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전시공간에서 만나는 한 편의 음악 가득한 연극 <해방>이 지난 10월 22일부터 12월 1일까지의 공연을 연장하여 29일가까지 독특한 공간 종로예술극장에서 관객들에게 미스터리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종로 5가역 6번 출구 앞 오래된 건물의 낡은 계단을 지나 4층까지 올라오면 기대하지 않았던 독특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배우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고 책을 한 권 골라 음악을 들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공연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곳을 극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이상하고 희한한 극장의 이름이 바로 종로예술극장이다.
해방직후, 경성의 종로예술극장.
해방된 조선의 슈퍼스타 코타로가 연극을 하던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연극은 중단되고 미시마 경부와 강군에 의해 코타로의 비밀 노트가 발견되며 현장에 있던 관객들 모두 용의자가 된다.
슈퍼스타 코타로의 의문의 죽음, 과연 코타로는 누가 죽였을까?
혼돈의 시기인 해방 직후 코타로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추리한다.
경성 시대 극장으로 입장한 관객들은 배우들이 직접 내려준 특제 음료수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한다. ‘화랑’, ‘마리아 마리아’부터 ‘덕혜옹주’, ‘하모니’, ‘햄릿’ 등 다양한 장르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형식으로 연출하는 성천모 연출은 이번 공연 <해방>에서는 조명과 음향까지도 함께 조율한다. 음악이나 대사에 맞춰 색색으로 공간을 채워지는 빛들은 일반 공연장의 조명에 뒤지지 않는다. 종로예술극장의 색깔과 맞는 이들이 다채롭게 모인 배우진 들은 성천모 연출과 배우들의 제의로 자유롭게 모였기에, 그들의 에너지는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관객들과 함께 하는 추리를 욕심내며 자유로이 연극을 발전시켜 가고 있는 ‘종로예술극장’의 <해방>은 현학적으로 느껴지던 시구마저 친화적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독특한 개성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한 편의 연극은 찬바람에 닫혀 가는 관객들의 마음까지 ‘해방’시키고자 소망하고 있다.
- MINI INTERVIEW -
1. 스토리가 진행되며 대사를 통해 파편화된 이미지로 그려져 가던 인물들의 서사가 시의 구절구절들과 만나며 하나의 초상화처럼 또렷이 그려지는 느낌은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듯 한 여러 시들과 무대에서 그려지게 된 과정들과 원래 있던 노래 마냥 귀에 착 감기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성천모 작/연출
해방을 구상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배우가 시에 음가를 입혀 노래하듯 낭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대가 주었던 사회적, 개인적 고뇌는 시로 압축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셈입니다. 한 예술가의 소망은 사회적 소망과 결이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고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창조적 자유에 질문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해방은 이 질문에 대한 노래(시)입니다.
홍사용 시인의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박열 시인의 ‘나는 개새끼로소이다’가 같은 음악적 테마를 가지게 된 이유일 것입니다.
극 초반 코타로가 낭송하는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은 엔딩에서 김영랑 시인의 ‘독을 차고’의 배경음악이 됩니다.
함여운이 노래하는 김소월 시인의 ‘못잊어’는 작품 내내 코타로와 함여운의 장면에서 반복됩니다. 오늘 그리고 지금도 그리운 기억의 조각으로 반복됩니다.
이필이 노래하는 한용운 시인의 ‘복종’은 친일파로 낙인찍힌 온건개화파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영 논리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예술가 이필의 소망이 역설적으로 낭독됩니다.
코타로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그를 분열시키고 이상 시인의 ‘거울’과 만납니다.
관객 분들과 함께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1934년)
마지막으로 이육사 시인의 ‘절정’은 사회주의자로 독립운동을 했던 피창수의 깨달음과 만납니다.
"이거이 절대 끝나디 않을 이야기디."
자유에 대한 한 개인의 소망은 부조리하게도 완전하게 자유롭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서 절정의 테마는 극의 피날레와 커튼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혜영 작곡가
처음 대본을 전달받았을 때 각 장면에 들어가는 시가 인물들의 서사를 연결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과거나 미래로 뛰어넘는 장면들 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인물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시의 내용 중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는 구절에 집중하여 선율을 그려내는 작업을 하였고, 동시에 구조적인 흐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강현이 부르는 홍사용 시인의 ‘왕이로소이다’는 코타로의 숨은 이야기를 조명하며 발단을 만들고 , 피창수가 부르는 이육사 시인의 ‘절정’은 극의 가장 가운데서 모든 인물들의 일대기를 한 데 모아 슬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함여운이 노래하는 김소월 시인의 ‘못잊어’는 비극을 암시함과 동시에 사랑 또한 노래합니다.
연극에 넣은 음악인지라 연기를 방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배우 분들의 표현력과 연출가님의 재치로 이렇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제게도 매우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2. 카페와 전시장의 공간에서 만나는 연극은 요즘 탈 대학로 추세에서 처음 만나는 형식은 아니지만, 사실 불편한 의자 빼고는 전문화된 극장에서의 느낌 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팀 분위기 또한 연습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났을 것 같았습니다. 연습과정 속에서나 공연 중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길정석 배우(코타로 役)
피창수와 오랜만에 만나 포옹을 하는 씬이 있습니다. 피창수 역의 김태영 배우는 이번에 처음으로 작업을 같이 했습니다.
