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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시간, 연극 "그 후 AFTERPLAY"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19/11/19 21:13 수정 2019.11.19 22:43
2019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사업 선정작
‘그 후’ CAST_소냐(이정미), 바이올리스트 닐루,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CAST_소냐(이정미), 바이올리스트 닐루,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안톤 체호프 ‘바냐 삼촌’의 소냐와 ‘세 자매’의 안드레이를 주인공으로 아일랜드의 세계적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이 창작한 작품이 '극단 제비꽃'에 의해 2018년 국내에 처음 선보인 데 이어, 더 많은 관객과 ‘함께’ 하고자 작품의 완성도에 깊이를 더한 연극 <그 후 AFTERPLAY>가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관객들에게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시간을 선사하며 막을 내렸다.

삶의 고통을 인내하며 쉼 없이 일하던 ‘바냐 삼촌’의 소냐, 누나들의 희망을 저버리고 도박으로 집을 저당 잡혀가며 속깨나 썩이던 ‘세 자매’의 안드레이. 이 두 인물은 작품 속의 삶이 끝난 시점에서 이십여 년 후, 모스크바의 어느 허름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다.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연주자로 그럴듯한 삶을 사는 안드레이와 여전히 사유지와 씨름하며 또순이처럼 살아가는 소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이 중년의 독신 남녀가 또다시 만난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내는 외로운 두 영혼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간다. 하지만 거짓 너머의 삶이 점점 드러나면서 소냐와 안드레이는 상대방이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왔는지, 왜 모스크바에 왔는지 알게 되는데...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안드레이(윤상화)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바이올리스트 닐루 /ⓒAejin Kwoun
‘그 후’ 공연사진_바이올리스트 닐루 /ⓒAejin Kwoun
‘그 후’ 커튼콜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바이올리스트 닐루 /ⓒAejin Kwoun
‘그 후’ 커튼콜사진_소냐(이정미), 안드레이(윤상화), 바이올리스트 닐루 /ⓒAejin Kwoun

아일랜드 태생의 세계적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의 원작 <그 후 AFTERPLAY>는 2002년 더블린 초연에 이어 런던, 에든버러,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모스크바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공연되고 있다. 2018년 '극단 제비꽃'에서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한국 국제 2인극 페스티벌 공식참가작으로 선정되어 전회 만원사례를 기록하며 관객의 뜨거운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개인의 고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서 과거부터 반복되는 절망과 후회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 <그 후 AFTERPLAY>는 몇 십 년 전 그랬던 것처럼 지역 의사를 무척이나 그리고 절망적으로 사랑한다는 소냐와 거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는 안드레이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외로움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늘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은 차마 털어놓지 못한 우울한 삶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이야기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꿈과 현실의 간극, 인간의 속물성과 허위를 드러내며 오늘날 사는 우리와 그네들도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하며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 MINI INTERVIEW -

1. 사전에도 없는 새로운 단어들로 이야기하는 인간 내면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정서가 가득한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와도 참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그의 작품을 새롭게 창작한 작가 브라이언 프리엘 또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상반되고 교차되는 감정들을 너무나 물 흐르듯이 이어 나가는 느낌입니다. 대사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자기고백들은 무대화시키는데 많은 고민들이 있었을 듯합니다. 원작의 번역과 무대화에서 어떤 부분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을지 궁금합니다.

・이은기 연출

소냐와 안드레이의 ‘외로움’에 집중하고 고민하기 위해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되 최대한 현대적 감각으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다른 문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공감할 수 있도록 원작은 물론 체호프 ‘바냐 삼촌’과 ‘세 자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선행해 배우 분들과 함께 대사의 말맛을 잘 살려내도록 노력했습니다.

2. 공연의 시작과 마지막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 중 쓸쓸한 감성을 잘 그려내는 듯 한 연주자 닐루의 바이올린 연주는 참 인상 깊었습니다. 현을 튕기는 떨림부터 고음과 저음의 옥타브를 오고 가는 선율은 진중한 첼로부터 노래하는 듯 한 비올라까지 오고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연 중 연주한 곡들의 선곡 그리고 연주의 타이밍들을 어떻게 잡았을지 듣고 싶습니다.

