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매우 심각하고 오래된 우리 사회의 병폐, 가정 폭력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 <들꽃(들에 다시 꽃들은 찬란히)>이 제19회 월드2인극페스티벌의 공식참가작으로 지난 30일과 31일 양일간에 걸쳐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이라는 심각한 현상에 대해 공동체 차원에서 책임감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는 이야기로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며 짧은 공연의 막을 내렸다.
존속살해의 범죄자가 되어 재판을 앞둔 피고인 하서린. 그녀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되어 변론을 하게 된 전미애.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은 접견 과정을 통해 서로의 감춰졌던 상처들을 보게 되고, 서로에 대해 깊은 인간애와 연민을 느끼게 된다.
허나 재판에서의 변론을 포기하려는 피고인과 끝까지 피고인을 변론하려는 변호사로서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진다.
선고공판.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해 변호인은 이 사회가 외면한 가정폭력으로 유린당한 상처투성이의 한 여인을 과연 법의 이름으로 단죄할 자격이 우리 사회에게 있는지를 엄중히 묻는다.
그러나 피고인은 사회와의 격기를 스스로 선택하며, 그저 순수했던 시절에 가슴을 일렁이게 했던 고향 들판에 꽃들이 다시 찬란히 피어나는 광경을 떠올릴 뿐이다.
가정 폭력은 매우 심각하고 오래된 우리 사회의 병폐이다.
영국에서는 신체적 폭력 뿐 아니라 ‘경제적 폭력’과 ‘무형의 폭력’까지 ‘가정’ 폭력의 법적 정의에 포함할 뿐 아니라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부과하는 가정폭력방지법(DAPOs), 부모의 자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반면 영국이나 일본보다 5배 이상 가정폭력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입건과 처벌이 힘들며, 현행 ‘가정폭력법’상 임시조치 결정조차 수일에서 열흘이 소요되고 있다. 그리고 가해자의 법적처벌과 법적처벌 불이행에 대한 조치가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너무나 가벼워 가해자의 재범률도 나날이 증가하며 처분의 실효성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올해 ‘출입국관리법시행규칙’에 한국인 배우자가 ‘가정폭력범죄’로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경과기간에 관계없이 결혼 동거를 위한 외국인 초청을 불허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법안 공포하였으며 내년 4월 시행 예정으로 결혼이민자 폭행사건의 예방 장치는 마련하였지만, 이미 결혼한 이민자들의 폭력에 대한 보호는 아직까지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폭력은 대물림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에 맞으며 큰 피해자들이 성인이 된 후 아동을 학대하는 가해자가 되고 있다. 가정폭력은 사적인 영역에서 불화나 갈등이 아닌 잠재적 살인을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범죄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수차례 경찰에 신고해도 검찰의 영장이 나오기까지는 심각한 사건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선진국에서 경찰이 우선 체포권을 가지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가정 폭력은 특수한 범죄이다. 일반적인 폭력이나 살해 사건과 동일시되어 형량을 구형해서는 안 되기에, 가정폭력에 대한 낮은 법적 죄의식과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가정’은 무조건 보호되어야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1998년 7월 제정되어 22년이 지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관한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은 ‘가정폭력’에 대한 개념부터 새로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상습적 가정 폭력 피해자는 폭력의 징조만 보여도 위험이 임박했음을 감지했다고 여겨 정당방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인정하여 주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은 40년 가까운 학대를 받다가 남편을 죽인 여성에게도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이러한 사례들에 정당방위는 단 한 번도 없어 왔다. 대한민국의 재판부는 가정폭력범죄 피해자의 생존을 위한 정당방위를 인정하기는커녕 ‘계획적 살인’이라며 가중처벌을 계속해 오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2017년 가정폭력 처벌 완화법이 통과되며 여성 인권 보호가 퇴보한 러시아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이러기까지 손 내민 사람 없었거든요. 이 여자 분도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죽어서도 누구 하나 왜 죽었는지 알아주는 사람 없었을 테니까요.”
- tvN드라마 ‘유령을 잡아라’ 5회 가정폭력을 당하던 ‘혜진’의 대사 -
답답할 정도로 폭행을 견디며 침묵하는 그녀들은 누구 하나 손 잡아주는 이 없는 차가운 세상에서 그저 기댈 수 있는, 외로움을 달래줄 이가 폭력을 가하는 ‘그’라는 존재 하나였을 뿐이다. ‘혼자’, 주위에 기댈 이가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외로움은 깊고 깊은 어둠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픔은 어쩌면 따스하게 내미는 손만으로도 위로와 치료가 가능할는지도 모른다.
“이 밤에 질경이 냄새가 짙게 맴돕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그녀의 이야기 <들꽃>.
우리는 그녀를 단죄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 이 사회는 공동체의 일원인 그녀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우리 곁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하서린’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들꽃>의 그녀들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2000년 ‘최소 단위 인간관계의 성찰을 통한 연극 기본정신의 부활’이라는 모토로 개최된 이래 어렵게 계속되어 온 ‘2인극 페스티벌’은 올해 ‘월드 2인극 페스티벌’로 명칭을 바꾸며 세계인들과 함께 하는 국제적인 페스티벌로 영역을 확장하여 한국적인 색채만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들의 고유한 색채를 드러내며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또한 열정적인 대학팀의 가세로 창의적인 독특한 색깔과 젊은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가 표출되고 있다. 내년 창설 20주년을 앞두고 성숙의 단계로 올라서는 해인 동시에 성장과 진통의 원리로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화합으로 전환시킬 계기가 되는 ‘열쇠’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제19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은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17일까지 계속되며 11월의 차가운 공기를 연극의 온기로 채워주고 있다.(윤시향 심사위원장 & 지춘성 서울연극협회 회장 ‘축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