처음이라 어색하던 시절...그런데 포옹을 하다 둘이 같은 방향으로 포옹을 하여 그만 뽀뽀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뽀뽀로 인해 지금까지 김태영 배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하
・임윤비 배우(현성인 役)
연습 과정 중에 인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일 모두가 재미있었습니다.
의상이나 소품, 공연을 위한 것들을 하나하나 같이 준비하던 과정이나 같이 맛있는 음식 준비해 와서 먹었던 것 등등 모두가 행복한 에피소드입니다.
공연 중 재미진 에피소드라면 단연 [빈 칸]입니다. 제가 채우는 빈 칸도 즐겁지만, 역할 상 거의 픽스된 대사를 해야 하는지라 배우들이 채워가는 빈 칸을 작품의 맥락 안에서 음미해보는 즐거움이 큰 것 같습니다.
・강민지 배우(함여운 役)
소품으로 사용할 신문을 만들고, 4층으로 올라가는 벽에 관객들을 해방의 시대로 인도하기 위해 각종 글들을 적어 붙이고, 망토를 만들고, 의상을 직접 구하러 뛰어다녔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 다 함께 만들었던 것이, 작품에 애착을 갖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 것 같습니다.
・고현준 배우(강현 순사 役)
대본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즉흥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배우의 의견과 대사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극이 액자식 구성과 같은 복합적인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장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사석에서 토론을 했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같은 문장과 플롯도 각자의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의상을 구하러 시장을 다니고, 인터넷을 뒤져서 구매하는 과정들이 떠오릅니다. 극단 시스템의 작품은 역시 이렇게 모든 부분을 배우들이 함께 하는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배우들이 고생을 했고, 지금도 자신의 영역을 많이 희생하며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자신의 스케줄이 없는 날 공연의 스태프를 자처해서 오퍼레이팅을 했던 공연들이 가장 인상 깊게 떠오릅니다.
3. 함축되어 정제된 언어의 시는 대사로 활용하기에는 체화시키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시들이 원래의 대사들과 너무나 잘 어우러져 원래 아는 시가 아니라면 시로 들리지 않을 듯도 하였습니다. 너무나 멋지고 기억하고픈 대사들이 많은 이번 공연에서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무엇이었을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성천모 연출
코타로의 대사 "난 암전이 되었다가 다시 켜지는 순간을 제일 좋아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거든."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환상적이고 원초적인 바람 아닐까요? ‘짠’하고 새롭게 리셋 되는 것.
・길정석 배우(코타로 役)
코타로의 마음과 코타로를 연기하는 길정석의 마음이 가장 맞아 떨어지는 대사이기 때문에 좋습니다.
・홍수영 배우(미시마 경부 役)
주요 용의자인 이필의 가방에서 발견된 권총과 대본.
권총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증거이지만 대본은 의외의 증거였습니다. 간단하게 수사의 문을 열기 위한 쇼맨십으로 읽어보려 했던 대본에서 수사의 핵심 소스를 발견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수사와 연극을 하나의 통합된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는 대사입니다.
・고현준 배우(강현 순사 役)
사건 수사의 본적격인 첫 발을 떼는 대사입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능동적으로 찾아나서는 강현 순사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사이기에 가장 인상 깊습니다.
・강민지 배우(함여운 役)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현실에서의 절박한 외침이.
‘피를 빼고 새로운 피로 채우자’는 실현 불가능한 표현으로 터져 나오는 것에서...가장 그녀다움이 느껴졌습니다.
・길윤이 배우(현성인 기자 役)
현성인의 기자로서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사인 것 같습니다.
・김태영 배우(피창수 役)
조국의 해방이라는 목표를 따라 인물을 관통하는 대사입니다. 한 개인과 집단(민족)의 중요성을 저울질하는 피창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하며 한편으론 불가피한 희생을 합리화하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매운 계절로 표현되는, 극 중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 끝나지 않는 탄식이기도 합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관점에 따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사입니다.
・신윤철 배우(이필 役)
극 중 이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사라 생각합니다.
・유일리 배우(조연출 役)
코타로의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대사,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조연출의 어리석음이 싫지 않기도 해서 가장 인상 깊습니다.
4. 관객친화적인 작품을 쓰고 연출하시는 성천모 연출님의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성천모 연출
극단 종로예술극장이 내년에 창단 10주년입니다. 저희 극단의 작품을 1년 동안 리프레쉬할 계획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관객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의 공연(너구리 캠핑장)을 신작으로 올리고 싶습니다.
강철무지개, 겨울의 한복판에서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는 <해방-리버레이숑>은 연장공연 기간 동안에는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5일간 공연을 만나 볼 수 있다. 인스타 라이브, 수요극장 등을 통해 관객과 지속적으로 가까이 교류하는 ‘종로예술극장’의 이야기는 어렵고 심오한 이야기조차 너무나 쉽고도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이상하고 신기한 작은 여행으로 ‘종로예술극장’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