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일상과 투쟁, 일상과 노동, 일상과 고공, 그 사이의 경계를 들여다보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 지금 노동 중인 모두를 위한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가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각자의 자리가 고공농성의 자리가 되어버린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 ‘노동’이라는 화두를 품게 만들어 주었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작동을 멈춘 시계처럼 가동을 중단한 공장의 굴뚝에서 홀로 긴 시간을 보내는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일상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흘려보낸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회사로부터 복직을 약속 받았으나 스스로 약속을 파기하고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남자가 돌아오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던 여자는 빚만 늘어가는 삶 속에서 자꾸만 허물어져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고만 싶은 심정을 느낀다.
여자는 밀린 학습지 비용을 받으러 찾아오는 학습지 교사에게서, 밀린 임금을 받으러 오는 아르바이트생에게서, 회사가 다시 약속을 파기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싸우는 노동자에게서, 저마다 ‘각자의 자리가 고공농성의 자리가 되어버린’ 일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서로의 시간이 얽혀서 굵은 가닥을 형성하며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정화’는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일상 속 각자의 자리가 바로 ‘고공(高空)’임을 보게 된다.
각자의 어긋난 약속과 기약 없는 기다림을 통해 현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와 사회적 연대를 재고해 보고자하고 있는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해고자 가족의 일상을 통해 해고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한편, 온전히 자신의 노동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장애인, 성소수자, 감정노동자 등 우리 사회 수많은 ‘나’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작업을 해오고 있는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의 대표 이연주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 그로 인해 배제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사회의 이면을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있기에, 이번 작품 <이게 마지막이야>에도 끝없는 질문과 섬세한 감정들의 이음이 따스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청소년들의 불안한 내면과 서로 간의 거리 그리고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뤄왔던 이양구 연출은 작품 <이게 마지막이야>에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이 겉으로는 ‘호의’로 감싸인 세계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근로기준법에 적힌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일상의 말들과 상황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지하철역에서, 화력발전소에서, 빗물펌프장에서, 소모품처럼 사라져간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켜보면서, ‘노동’이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타자화된 개념어가 아니며, 언제부터인가 광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당사자적인 온도를 내기 시작했음을 체감한다는 정소은 프로듀서는 이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를 통해 ‘노동’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 대한 응원이나 연대를 연상시키는 것이기 보다는, 나와 우리 스스로의 화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해고자의 아내로, 오랜 남편의 투쟁을 뒷바라지하면서 실질적인 가장이 된 ‘정화’는 복직된 이후 방 안에만 틀어박힌 채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있는 남편을 이해 할 수 없다. ‘정화’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의 점장은 ‘보람’의 밀린 임금은 아랑곳 않고 ‘정화’를 적절히 회유하고 감시해 매장 매출이 오르게 하는 쪽으로만 감각이 발달되어 있다. ‘정화’ 아이의 학습지 교사 ‘선영’은 ‘정화’의 사정을 듣고 딱하게 여기지만, 밀린 학습지 비용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갈등한다. ‘정화’ 남편의 동료 ‘명호’는 복직 이후에 노사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새로움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정화’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의 전 아르바이트생 ‘보람’은 밀린 임금을 주겠다는 사장의 약속을 믿었지만, 사장이 만남을 미루자 사장을 만나기 위해 편의점을 꾸준히 찾아온다.
- MINI INTERVIEW -
1. 올해 드라마 중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닥터탐정' 등 철옹성 같은 대기업에 대한 반격을 다루거나, '청일전쟁 미스리' 등 갑을의 전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전쟁 같은 갑과 을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작품 <이게 마지막이야>를 보며 현대적인 사회학적 도구들로 무장하여 원자화된 개인과 깨지기 쉬운 가족, 빈곤 지역,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정부 기관, 근시안적인 언론 매체 등 그 분야의 이론들이 제시하는 실패를 이야기하는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복잡하게 얽히고 얽힌 '을' 속의 미세한 갑을관계들은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의 작가님과 연출님은 각각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데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연주 작가 ;
사회 안에서 더 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그로 인해 순차적으로 작은 약속들이 지켜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런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양구 연출 ;
극 중 편의점 점장 캐릭터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개 편의점 점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처지와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너무 악하게 그려진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많았었습니다. 점장 너머에 있는 본사 혹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점장을 통해서 그리려다 보니까 유일하게 ‘해석’되고 비인격화된 인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을’들의 이야기를 각각 도미노처럼 세우고 넘어지다가, 어느 하나가 넘어지기를 거부하는 순간까지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2. 연출님과 각 배우님들이 생각하는 '노동'이란 무엇인지, 갑과 을의 현재 고착관계에 대한 고민들에 대해 진솔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양구 연출 ;
정치경제학의 눈으로 보면 노동은 자본의 가변 부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은 사람에게 생활 그 자체입니다. 갑을 관계의 문제는 생활 그 자체에서 일상적으로 비대칭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생활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더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여깁니다.
이연주 작가 ;
제가 생각하는 노동은 “일상”입니다. 갑을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갑을 관계 보다는 노동 안에서 구조의 문제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순미 배우 ;
제가 생각하는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즐겁게 일하는 것”입니다. 갑을 관계는 “구조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지현 배우 ;
제가 생각하는 노동은 “삶을 건강하게 지탱시켜 주는 것”입니다. 갑을 관계는 “없을 수는 없겠지만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조형래 배우 ;
제가 생각하는 노동은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행동”입니다. 갑을 관계의 고착에 대해서는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양보를 하고 누군가는 그 힘으로 발전을 시키고 서로서로 같이 해온 부분에 대해서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갑을이라는 관계는 어쩔 수 없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정혜지 배우 ;
제가 생각하는 노동은 “시험공부 같은 것”입니다. 일단 들으면 ‘하기 싫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의무는 아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끝나고 나면 괜히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 등급이 매겨지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갑을 관계의 고착에 대한 생각은 “갑갑!! 하지만 사라질 순 없다. 양방이 배려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 정, 병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연출님과 각 배우님들이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이연주 작가 ;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건 인내심이 없어요.”라는 대사가 전 가장 인상 깊습니다.
이양구 연출 ;
“사람들도 한가할 때나 와서 돕는다고 같이 있는 거지 자기 일 생기면 우선순위가 바뀌잖아요.” 사람 사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됩니다.
4.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이연주 작가 ; 오는 29일부터 11월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에서 공연될 ‘인정투쟁’을 준비 중입니다.
이양구 연출 ; 다음 달 15일부터 16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에서 ‘바리데기의 ’배후‘’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관객들의 응원으로 텀블벅을 성공적으로 마친 작은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를 만난 이후로 ‘노동’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 본다. ILO가 만들어 온 사회 보장 관련 기준의 초석으로 작용하는 일명 ‘필라델피아 선언(1994년)’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기본원칙을 밝히며 시작한다. 사회가 빠진 생존보장이란 흔히 ‘있는 쪽에서 베푸는 시혜’로 여겨진다. 호의를 베푸는 것이니 적당히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자율성을 침해해도 된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구차하게라도 살아야 할 굴레가 되어 버린다.(류은숙 저 『미처 하지 못한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