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낚시대회를 배경으로 물고기를 잡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결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중국 극작가 궈스싱(过士行)의 대표작 <물고기 인간>이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한국적 정서와 유머를 작품 속에 녹아내며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선사하며 아쉬운 막을 내렸다.
북방 어느 호숫가에서 낚시 대회가 열린다. 호수의 신화적 존재 대청어와 물고기를 지키는 위씨 영감은 낚시 대회를 탐탁지 않아 한다.
낚시 대회로 소란스러운 가운데 30년 전 대청어를 낚다가 아들을 잃은 ‘낚시의 신’이 등장하면서 호숫가에는 긴장감이 맴도는데...
깊은 신뢰와 존경을 나누며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로 보이는 위씨 영감과 낚시의 신의 격돌은 다정하나 치열하고, 유머 넘치나 필사적이다. 대청어를 잡는 것과 지키는 것이 이들의 인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대청아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전히 살아있기는 한지 명확치 않다. 오히려 위씨 영감과 낚시의 신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청어일는지 모른다. 기실 이들이 아무도 본 적 없는 대청어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서로의 존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1989년 지어진 궈스싱 작가의 첫 세 작품 중 하나인 <물고기 인간>은 ‘한가로운 사람’, 속칭 ‘한량’들의 이야기이다. 낚시하는 사람(漁人), 새 기르는 사람(鳥人), 바둑 두는 사람(棋人)의 ‘한량 삼부곡’을 통해 궈스싱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사회가, 혹은 인류가 직면한 생존의 ‘곤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머와 해학, 부조리와 역설을 통해 영혼의 깊은 곳을 울려낸다. 김우석 드라마터그는 낚시의 신과 위씨 영감이 문답으로 엮어내는 ‘낚시경(經)’과 낚시의 신이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김우석 ‘드라마터그의 글’ 참조)
일상과 신화 그리고 상징과 은유로 뒤범벅되어 있는 작품 <물고기 인간>은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박상봉 무대 미술가, 윤현종 음악가 등이 참여하여 간결함 속에 다양함을 담아내며 작품에 힘을 실어주었다. 무대 위에 작품을 예술미 가득하게 형상화시킨 김광보 연출은 낚시의 신과 위씨 영감의 대결을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팽팽한 대결로 그려내며 의지와 의지의 대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대결까지 포괄적으로 풀어내며 역설적으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의 내면세계를 직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본래의 장소성보다는 장면성에 방점을 두고 공간을 짓는 편인 박상봉 무대디자이너는 구체적인 구현이 쉽지 않았을, 물이라는 물질이 가진 이미지를 워낙에 강하게 품은 작품 <물고기 인간>의 무대를 해학적인 연출 의도에 맞추어 평소와는 다른 상상으로 방향을 모색하였다. 간결한 공간성으로 배우들을 목적지에 태워가는 무대를 훌륭하게 만들어내었다. 깊은 무대의 특성 상 무대 깊숙한 곳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들에 관객들이 자세히 보고 듣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공연 초반 낚시꾼들과 주요배역들이 한꺼번에 뒤쪽에서 연기하던 부분들이 중반 이후 이동식 바닥 위와 뒤쪽 무대로 나누어서 펼쳐지기도 하였다.
윤현종 음악감독은 <물고기 인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중국을 비롯한 세계 민속 악기들로 공간을 채워주며 우화적인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담아냈다.
인트로 음악은 3개의 관으로 구성된 중국 전통 쌍피리 ‘후루시(Hulusi)’의 선율로 마음을 잔잔하게 울려 주었다면, 낚시의 신과 위씨 영감이 30년 만에 조우하는 장면에 사용한 터키 민속 악기 ‘사즈(Saz)’는 미묘한 긴장감을 표현했다. 그밖에도 타자기처럼 보이는 가야금이나 피아노를 섞어 놓은 음색을 가진 일본 악기 ‘다이쇼고토(大正琴)’, 손가락 하프, 조롱박 피아노, 엄지 피아노라는 애칭을 가진 아프리카 전통 악기 ‘칼림바(Kalimba)’, 예쁘고 다양한 새소리가 나는 ‘새피리’, 아코디언 소리처럼 들리는 전통 인도 음악에서 쓰이는 상자 형태의 악기 ‘슈르티 박스(Shurti box)’는 작은 네모박스로 다양한 옥타브의 음들을 연주하며 지속적인 음을 낼 수 있어 다른 악기들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극의 감성을 한껏 이끌어내 주었다.
연극에 사용되는 소리들은 연출, 배우, 악사의 즉흥적 앙상블로 구성되었으며, 무대에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스스로가 또 한 명의 배우가 되어 연극 고유의 현장성과 즉흥성까지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하늘의 나왕나무는 누가 심었나?
땅 위의 황하는 누가 팟나?
쉬지 않고 바다를 메우는 이 누구인가?
달나라로 달아나 돌아오지 않는 이는 누구인가?
하늘의 나왕나무는 서왕모께서 심으셨고
땅 위의 황하는 용왕님이 파셨지.
정위가 새가 되어 바다를 메우고
‘도전자’가 달나라로 달아나
돌아오지 않지.
- 류사오엔 노래 -
극 중 ‘류사오엔’이 부르는 노래는 희곡에 쓰여 있는 가사에 허베이(河北) 민요인 ‘소백채(小白菜, Little Cabbage)’의 선율을 붙여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격변기를 살았던 작가가 쓴 우화 같은 이야기 속 상징과 은유는 느끼는 그대로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온통 거꾸로’인 이 세계에서 작품 속 셋째와 류사오엔, 낚시의 신과 위씨 영감이 만들어가는 ‘가족’은 기이한 형태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살아간다. 아름다운 꿈이 깨어지는 결말은 매우 아프다. 이들이 맞이하는 처절한 파국은 반복되는 실패이며, 비극의 상속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전영지 공연칼럼니스트의 ‘작품 설명’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