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이야기한 ‘믿음의 기원 1’, 과학이 불변의 진리라는 믿음에 관한 ‘믿음의 기원 2 : 후쿠시마의 바람’에 이어 믿음의 기원을 찾는 상상만발극장 연작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 <스푸트니크>가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관객들에게 더 나은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며 아쉬운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전쟁 없는 곳으로 이주하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위해 또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지식과 문화를 쫓아 또 다른 나라를 꿈꾸고, 또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의 현장을 향한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나른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지구 한편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창을 통해 바라보는 지구 반대편에서의 내전 역시 그 곳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평범한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꾸고, 이 연극은 지금 이 순간 지구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을 연결한다.
<스푸트니크>에는 삶과 직업의 의미가 별개인 심리상담사, 일 년의 대부분을 출장지에서 보내는 세일즈맨, 동생의 닌텐도를 팔아 구명조끼를 산 소녀, 제대하면 대학에 가고 싶은 군인,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네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1957년 소비에트연방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띄우는 일련의 우주개발 계획 이름 ‘스푸트니크’는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했던 개 ‘라이카’에 대한 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류에 앞서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생명체인 ‘라이카’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이카’가 돌아갈 수 없는 지구를 바라보는 모습은 다른 세계를 동경하며 떠도는 네 명의 인물들과 연결되며 동시에 각자의 삶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과 연결된다.
지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꿈꾼다. 창밖 너머 저쪽에서는 적어도 여기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작 발걸음을 옮긴 그곳이 내가 꿈꾸던 모습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나서면 되니까. 저기 저 밖까지 나가면, 지구 밖 우주까지 나가본다면 어떨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그런 세상을 마주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노력하며 살아가는 도중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 한 구석에 불안감이 싹튼다. 그런 세계가 진짜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노력만 한다면 때론 누추하고 때론 혹독한 이 일상을 벗어나 내가 꿈꾸는 멋진 세계를 정말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MINI INTERVIEW -
1. 라이카가 지구를 떠나서 처음 지구를 봤다는 말을 들을 때, 바다를 본 물고기는 만날 수 없다고...삶을 마친 다음에서야 바다를 떠나 바다라는 것을 보게 되어서라는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려지며 조금 슬퍼졌습니다. 의자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놓여 있는 무대도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서로 스치며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들과 대화들은 하나하나 너무나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희곡의 무대화 과정이 더 궁금해집니다. 작품을 쓰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무대작업을 하고 무대에 올리기 위한 연출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기억나는 점을 듣고 싶습니다. 드라마터그와 연출님의 역할 분담도 궁금합니다.
전쟁과 자본에 의한 디아스포라의 순환구조에 대한 구상은 2014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순환되고 교차되는 인물들과 이를 먼 거리에서 응시하는 개들과 라이카의 시선 등의 기본 구조는 2016년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화창작촌에서 의뢰받아 문집에 게재한 <무엇을 보고 있나요>라는 단편으로 완성했습니다. 2018년 제주 예맨 난민을 둘러싼 일련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국내에서 난민문제가 관조적 은유가 아닌 일상적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판단했습니다. 2019년 극단의 동료들과 이 구상을 무대화하기로 결정하고 장편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인물간의 연결구조만 있었던 단편과 달리 시공간을 넘나드는 지금의 장편 극구조를 만드는 데는 수개월의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희곡 완성 이전에 캐스팅이 먼저 이루어졌고, 희곡작업의 막바지는 연습과 동시에 진행되어 대화 진행의 거친 부분을 다듬는 과정에 배우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재현적 대화가 비재현적으로 교차되고 중첩되는 형식은 무대화하기에 매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구현형식의 상당부분 배우들의 직관과 역량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익숙한 양식과 구조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데 따라오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배우들의 인내와 열린 창의력으로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연출개념 안에서 극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특징상 드라마터그는 창작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기보다는, 내부비평자로서 이 작업이 관객에게 어떤 양상으로 도달할 지, 소재화의 위험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예민하게 관찰하는 방식으로 제작과정에 참여했습니다.
2. 지금의 삶에 지칠 때, 스스로를 바꾸기를 먼저 선택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마 보통은 더 나은 곳으로 가기를 꿈꿀 것입니다. 집을 나오든지 직장을 옮기든지 다른 나라로 옮기든지...쉽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란 길을 택한 연출님은 그럼에도 지칠 때는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무엇을 바꾸고 싶다고 꿈꾸실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치고 소진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절박함에서 시작된 작품이었습니다. 결국엔 별다른 해결방법은 없었고, 다만 동료들과의 창작 과정에 있어서 서로의 개성과 창의력을 존중하고 창작자 각자의 존재감이 서로를 상승시켜 작업이 처음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양상으로 발전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만이 유일한 보람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출구도 없고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세계 안에서 일상의 밀도를 높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누군가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이, 또 누군가에게는 향하고 싶은 곳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집중하게 만들던 연극이었던 듯합니다.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다음 작품에 대한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박해성 연출 ; 11월에 “봄작가,겨울무대”프로그램으로 공연되는 ‘뒤 돌면 앞’, 1월에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의 지원을 받는 ‘코리올라너스’의 재공연이 있습니다.
김세환 배우 ; 극단 드림플레이에서 김재엽 연출님의 <자본>이 연우무대 소극장에서 재공연 됩니다. 그 공연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선명균 배우, 문현정 배우, 신사랑 배우 ; 11월에 이 작품의 연출을 맡으신 박해성 연출님의 차기작인 ‘봄작가,겨울무대’의 ‘뒤 돌면 앞’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극장에 있는 관객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배우들은 극장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지, 이들이 만나는 극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극장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탐구에서 ‘상상만발극장’의 연극은 시작된다. 극장에서 그들은 지금의 세계를 집요하게 응시하고, 그것을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연결시켜 감각적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상상만발극장의 믿음의 기원 연작은 정의와 도덕에 대한 믿음을 다룬 ‘도덕의 계보학(2020)’,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종교 현상을 다루는 ‘믿음의 기원(부제미정, 2021)’로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