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34회
애인
일요일 오후는 나른하고 한가했다. 애춘은 테니스 대회가 있은 후 뜻밖에 침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 위에 몸을 묻고 계속 뒤척이었다. 그날 자신의 그 초라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반면에 여러 사람들 중에 돋보이고 부상해 보였던 민지선의 모습도 떠올렸다. 지선은 시종 침착하고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다. 애춘은 지선을 사랑의 라이벌로 질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두 살이나 아래인데도 사람이 의젓하고 품위가 있었다.
창밖에선 개나리가 만개한 울타리가 보였다. 애춘은 침대에 고개를 묻고 잠시 눈을 감았다. 잔잔한 봄의 반주가 이제 자신의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기분이 상쾌해지고 민지선의 그 아련한 영상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애춘은 팔베개를 하고 침대 장식용 자그마한 스냅사진을 바라보았다. 신혼여행 때 채성과 함께 하와이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애춘이 바싹 다가가 팔을 끼듯 섰고, 남편 채성은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애춘은 그 스냅사진을 마치 어린아이가 어항을 내다보며 신기해하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어…!’
애춘은 햇볕 때문에 눈을 가늘게 하고 이마를 약간 찡그린 채성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시선은 먼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항상 어딘가를 먼 산,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나 애춘을 바라보는 눈은 아니었어!’
그런데 난 왜 이 남자에게 그렇게 집착했을까…!’
지난날의 자신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질듯 억울했다. 가슴이 터지고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급히 담배를 입에 물고 몇 모금 힘껏 빨았다. 초조함과 함께 담배연기는 공기 속에 뭉게뭉게 사라져갔다.
애춘은 갑자기 핸드폰을 열었다. 민지선의 전화연결 번호를 눌렀다.
“저…, 애춘입니다.”
“응, 왜 그 동안 연락도 없고….”
“저, 지금 이대부근의 그 프로방스 알지요. 좀 나와 줄래요? 미칠 것만 같아요!”
지선은 그렇잖아도 애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가움과 함께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지선이 즉시 외출준비를 서둘러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지선이 도착해 보니 애춘은 레스토랑의 한 구석에서 진한 양주를 시켜놓고 마시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지선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잔을 들어 들이키려는 애춘의 손목을 지선이 붙잡았다.
“그만, 이렇게 많이 마셔서 어쩌려고 그래요.”
“응, 응 흑흑흑…, 왔어요? 휴….”
지선은 맞은편의 자리에 앉았다. 이미 반이나 넘게 병이 비어 있었다. 애춘은 이미 취해 있었다.
“이봐요, 웨이터….”
애춘은 지선을 위해 A코스로 정식을 주문해 주었다. 순서에 맞게 나오는 코스요리는 제법 맛이 좋았다. 지선은 애춘에게 술은 그만하고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다. 그러나 식욕이 없는 듯 그녀는 식사를 주문하지 않았다. 지선이 권하니까 한 조각 빵을 한두 번 씹더니 다시 술을 들이켰다.
‘오늘은 애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지선은 애춘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또다시 긴 한숨과 함께 진한 토닉을 단숨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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