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상징주의 대표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곡을 새롭게 재해석한 연극 <인테리어즈(Interiors)>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창문’을 통해 집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가운데,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연극을 선사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연극을 국내 관객에게 선보여 온 국립극단의 초청공연 <인테리어즈>는 12시간 남짓 비행하여 관객들을 영국의 한 외곽 황무지 외딴 작은 빛의 상자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어느 겨울날, 눈으로 뒤덮이고 어둠이 내린 고요한 저녁.
아늑한 불빛이 감도는 외딴 집이 있다.
창문 너머에 보이는 방 안에는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탁 위의 음식을 즐기고, 서로의 잔을 부딪치고, 리듬에 몸을 맡겨 춤을 추기도 한다. 이렇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화목한 파티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창 밖에는 이 모두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그녀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숨겨진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며, 이내 슬픔이 찾아오는데...
무대 위 집 안의 인물들이 움직이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연극적 약속에 의해 펼쳐지는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창틀에 유리가 정말 존재한다. 내부 인물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유리창 너머의 인물들을 숨어서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관찰자의 목소리를 빌어 행복하게만 보이는 표면적인 모습 이면의 대조되는 생각들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만든다. 사랑과 아픔, 삶과 죽음 등 다양한 요소들을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신비로운 이국적 세계를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생경함 속에 무대 위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파티 도중 서로 피부를 맞대거나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의 생각은 숨김없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을 통해 듣는 이들의 내면은 행복하게만 보이는 겉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인물들의 생각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는 중에도 새로이 피어난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평범하게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표정을 관리하는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름과 출신 등 그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는 몽환적이기까지 한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각 인물들의 마음의 소리는 무대 인물들과의 공감을 넘어서 관객들의 마음까지 두드린다.
‘파랑새(L’Oiseau Bleu(1908)’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발렌 왕녀(La Princesse Waleine(1889)’를 비롯한 상징극과 ‘펠레아스와 멜리상드(Pelléas et Méllisande(1892)’ 등의 작품으로 ‘새로운 셰익스피어의 등장’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갈등 요소보다 운명이나 죽음, 행복 등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운명의 힘에 대한 개념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연극적 사건으로 가득 찬 비극보다도 일상의 진실에서 더 큰 비극이 존재한다는 그의 가치관이 명확하게 발현된 초현실적인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뮈엘 베케트를 비롯한 많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아늑한 집과 감각적인 조명 그리고 몽환적인 영상이 어우러진 작품 <인테리어즈>의 예술 감독이자 연출가 매튜 렌튼(Matthew lenton)은 원작에서 집 안의 인물들을 가족으로 묘사한 것에서 벗어나 좀 더 드라마틱한 인물들과 요소들로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부각시키며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공연장이 아닌 공간에서 공연을 하며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 매튜 렌튼은 액자식 무대 속 최소화시킨 등장인물을 통해 무대 위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여 신비한 분위기를 구축하였다. 작품은 2009년 에든버러 초연 후 약 10년 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이와 더불어, 유수의 연극상을 석권하며 실험적인 연극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독특한 극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는 1999년부터 약 20년 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극단으로 공연장이 아닌 특별한 공간에서의 퍼포먼스나 신체연극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의 연극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을 찾고 있으며, <인테리어즈> 역시 독특한 구성과 연출로 극단의 자유분방한 특색을 살려냈다. 매우 단순하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는 아름다움과 음울함 그리고 동시에 불길하고 멜로드라마적인 사이에서 오고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의 삶을 고찰하는 시간을 안겨주었다(Production Note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