・ 이은기 연출

브라이언 프리엘은 이 작품을 1920년대 초반이라고 시간적 배경을 제시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1922년 11월로 정했습니다. 한 달 후인 12월은 소련이 건국되는 변혁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프닝 곡은 ‘모스크바 근교의 밤’을 선곡했습니다. 노년이 된 안드레이가 카페에서 소냐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연주하는 듯 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 삶에 지친 우리가 여기서 만났었지”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그리고 안드레이가 소냐와 보드카를 마시며 “갑자기 아주 특별한 저녁이 됐어요”라는 대사를 할 때는, ‘나 홀로 길을 걷네’를 선곡했습니다. 소냐와 안드레이가 연민을 느끼고 서로의 외로움을 공감하듯이...

‘그 후’ 바이올리스트 닐루 /ⓒAejin Kwoun
‘그 후’ 바이올리스트 닐루 /ⓒAejin Kwoun

・바이올리스트 닐루파르 무히디노바(Nilufar Mukhiddinova)

소냐의 긴 독백에 나오는 곡인 푸치니 ‘예브게니 오네긴’의 ‘타티아나 아리아’를 선곡한 이유는 아리아에 나오는 메이저 코드(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내려가는 멜로디 부분)가 소냐와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소냐의 독백 중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왔어요.”를 대변하는 듯 한 느낌이 깊게 와 닿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극 중 연주자로서 존재해 있으면서 개인적으로도 더 깊게 와 닿는 부분은 단연 소냐의 마지막 독백이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는 불굴의 힘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며 툰드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소냐를 볼 때마다 저도 여성으로서 그 마음이 더 이해되고 공감돼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 공연에 참여하였습니다. 아, 그리고 전율이 느껴져요.

20년 넘게 음악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클래식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늘 사운드로만 그림을 그려왔던 것과는 다르게, <그 후>라는 연극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전과는 다른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있었습니다. 연극처럼 이미지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휴먼 보이스로도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악기 같더라고요. 이렇게 작은 소극장을 아주 친밀하고 밀도 있게 채우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저에게는 또 하나의 악기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극 중에서 연주를 하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보이스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어쩌면 그리 되었음 간절히 소망했을 상황들과 너무나 쓸쓸하고 가슴 아픈 현실을 오고가며 대화들을 이어가는 배우님들의 표정과 연기는 공연이 끝난 후 끝나지 않는 허전함으로 쉬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관객들에게 탄성, 헛웃음을 짓게 도 만들던 많은 대사들 중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다고 생각하는 대사 그리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후’ 소냐 역 이정미 배우 /ⓒAejin Kwoun
‘그 후’ 소냐 역 이정미 배우 /ⓒAejin Kwoun

・ 이정미 배우(소냐 役)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는 거, 필요한 건 그게 다에요.’

지금 시국과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지금,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 후’ 안드레이 역 윤상화 배우 /ⓒAejin Kwoun
‘그 후’ 안드레이 역 윤상화 배우 /ⓒAejin Kwoun

・윤상화 배우(안드레이 役)

‘당신이 그렇게 되길 바래요.’

길 끝에 선 사람이 역시 길 끝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한마디 아닐까요?

‘그 후’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한 이은기 연출 /ⓒAejin Kwoun
‘그 후’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한 이은기 연출 /ⓒAejin Kwoun

・이은기 연출

‘대기실에서 사는 삶, 이상하지요?’

‘지금, 여기’를 현실로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철학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차기작을 알고 싶습니다.

・ 이정미 배우

아직 없습니다. 여행하며 책을 읽고 싶습니다.

・윤상화 배우

아직 없습니다.

・이은기 연출

독일어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볼프람 로츠의 오디오극 ‘웃기는 어둠’을 번역했는데 국내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과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토대로 2012년 창작한 작품으로 2014년 초연되어 독일어권의 모든 저명한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강인함과 가녀림을 동시에 품고 있는 앉은뱅이 꽃으로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하면서도 그 속에 유함을 넘어서는 굳센 의지를 표상하고 있는 여러해살이풀, 해마다 봄이 오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그 화사한 꽃망울을 틔우는 일명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봄꽃에서 이름을 따온 ‘극단 제비꽃’은 작가, 연출가, 드라마투르그, 스태프를 중심으로 최소의 인원으로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소수정예로 꾸려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중시하고 자연과 소통하면서 경쟁과 독점 없는 세상을 연극을 통해 만들어가며, 연극을 통해 인생의 참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유머의 멋을 즐기는 진정한 예술단체를 지향하고 있는 ‘극단 제비꽃’이 함께 만든 작품 <그 후 AFTERPLAY> 속 두 인물은 제비꽃을 닮은 듯하다. 척박한 땅 위에 연약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강한 비바람에 오히려 굳건한 들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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