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대한민국의 모든 30ㆍ40대에게 바치는 위안의 연극 <헤비메탈 걸스>가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열띤 호응 속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른아홉 살의 주용, 은주, 정민, 부진은 중소기업 식품개발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16년지기 회사 절친들 이다. 소박하지만 나름의 인생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네 사람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흘러들어온다. 새로운 외국인 사장님이 부임해오면서 인원감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 그녀들이 16년간 믿고 따르던 유일한 동아줄 차부장도 조기퇴직자 명단 1순위 상황. 차부장은 퇴직하기 전, 새로 부임해오는 사장님이 헤비메탈 광팬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귀띔해 준다. 이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죽기 살기로 헤비메탈을 배우는 것 뿐!
어디선가 미심쩍어 보이는 두 남자 승범과 웅기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에서 헤비메탈 마스터를 위한 첫걸음을 떼는 네 사람. 과연 그녀들은 무사히 헤비메탈 트레이닝을 마치고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13년과 2014년 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 지원에 선정되었던 연극 <헤비메탈 걸스>는 2019년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와 종로문화재단 문화다양성연극 무지개픽(소수자 및 다수자 간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여 공존하는 것을 지향하는 문화다양석 인식을 담은 작품을 선정해 제작 지원을 하고 있다)에 선정되며 다시 한 번 대중성과 작품성을 검증 받았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만큼 더욱 강렬한 음악과 웃음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꿈을 포기하자니 아직 젊은 것 같고, 새로운 꿈을 꾸자니 너무 늦은 나이인 것만 같은, 그렇게 회사와 인생의 압박 속에도 꿋꿋하게 삶을 견디면 매일매일 더 단단해져 가는 오늘날의 3040세대에게 보내는 응원과도 같은 연극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헤비메탈에서도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내포한 데스메탈의 영혼과의 조우로 더욱 강렬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강타하고 있다. 연극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짜릿한 헤비메탈 사운드와 소울은 관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이번 공연은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 메스그램(Messgram)의 신장혁과 이그나이터(Igniter)의 이남우 메탈기타리스트와의 협업으로 더욱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졌다.
- MINI INTERVIEW -
1. 연출님을 설명하는 많은 말들 중 '작품성과 흥행성의 조화'라는 말은 연출님의 매 공연을 볼 때마다 더욱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이지 않는 장르인 '데스메탈급 헤비메탈'을 너무나 친근하게 가져왔을 뿐 아니라, 슬프고 힘든 웃픈 현실 속 인물들을 유쾌하게 그려냄은 너무나 따스했습니다. 무대 위 '연기'를 하지 않는 듯 한 자연스러움과 호흡과 호흡 사이 '사이'의 치밀한 간극은 관객들을 무대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연출님이 희곡을 쓰고 무대화시킴에 있어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고 끌어가시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최원종 연출
공연을 만들 때 ‘가짜’가 아닌 ‘진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절실히 가집니다. ‘진짜’가 아니면 관객의 마음을 조금도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라는 것은 꼭 리얼리티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굳게 닫혀있는 관객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작품을 자신들의 이야기로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편입니다.
먼저 연출과 배우들이 함께 이 작품이 ‘진짜’를 담고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진짜’ 가 있다면 작품의 인물들과 ‘진짜’를 찾아가는 작업을 합니다. 매번 연습할 때마다 우리는 ‘진짜’를 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가짜’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작품을 수정해나갑니다. 여기에서 ‘진짜’란 작품의 인물에게도 해당되지만, 배우 분들의 연기에도 해당됩니다. 그래서 배우 분들과 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그러면서 그 배우분이 갖고 있는 삶의 ‘진짜’ 모습들을 작품 속에 녹이고자 노력합니다. ‘연기’를 하지 않는 듯한 자연스러움은 아마 이렇게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 기존의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인물이나 감성, 드라마를 만들어보고자 노력합니다. 새로움은 늘 관객의 마음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니까요.
매번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힘든 순간이 와도 처음 다짐했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가는 것. 이 작품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그 마음. 그래서 배우 분들께도 스텝 분들께도 무엇보다 관객 분들께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 제가 늘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2. 인물들 한 명 한 명 살아있는 서사와 공연 내내 느껴지는 열정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우님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배역의 서사를 어떻게 애정 어리게 잡았을지 궁금합니다.
・ 김동현 배우
웅기는 단순 명료하다. 메탈을 사랑하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고 돈을 벌어 음반을 내려고 아등바등 사는 인물이랄까. 중요한건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 김결 배우
어떤 작품의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그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무대 위까지 오를 수는 없습니다. 이번 ‘승범’이라는 아이도 보이는 모습은 희화되어 우습게 보이겠지만 햄릿에 견주어 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아픔이 있는 아입니다. 안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하재숙 배우
기러기 엄마로 살아가는 은주가...더 밝아보였으면...그리고 절실함이 구차해 보이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앙상블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하고....현실을 살아가는 동료들의 친한 모습이 잘 보였으면 해서 실제로 배우들끼리 대화를 많이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혜리 배우
대사에서 나오듯 임신 중인데 남편도 백숩니다. 그래서 막막한 미래에서 삶을 가슴깊이 움켜잡아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잡았습니다.
