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유쾌함 가득한 '노인 강도단의 완전 범죄'로 노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에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연극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가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대학로 알과핵소극장에서 힘든 일상 속에서 힘든 마음을 안고 있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치유의 시간을 선사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8시 취침, 간식 금지, 산책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원에서 사는 79세 메르타 할머니. TV다큐멘터리에서 보니 감옥에서는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준다는데. 이렇게 사느니 감옥에 가는 게 훨씬 낫겠다며 분개한 메르타 할머니는 요양소 합창단 친구들과 강도단을 결성하기 위한 모의를 시작한다.
노인 강도단의 리더 메르타와 강도단의 브레인 천재, 전직 선원 갈퀴, 암산의 여왕 안나, 그리고 스티나까지 다이아몬드 요양소에 함께 사는 이 다섯 노인들은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은 누구 하나 의심을 않는다는 것을 이용하여 국립박물관에서 모네의 그림을 훔친다. 그림 값 천만 크로나만 챙긴 후 그림은 무사히 돌려주고, 출소 후 숨겨놨던 돈을 찾아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를 계획한다.
노인들은 훔친 그림을 호텔의 인테리어인 척 머물고 있던 스위트룸에 숨겨 둔다. 하지만 감쪽같이 그림이 사라져 버렸다.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없게 된 노인들은 무작정 경찰서에 찾아가 자신들이 범인이라며 감옥에 보내달라고 자수하지만 노인들의 말을 믿어주는 경찰은 한 명도 없는데...
노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요양원을 탈출한 노인들은 박물관에서 감쪽같이 그림을 훔치고 교도소에 들어가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기도 한다.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세상에서 떨어져 나간 노인들이 현금이송차량을 터는 일까지 모든 일을 너무나 완벽하게 해낸다. 현실에서 우연히 라도 일어나기 힘든 사건들이기에 차라리 판타지에 가까운 연극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언젠가 노인이 될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 또한 무대 위 편협한 시선을 가진 노인들의 주변 인물들과 다를 바 없다고 꾸짖기까지 한다. 하지만 잔잔함 속에 감동이 가득하다.
스웨덴 소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카타리나 마리아 프레드리카 잉엘만순드베리의 작품으로 2012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발표한 후속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스웨덴에서는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원작자의 나라 스웨덴은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정도로 고령자 인구가 많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우리나라도 전 세계에서 가파르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9년 대한민국에서 이 작품을 만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젊음과 패기는 한 때일 뿐, 결국 모두 늙어간다. 늙어갈수록 당연하게 해 오던 것들은 기억 속에만 남겨지고, 몸은 기억을 따라가지 못한다. 주위의 모든 이들과 멀어지고 생활의 편리와도 동떨어져 나간다. 아니 주위의 모든 것들이 ‘늙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멀리함을 잘 알기에 더더욱 세상에 당당하지 못하게 되어 갈 것이다.
극단 대학로극장에서 제작한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각색에 김수미, 드라마투르그 민복기, 연출에 이우천이 참여하였으며, 대학로 뿐 아니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 김화영, 고인배, 이영석, 강애심, 배상돈, 이영숙, 이유진, 황무영이 출연하여 소설이 가진 작품의 쉽지 않은 호흡을 무대 위에서 너무나 훌륭하게 구현하였다. 그리고 제작진으로 무대디자인에 김교은, 무대그림에 민서, 조명디자인에 류백희, 의상디자인에 김정향, 음악에 김동욱, 분장에 이지연, 사진에 유희정이 참여하였으며 공연기획은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 애정이 깊은 ‘아트리버’가 맡아서 진행하였다.
“노령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우리의 현시점에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연극, 꼭 필요한 연극이 되겠다. 대사 위주의 연극에서 소설의 캐릭터들이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더 잘 보일 수 있게 대사들을 재분배하는 방향으로 윤색을 하여, 많은 장면 전환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단순하고 일목요연하게 각색을 진행하였다. 가장 중요한 소설이 가진 기발함과 재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기발함과 재미가 무대 위에서 좀 더 잘 구현될 수 있게 하였다.”라고 드라마트루그 민복기는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하였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우천 연출가는 “늙는다는 것은 쓸쓸하고 외롭고 아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늙어가는 것’에 방관하지 않을 사회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늙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노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고 연출의도를 이야기하며 이러한 질문을 관객과 공유하기를 소망했다.
우리에게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를 제작한 ‘극단 대학로극장’은 1989년 개관한 증견극단으로 창작극의 활성화와 소극장연극의 대중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오고 있다. 2010년부터 새로이 극단 대표로 취임한 젊은 연출가 이우천은, 현상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직시하며 우리 사회의 많은 불합리와 폐단을 공론화시켜 그것에 대한 대안을 함께 해 보자 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벼움 속에 진중함을 가진 연극을 통해 관객과 더욱 가까워지고자 하는 ‘극단 대학로극장’의 다음 작품 속 진실이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