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연습실에서 연극을 하기 위해 모이는 장면에서부터 각자 아르바이트, 회사생활,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현장에서 겪었던 노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을 이야기하는 연극이 지난 20일부터 12월 1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일상생활과 너무나 가깝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한국의 정치경제학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마르크스가 쓴 ‘자본’이 유럽 전역에 알려진 지 150년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에 ‘자본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지는 겨우 20여 년이 되어 간다.
세계인구의 1%가 나머지 99%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혹자는 전 세계 1%의 부자가 전 세계 80%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1%가 99%를 지배한다”는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한편 1%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은 “1%가 99%를 먹여 살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치적인 주장은 99%가 느끼는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과연 나머지 99%는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 <자본>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그 99%이기 때문이다.
현재 1%는 정치적 통제나 기업적 관리 같은 비용조차 필요 없는 ‘유혹하는 욕망’을 통해 나머지 99%를 가장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특히 잉여 노동력으로 전락한 젊은 세대들은 더 많이 공부하고, 일하고, 성취해서 더 많이 소유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자본주의는 대중의 ‘불안’과 ‘갈망’을 먹고 살기에, 99%의 순응이 뒤따라야 하는 ‘자본’의 문제의 열쇠는 오히려 99%의 손에 달려 있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던 해인 작년 2018년에 초연되었던 <자본>은 극단 드림플레이 단원들이 참여한 워크숍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저자 강신준)』, 『위험한 자본주의(저자 마토바 아카히로)』, 『왜 분노해야 하는가?(저자 장하성)』를 함께 읽으며 나눈 이야기와 실제 경험담들이 담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제용어나 경제수치는 먼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도표화된 수치들은 보통 관리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수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들은 현혹당하기 일쑤다.
서구권의 중앙은행들은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은 브랙시트로 상징되는 탈유럽 움직임이 가속화되며 신자유주의 제국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버니 샌더스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복지국가의 재정 기초가 되는 세금 제도는 소득의 분배에 대해 서민층을 배신한지 오래다.
- MINI INTERVIEW -
1. <자본>이란 딱딱한 주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방식이 참 인상적 이였습니다. 공연 중 주로 거론되던 마르크스의 정치경제에 대한 이론들도 쏙쏙 들어왔습니다. 신자유경제주의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여러 담론 중 예술가의 노동과 연관지은 연출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재엽 연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상품을 생산하는 교환가치가 입증되어야만 노동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노동은 이러한 상품미학에 반하는 노동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때로는 예술가의 노동력 또한 상품가치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노동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창조하는 행위로서의 노동입니다. 잃어버린 인간성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러한 예술가의 노동은 자본이 퇴색시키는 노동하는 인간의 소외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입니다.
2. 자신의 경험담들이 진솔하게 묻어 있기에 더욱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공연의 대사들 중에서,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다 생각하는 대사 그리고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김재엽 연출
‘자본을 읽는 밤’, ‘내가 이래서 연극을 하나보다’, ‘자본가의 사무실에는 플라스틱 컵을 준비하세요’, ‘진상을 규명해야지요’ 노래가사들 모두가 저에게는 인상 깊습니다. 노랫말과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어 <자본론>에 적힌 사회과학의 언어가 쉽고 명확한 음악과 노래를 통해 <자본론>의 내용이 즐거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 권민영 배우
우리는 어쩌면 자본가들의 발밑에서 당연한 요구도 하지 못한 채 삶을 끝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서웠습니다... 내 삶도 그렇게 끝나게 될까봐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권윤애 배우
경제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듯이 연극과 정치 또한 모두 엮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저에게 가장 와 닿게 알려준 대사이기 때문입니다.
・김세환 배우
나는 과연 힘든 누군가에게 관심과 애정과 대안을 줄 수 있을까요?...
・김시유 배우
이 대사를 하는 순간엔 배우가 아닌, 한명의 노동자가 되어 무대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예린 배우
연기를 시작하고 항상 이 대사와 같은 생각이 머리를 따라다녔기에 이 대사가 제게 가장 와 닿았습니다. 제가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이 생각은 계속 따라다닐 것 같은 대사입니다.
・김진성 배우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백운철 배우
영화 “타짜”에서 “부자가 되고 싶니”라는 대사, 또 연예인 김정은이 “부자 되세요”라고 던지는 멘트에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 거 같아서입니다. 한정된 재화 안에서 (소수의) 부자가 되기 위해 내가 뺏을 다른 사람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내가 아는 그 부자는 나의 어떤 것을 빼앗았을까요?......
・서정식 배우
노동자의 해방과 평등을 위해 역사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부르짖었던 그분들의 외침을 다시 상기하며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는 현실에 주먹을 불끈 쥐어봅니다.
・양은주 배우
오늘도 산재사고로 돌아가시는 노동자분들이 계셨을 텐데.. 안전한 노동환경을 꿈꿔봅니다.
・이다혜 배우
실제로 자본론에 대해 무지하던 옛날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 들을 느끼고 있습니다. 웃으며 대충 넘겼던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되고요!
・이동욱 배우
남들이 보면 인생 편하게 산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연극은 도피처가 아닌 제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3. 차기작 소식이 궁금합니다.
・김재엽 연출
현재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故김학철 선생에 대한 리서치 진행 중입니다. 지난여름 연변에 다녀왔고, 곧 중국 태항산과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를 방문하여 리서치를 지속할 것입니다.
또한 서울연극제에서 중국 현대희곡 ‘만약 내가 진짜라면’을 상연할 예정입니다
11월 30일 공연 종료 후에는 연출, 배우들과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만일 99%가 가능한 일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고, 물질적 성취와 소유 없이도 인생의 행복과 삶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면 1%의 지배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자본>은 동시에 노동자인 내가 돈이 없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자본가가 얻는 이윤의 원천이 나와 같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있다는 것을 관객과 함께 재발견하려 한다.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꿈의 연극(DreamPlay)’을 무대화 하면서 발견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인간의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 공감하는 뜻의 인디 퍼포머 그룹(Independent Performer Group) ‘드림플레이’는 꿈처럼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잊기 쉬운 인생의 신비를 독창적인 무대 언어로 풀어봄과 동시에 대안적인 무대 공연을 지향하는 퍼포머들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인디씬을 개척해 나가며 인디스런 공연을 사랑하는 팬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