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17회
고향의 연인
장흥의 사위로서 사업을 이어받은 것은 부와 명예를 안겨 주어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채성을 성공했다고 친구들은 무척 부러워했다. 그러나 채성은 늘 마음이 공허하고 안개에 싸인 모호함 속에서 살아왔다. 장흥의 사업 일부를 모델하우스 인테리어로 창업하고 있는 중이지만 마음의 중심과 핵을 잃어버린 듯 그는 늘 허탈감에 젖어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모성애적 결핍 증후군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것에 대해 혼자만의 깊은 열등감에 젖어 자신의 혹과 같은 어떤 불행의 징크스로 여겼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애춘에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렇다면 애춘은 오히려 피해자인 셈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짝…!”
“아야야…, 앙….”
밖에 나가서 손에 더러운 것을 묻혀오면 먼저 손바닥이 자신의 뺨 위로 날아왔다.
“엄마가 뭐랬어. 늘 더러운 것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찰흙으로 만들기가 재미있단 말이야!”
“뭐야, 뭘 잘했다고 대꾸야! 어서 손 씻고 냉장고에서 꺼내 먹든지 알아서 해!”
언제나 차갑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였다. 다른 엄마 같으면,
“아휴 손이 더럽구나, 이리 온!”
세면대에 데려가 깨끗이 씻겨주고 따끈한 우유에 영양 있는 간식을 차려 주며 곁에서 앉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자신에게는 떠나 있는 듯했다. 다른 유희를 동경하며 늘 어딘가 찾아 바라보는 눈! 현재의 가정에서 떠나 영원히 자신의 쾌락을 만족시켜주는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언제나 자신을 불안하게 하였다.
어머니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남편과 자식의 것을 먼저 챙기는 여느 엄마와는 달리, 자신이 먼저 챙겨 먹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아름답고 화려한 차림을 하고 사교클럽에 드나드는 일과 쇼핑과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그렇게 맛있게 배불리 먹으면 긴 낮잠을 자고 매니큐어를 길게 기른 손톱에 진하게 덧발랐다. 그리고 나면 명품을 탐닉하는 쇼핑에 그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쇼핑백에는 자신의 옷과 화장품 액세서리들로 가득 찼고 남편의 옷이나 아들의 옷은 드물었다.
아홉 살 때 학교에서 교외로 소풍을 가는 행사 때면 다른 친구들의 엄마는 맛있는 도시락을 싸들고 동행했다. 어린 자신은 그런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그날 특별한 일도 없으면서 엄마는 자신의 소풍에 동행하지도 않았다.
“앙, 잉…. 엄마도 같이 가잔 말이야…!”
조르다가 지쳐 언제나 엄마 없는 쓸쓸한 소풍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혐오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특별한 감정의 특징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진 언제나 일찍 돌아와서 책을 보거나 자신과 놀아주고 그리고 말없이 잠들고 아침에 바쁘게 출근했다. 자신을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그렇게…. 그 뒷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해 보였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자신에게 간식을 챙겨 먹이고 입을 것과 먹을 것에 신경을 써 주었다. 주말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에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혀 주었다. 따뜻한 부성애를 받았지만 자신의 마음은 늘 엄마의 사랑에 갈증을 느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언제나 씨니컬하게 쏘아 붙이던 언사. 그 하얀 이가 유난히 반짝일 때, 아버지의 간장은 쑤시며 모멸감으로 치를 떨었다. 엄마의 사치와 허영 때문인지 아버진 절망 속에 술을 들이켰고 급기야는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아버지가 사망 시, 어머니의 나이 삼십대 중반이었다. 어머니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자신을 버리고 외국에서 사업하는 남자와 떠나버렸다.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그 후 한 번도 자식을 찾아오지 않았다. 채성은 처음에는 엄마를 그리워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증오심 가운데 내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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