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일본의 ‘자이니치’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와 편견을 다루며 닫힌 눈과 귀 그리고 머리를 열어주는 연극 <혼마라비해?>가 지난 20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자이니치'의 모습을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풀어내며 똑바르게 바라보고 있다. 관객들도 이 연극을 만나고 나면, 21세기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와 너, 일본과 한국, 한국인과 조선인, 국적과 정체성에 대해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학로에서 연극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영주’
2009년 여름, 영주는 일본 극단 ‘마사루’의 작업을 돕기 위해 일본 오사카를 방문하게 된다. 외로운 타지 생활이 될 뻔 했으나, 거기서 알게 된 재일동포 ‘지숙’의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적응해 간다. 작품 번역 일을 위해 지숙의 도움을 받기로 한 영주는 하루 날을 잡고 연극 연습이 끝난 후, 지숙이 하숙하고 있는 츠루하시 시장골목 잡화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있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 영주는 곧바로 얼어붙고 만다.
‘혹시 이들은 간첩?’
작품은 일본 오사카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 가정에 방문한 ‘토종 한국인 작가 신영주’가 우연히 그 집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욘사마, 2PM 열풍이 불고, 혐한 시위가 일어났던 2009년 일본의 풍경이 그대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일본에서 실제 자이니치와 만나 겪었던 일화로부터 출발한 연극 <혼마라비해?>는 ‘헤이트 스피치’, ‘오사카조선학원 고교 무상화 차별’ 등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혐한 사건도 작품에 함께 녹아 있다.
여긴 누구? 나는 어디? 일본과 한국, 한국인과 조선인.
한국, 북한, 일본 태어날 때부터 어느 한 나라의 소속이 되는 자격에 대해 재일교포들은 고민하고 공부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자라온 ‘토종 한국인 신영주’는 같은 핏줄로 태어났지만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만남을 보다 사실적인 대사들을 통해 유쾌하고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는 연극 <혼마라비해?>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비추며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조선학교’는 조선적, 한국국적, 일본국적을 가진 재일교포들이 함께 다니고 있다. ‘조선적’은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선택하지 못한 재일동포들의 선택이며, 그들이 북한을 더 가깝게 생각하는 건 남한 정부에서 해 준 게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을 품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교포’ 그리고 ‘귀화’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여긴다.
- MINI INTERVIEW -
1. 재일동포, 자이니치를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생각하던 저는 우연한 기회로 권해효 배우님의 강연을 접하게 되면서 저의 무지와 편견에 놀라게 되었고, '몽당연필'의 정회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상중 교수님의 강연을 접한 후 그 분의 저서들을 읽으며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예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혼마라비해?' 작품을 보며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논픽션인지 알 수 없는, 특유의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의 작품에 놀라움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연출님의 몇몇 작품에서는 자기반성 그리고 내적성찰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극단 실한에서 각색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된 배경 그리고 각색과 연출 과정에서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진행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원작자인 김연미 작가가 일본 극단과의 교류를 통해 '자이니치'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게 이 작품의 시작 이었습니다. 친한 언니가 자이니치라고 하면서 그 힘듦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하였죠. 그리고 이 프로덕션의 참여자들이 거기에 동의하면서 그들을 공부하면서 이 작품의 창작은 탄력적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부분들에서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영주’처럼요. 그리고 배우들은 취재차 몽당연필을 방문했었고 그들을 취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 권해효 선배님의 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이들의 목소리를 닮을 준비가 안 되었다고’. 이 지점이 이 작품을 만드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준비가 안 되었을까’로 시작한 창작 회의는 그들에게만 집중했던 창작자들의 시선들을 다시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로덕션 팀원들은 ‘자이니치의 힘든 상황에 대해 알려야지’라는 목적성이 있었지만, 정작 본인들도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입니다. 찾아가서 인터뷰 할 때, 실례되는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 시선들이 공유 되면서 서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작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연구와 연구 끝에 그들에 대해 어설프게 얘기 할게 아니라 ‘우리의 시선들을 담아보자’ 라고 제가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원들이 그들에게 행했던 실수들 그리고 느꼈던 자책과 반성들에 대해 담아보자’라는 의견에 다들 동의를 했고, 그게 이 작품에 핵심이 되어 ‘영주’라는 인물이 만들어졌습니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사실처럼 보이는 것은 이 창작자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는 지점 덕분인 거 같습니다. 배우들의 실제 목소리들이 들어가 있거든요.
연출로써 제가 겁내하는 부분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들을 대상화하기 싫은 것, 그들의 아픔을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를 약하게, 누군가를 악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제 시선에 가까운 목소리를 담으려 합니다. 누군가 ‘나쁘다’, ‘좋다’, ‘불쌍하다’가 아니라 선의로 시작된 상처, 사회적 구조에 의해, 그 익숙함에서 생긴 균열들 상처들.... 그리고 저도 그 안에 속해있기 때문에 제 시선으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자님께서 느꼈던 지점들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2.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제외 뿐 아니라 유치원과 초중교 보조금까지 일부 또는 전부 삭감했음에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지와 편견의 칼날들로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너무나 부끄럽고 슬펐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조금씩 늘고 있긴 하지만,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그리고 보러 올 관객들에게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바람을 전하고 싶습니다.