팀장이지만 드러내놓고 리드하기보단 동료들을 마음으로 다독거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옥분 배우
각자의 실제 경험들과 기억들에 대한 얘기들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서사가 더욱 사실적으로 된 거 같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연출님과 작가님과 배우님들과 함께 많이 얘기를 나누면서 굳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여진 배우
저는 제가 잡은 부진이의 캐릭터를 지금 저희 작품을 쓰고 연출하신 연출님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가까이 표현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연출님의 성격이 부진처럼 뭔가 나서서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움도 많으시고 부진을 본인이라 생각하고 쓰셨다는 말에 연출님을 자세히 관찰하고 찾은 케릭터입니다. 거기에 저의 분석과 나름 제자신에게 숨어있던 모습들을 서사로 만들어보니 매력적인 캐릭터라 생각한 거 같습니다. 저는 지금의부진이를 매우 사랑합니다.
・ 이갑선 배우
연습과정이죠. 본인의 연구와 노력. 체크하고 길을 제시해주는 디렉터와의 소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3.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은 대사와 그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최원종 연출
메탈리스트 승범이 회사원 박부진에게 메탈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메탈은 삶을 닮았어. 거대한 폭풍 속을 헤쳐 나가는 조그마한 모터보트 같은 거지…”
저한테 연극은 삶을 닮았습니다. 거대한 폭풍 속을 헤쳐 나가는 조그마한 모터보트 같은 겁니다.
・김동현 배우
'언제부터일까 우리가 꿈을 잊고 살게 된 건... 아마도 우리가 어리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때가 아닐까.'
이 대사는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누구나 공감되는 말이기 때문에...
・김결 배우
‘웅기야~ 나 술 선택할래~’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술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슬픔...
・ 하재숙 배우
제가 젤 좋아하는 대사는 "fuck"입니다!! 우리 작품의 정신을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장혜리 배우
바닷가에서 '우리가 어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때,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 따윈 없다라고 생각했던 그 때'라는 대사가 가장 인상 깊습니다.
처음 그 대사를 리딩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삶을 그렇게 단정 지었던 사건과 마음이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옥분 배우
전 다른 배우들이 바닷가에서 각자 꿈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을 때가 가장 인상 깊습니다, 그럼 정말 오랜 친구들의 속내를 듣는 거 같아 가슴 뭉클하면서 마음 한 켠으론 그립습니다. 정말 오래된 내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습니다. 바빠서 못 만나고 있는 상황이 서글퍼 그 대사가 가장 인상 깊습니다.
・김여진 배우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마지막 바닷가에서 나누는 대화중에 '그러니까 우리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의심하게 된 때는 언제부터였을까?'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릴 땐 하고 싶은 꿈도 막연하게 '이것'이라 정해놓고 달리고 살다보니 어릴 적 그모습 그대로인데 몸만 커버린 것 같은 내 모습과, 지금 꾸기엔 두려움이 있는 그 꿈에 대해 하고 싶은 일에는 나이가 없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습니다.
・ 이갑선 배우
'널 가두고 있는 틀을 모두 부숴버려'
요즘 같은 사회분위기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서가 아닐까합니다.
4.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차기작들이 궁금합니다.
・최원종 연출
2019년 12월 6일부터~29일까지 <안녕 후쿠시마> 공연을 합니다.
‘헤비메탈 걸스’ 에 출연했던 김동현, 김결, 이갑선 배우 모두가 나옵니다. 걸크러쉬 나인 뮤지스의 혜미도 함께 합니다.
'안녕 후쿠시마'는 ‘세상 끝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같은 작품입니다. 겨울만 되면 이 작품을 초연했던 배우 분들이 늘 하고 싶어 해서, 이번 겨울에도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1월 22일~1월31일까지 '외톨이들' 이라는 작품을 합니다. 이 작품은 종로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문화다양성연극제에 뽑혀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이갑선 배우
다시 또 이 배우들과 명작옥수수밭 차기작을 하게 됩니다.
세 작품 연속으로 락커 캐릭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극단에 음반이라도 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재숙 배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집 떠난 지 너무 오래돼서 당분간 집에서 쉬기도 하고...물 속(?)으로 여행도 많이 다닐 예정입니다.
・장혜리 배우
현재 당신만이를 병행하며 공연 중이고~ 지금은 '사랑에 관한5가지 소묘'를 연습중입니다.
・구옥분 배우
뮤지컬 '1976할란카운티' 공연 예정입니다.
삶에 있어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정해진 길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렇게 하도록 사회에 길들여진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고 여기는 것 뿐일는지 모른다. 세상을 향해 그 동안 움츠리고만 있던 감정들을 시원하게 내지르라는,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절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힘들 땐 힘들다고 솔직해지라고 당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대신하여 시원하게 풀어내 주는 연극 <헤비메탈 걸스>가 건네는 위로는 삭막한 겨울 따스한 손난로 하나처럼 작지만 온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