 인생을 살아주냐? 나는 나다! 거리낄 게 뭐가 있어? 흥…!’
수치나 체면은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직 오늘 먹고 즐기고 사랑하면서 즐겁게 사는 거야. 오직 즐기는 것이지. 내일은 무슨 놈의 내일이 있어!’
그처럼 안하무인이었던 장애춘이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답지 않은 면에 사뭇 자신도 놀랐다. 지선의 초연함이 감동을 주었다. 자신은 이성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 전부인 양 그것으로 인해 늘 초조해 하며 들썩이며 요동하는 파도와 같았다. 이성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헐떡이는 자신과 다르게 지선은 삶의 어떤 다른 부분에 더 열정을 가진 듯했다. 마치 자유롭고도 활기찬 삶의 풍성함을 소유하고 있다는 듯, 위엄 있고 당당하고 초연한 모습은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듯 충격적이었다. 사랑에 굶주린 듯 울고 보채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신과는 다른, 모든 것에 풍족한 듯 여유가 있는 어머니와 같은 따뜻함과 성숙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내면이 춥고 배고파서 떨며 구걸하는 자신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고향의 연인
평강공주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온달에게 희망을 가지고 운명의 게임을 걸었다. 그녀는 온달에게 글을 가르쳐 실력을 갖추도록 지원했으며 희망 없는 초라한 사나이에게 나라를 구원하는 큰 장군으로 출세시켰다. 평강공주는 본디 공주인지라 호화찬란한 궁궐에서 익숙한 문화에 젖었다. 그녀는 그 안에서 삶의 안주와 보호를 받는 팔자였다. 평강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기라도 해서 얻어내는 집념이 강한 여아였다. 소유욕이 강했으며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작전은 앙앙거리는 울음으로 투쟁하여 쟁취하였다. 어린 아이들은 왜 우는 것일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을 때 큰 소리로 앙앙거린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울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토록 울음은 집착과 고집이 센 평강공주를 만들었다. 여기서 보면 고집이란 고난을 헤쳐 나가는 인내력과 결부된다고 볼 수 있다. 온순한 아이는 쉽게 절망하고 의존형이 되기 쉽다. 그리고 쉽게 변심하고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약점이 있다.
채성은 창가에 서서 자신은 언제나 평강공주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애춘은 신데랄라처럼 받들어 주기만을 원하는 스타일이며 자신과는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여자라고 해석했다. 바로 그 생각의 차이점이 자신과 애춘의 결혼생활의 문제를 빚어낸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자신은 애춘과의 애정이 바닥난 듯했다. 그 동안 인내와 함께 견뎌왔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왜 이혼하자고 안할까…!’
이쯤 되면 단순한 애춘이 분명히 먼저 이혼을 제기하리라고 여기며 은연중에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그로선 장인의 은혜를 입어 먼저 이혼을 운운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병적인 집착가운데 그래도 애춘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미 자신에게 냉냉한 대접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속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자신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노리다가 갑자기 기습작전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시 경제적인 큰 욕심으로 술수를 부리지나 않나 걱정되었다. 그러나 애춘은 물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듯했다. 욕심의 노예가 된 세속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채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온 후 도시의 하늘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애춘과 각 방을 쓴 지도 오랜 세월이 되었건만 그것에 대해서는 서로가 분방함에 젖어 묵인하고 있었다. 혜란과 함께 부부생활의 공백을 메우고 있을 때 애춘은 학교생활을 통해 그 공백을 메우는 듯했다. 어느 때부턴가 채성은 그녀의 조용한 행동에 대해 내심 공포를 느꼈다. 그녀답지 않은 반항적인 암시였다. 애춘과 결혼해서 자신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