신명민 연출 ;
우리는 익숙하기 때문에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당연함’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넌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네'라는 대사가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우리 작품의 주제이거든요.
김수민 배우 ;
이 작품을 보러온 관객과 작품에 참여하는 제가. 우리 모두가.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작은 변화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혜민 배우 ;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존재’, 내가 그러하듯,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승헌 배우 ;
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이니치'라는 단어는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전 또 한명의 토종한국인 ‘영주’였습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을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지금, 그 때의 저를 돌아보면 영주의 대사처럼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관람한 지인들도 저에게 똑같이 말합니다. “많이 부끄럽다” 라고요. 그럼 저는 “괜찮다”라고 얘기합니다. 바뀌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 보다 자기안의 부끄러운 부분을 볼 수 있다는 건 '너무 괜찮은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준희 배우 ;
관객에게 어떠한 변화를 바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아직 우리사회가 재일동포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 어떠한 사명감 같은 것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으니까요.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몰랐던, 내가 몰랐던 나의 동포의 이야기에 관심을, 그리고 더 나아가 응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배우로서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으로 오신 재일동포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저도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주고받았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종찬 배우 ;
공연이 올라가면 작품에 대한 관객 분들의 생각을 찾아보는 편입니다. ‘우리가 준비한 이야기가 얼마만큼 관객 분들에게 전달이 되었을까?’,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혼마라비해?’의 경우 다른 공연에 비해 관객 분들의 생각이 상당히 비슷한 편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이니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에 ‘부끄럽다’, ‘슬프다’ 하십니다. 저도 사실 이 작품을 준비하기 전까지 자이니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 분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저 역시도 부끄럽고 슬펐습니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 연기하는 ‘우진’은 어찌 보면 제가 그 동안 작품을 하면서 맡았던 캐릭터들 중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와 비슷한 구석이 적은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정체성, 조국에 대한 생각, 진로에 대한 고민은 제가 겪은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민하게 고민을 많이 하며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혹여나 제가 연기하는 ‘우진’이 실제 자이니치 분들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 너무나 염려스러웠습니다.
언젠가 공연을 마치고 공연을 보신 자이니치 분들이 손을 꼭 잡아주시며 “너무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극 중 영주가 남조선 사람들이 재일동포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던진 말에 광식이 아저씨가 영주의 손을 잡고 ‘너 진짜 잘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저의 바람은 부디 많은 관객분들이 찾아주셔서 ‘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분들이 있었구나.’하고 저희의 이야기를 관심있게 봐주시는 것일겁니다. 단순히 준비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자이니치 분들의 말씀처럼 너무나 너무나 감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미정 배우 ;
우선!!! 처음에 저는 재일동포/자이니치 이 개념을 확실히 알지 못햇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자이니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그래서 저는 여행 차 오사카에 있는 나카오사카 조선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실제로 보니 더더욱 처참했습니다. 다 무너질 것 같은 건물에서,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많은 얘기를 하였는데 이 말씀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는 다른 걸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지켜내고 있다는 걸, 싸우고 있다는 걸... 우리의 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는 걸...이것만 알아 주셨음 합니다” 이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이 공연으로 인해, 관객들이 아직도 그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고 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작게나마 알아주셨음 합니다.
3. 연출님과 각 배우님들의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신영민 연출 ; 저는 11월 7일 부터 17일 까지 CKL 스테이지에서 창작집단 LAS 작품인 ‘우리별’을 올립니다.
김수민 배우 ; 차기작이 현재로는 없지만 더 더욱 노력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유혜민 배우 ; 극단에서 신작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난민을 주제로 한 공연을 준비중인데 연말에 쇼케이스를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승헌 배우 ; 11월 7일부터 17일 까지 CKL 스테이지에서 ‘우리별’이 예정 중 입니다.
이준희 배우 ; 곧 ‘극단 실한’의 새 창작극 쇼 케이스를 준비하고 있고요, 이어 영화작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종찬 배우 ; 일단 저는 12월 말에 있을 극단의 신작 쇼케이스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난민에 대한 이야기인데 현재 극단원들과 함께 작품 개발 중에 있습니다.
서미정 배우 ; 저의 차기작은 우선 하반기 극단공연이 있고요, 내년 상반에는 뮤지컬 공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일본 내 혐한시위에 맞서 일본의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끈 시민모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카운터스”를 만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토종한국인들은 대부분 ‘헤이트스피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 ‘조선학교’를 찾아 기부금을 전달 할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토종한국인들도 많다. 일본사회는 재일동포에게 가혹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것도 해 준 것이 없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것들조차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얽힌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으면서 느낀 가슴 속 깊은 끓어오름을 세심한 연출과 진심어린 연기를 통해 어렵지 않게, 마음 속 깊이 느끼게 만들어주는 연극 <혼마라비해?>를 많은 이들이 만나보길 소망한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재일교포 그리고 고려인 등 또 다른 교포들까지 생각하고 알아가고 가슴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가슴 속 깊은 끌림을 안겨주고 있는 연극 <혼마라비해?>는 9월 아르코예술극장의 공연에 이어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성수아트홀에서 열리는 ‘세계&세 개 연극제’를 통해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