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술에 취해 평상시의 가면과 갑옷들을 벗어던진 이들의 이야기 <다이나믹 영업3팀>이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자신들의 민낯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박장대소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옛 팀원이 차린 포차를 찾은 영업3팀 사람들.
비오는 밤 우산을 잃어버린 듯 무언가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고뇌.
하지만 비를 맞고서라도 다시 잠자리에 들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회사원들의 꿈같은 밤.
도망칠 수도 멈춰 설 수도 없는 그들의 시간처럼 밤은 짙어만 간다.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바에 의하면 중국인이 최초로 포도주를 담갔을지 모른다는 단서를 찾으며 현대과학이 밝혀낸 술의 기원은 약 9000년 전 처음 술을 만든 사람은 중국인이라 이야기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술의 신 바쿠스가 포도주를 빚어 전파한 것이 술의 기원이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대지의 신 오시리스가 아내 이시스의 도움을 받아 맥주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왕 시절에 의적이라는 사람이 곡류로 술을 빚어 왕에게 바쳤다는 전설이 있다.(신동아 “최초의 술, 중국에서 9000년 전 제조” 기사 참조)
흥취가 가득한 민족으로 손꼽히는 대한민국에서 술에 얽힌 비화들을 아마 대부분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가슴에 쌓인 울분들을 털어내기도 하고, 취하기 전에는 감히 꺼내보지 못한 깊은 속마음을 꺼내보기도 하고, 즐거운 사람과 그저 취함을 즐기기도 하고, 2019년의 마지막이 저물어가는 밤에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과 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술을 못 마시는 이도, 취한 적이 없을 정도로 주당인 이도 술의 향취와 흥을 즐겨보기 좋은 시간이다. 한번쯤은 이성을 뒤로 한 채, 감성에 취해 뇌를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과 도파민으로 가득 채워 보는 것도 조금은 힘든 삶을 매끄럽게 기름칠하는 것일 테다. 고주망태가 되더라도 주변에 울분과 고통을 폭력이란 방법으로 전달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나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술’은 충분히 우리에게 매끄러운 삶의 윤활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보게.
오늘은 술 한 잔 걸쳐야겠네.
하루살이 같은 우리네 인생이지만,
하루 살기도 나는 참 힘들었다네.
내 이야기 들어 주며 함께 해 주겠나.
이보게.
오늘은 얼큰히 취해야겠네.
바쁜 세상에 빠져 허우적대다
가까스로 땅을 밟고 서 있다네.
힘든 일에 취해 비틀거리기보다
낭만에 취해 이 땅 위에 서 있고 싶네.
내 속마음 들어 주며 함께 해 주겠나.
- 전승환 저 『나에게 고맙다』 -
- MINI INTERVIEW -
1. 자기들만의 고충을 안고 사는 오늘의 인간 군상들을 하나하나 얄밉게 느껴지는 부분 없이 그들만의 사정을 포근히 안아준다는 느낌이 참 인상적이었던 작품 <다이나믹 영업3팀>은 '술자리'를 빌어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었다 여깁니다. 그리고 '극발전소301'의 회식 장면들이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희곡을 쓸 와 희곡의 무대화 과정들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듣고 싶습니다.
・정민찬 연출
처음 희곡의 텍스트를 접했을 때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은 메시지는 '그래도 우리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간다.'였습니다. 누군가에겐 기쁨이고 누군가에겐 고통이며, 누군가에겐 고뇌의 긴 시간이었을 수 있는 오늘. 그 오늘을 살아가는 극 중 인물들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가 이번 작품 연출의 핵심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술집(포차)이라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압축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술 한 잔을 비우고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고 취해가는 사람들. 오늘도 다이나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대 적으로 연출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고요. 술집 테이블이 쓰러지고 정돈된 배치가 난잡해지고, 의자가 바닥에 나뒹굴며 기본 안주 뻥튀기가 온 사방에 퍼져있는 난장의 모습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구현할 것인가를 말이죠.
그 부분들은 배우 분들과 많은 논의를 함께 했습니다. 어떻게 안전하게 난장판을 만들어낼지 를요. 실제 연습과정에서 술잔이 사방으로 깨져서 연습이 중단되기도 하고, 다시 회의. 뻥튀기 양을 조절하느라 전 배우들과 스텝들이 각도와 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 부분들이 발전적이고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2. 각자 실제 주정을 부린 것만 같으면서도 귀여움이 가득했던 연기들에 정말 크게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 깊다 여기는 대사와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정민찬 연출
요즘 제가 가지는 술자리에서 실제로 많이 쓰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에 참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단 생각이 들어요. ‘한 잔 술로 달래는 인생들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에 말이죠.
・박복만 역 박복안 배우
2009년 초연 연습과정에서 나온 애드립이 무대에서 정말 대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술 취한 연기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제게 실마리를 풀어준 대사여서 애착이 갑니다.
・최미주 역 전은주 배우
오늘을 즐기며 재밌게 살았으면 하는 요즘, 저의 마음과 같기에 이 대사를 꼽아봅니다.
・권태호 역 권겸민 배우
이유는.. 음.. 모르겠어요.
・명인철 역 명인호 배우
만취 상태에서 우산 통을 끌어안고 외치는 대사로만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뒤쳐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네 젊은이들의 애잔한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명인철의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지 역 이현지 배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할 내일이 있기에...현재에 지친 나에게도, 그 어떤 누구에게도, 마법주문처럼 외어보는 한 마디. 연극인생에 '학생'을 제외한 '뚜렷한 직업' 을 가진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고작 6개월 계약직 알바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나 같은 '배우' 말고 '월급쟁이 직장인'의 고단한 삶을 살짝이나마 맛볼 수 있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만세!
3. 차기작들을 들려주세요.
정범철 작가님은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라는 신작으로 1월에 공연 예정에 있습니다.
저는(정민찬 연출) 이제 신입단원 워크숍 작품 구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극발전소301의 신입단원을 2020년에 선발하거든요. 앞으로 있을 신입단원과의 작품을 위해 열심히 보고 듣고 쓸 예정입니다. 20년 4월에 공연 예정이니 301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연극전’은 단막극의 압축미와 간결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분량 문제로 관객과 만나는 기회가 적은 만큼 단막극의 형태로 관객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고자 극발전소301에서 기획한 공연이다. 매년 두 작품씩 선정해 ‘짧은 연극전’이라는 명칭을 붙여 자제 제작해 극발전소301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으로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2015년에는 ‘자유와 환기’에 대한 메시지로 두 작품을 올렸고, 2016년에는 ‘사랑’을 주제로 두 작품이 공연되었다. 작년에는 대한민국 대표 극작가 이강백 작가와 선욱현 작가의 단막극으로 관객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