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비중이 큰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주인공이 과거 자신과 악연으로 엮인 3명의 인물을 찾아가는 이야기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가 지난 8일부터 오는 19일까지 대학로 동숭무대소극장에서 우리에게 역사 속 개인의 아픈 시간에 대해 함께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어느 날 새벽, 판식의 집. 5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명호가 찾아온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냐는 판식의 물음에 명호는 총을 쏴 세 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명호는 자신이 살해한 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호와 관계가 있던 세 사람, 그들은 명호와 어떤 일이 있었으며 명호는 왜 그들을 살해한 것일까. 도대체 명호는 총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 것일까.
자신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한 남자가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운 과거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이야기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정범철 연출은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에 대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잊을 수 없는 그 날은 어느덧 멀게 만 느껴지는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30년씩 연극을 해 온 40여명의 대학로 중견 배우들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작가, 연출가, 기획자가 참여하여 꾸준하게 사회문제를 고찰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공연을 위한 공연예술인 협동조합(지공연 협동조합)’의 세 번째 작품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는 차명호 역에 김윤태 배우와 이종승 배우가, 김판식 역에 문태수 배우와 공재민 배우가, 구동만 역에 손정욱 배우와 맹봉학 배우가, 노혜자 역에 박선옥 배우와 전서진 배우가, 심미화 역에 김미준 배우와 노윤정 배우가, 이지숙 역에 조주경 배우와 변윤정 배우가 참여하여 조합마다 다른 색깔의 연기를 노련하게 보여주고 있다.
-MINI INTERVIEW -
1. 작품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속 인물은 5.18광주 민주화항쟁이 트라우마의 기저로 작용하지만, 개인의 트라우마와 과거의 사과에 대한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총알의 개수를 세고야 말게 만드는 대사들과 결론의 내용은 작가이자 연출인 정범철 스러운 색깔이라 느껴졌습니다. 사과와 용서 그리고 상처와 치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무대화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정범철 연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5.18민주항쟁이 스토리의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개인의 트라우마에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거시적인 큰 사건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 개인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총알의 개수를 세도록 하는 것은 결국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의도입니다. 결국, 총알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허무하지요.
상처를 극복하고 사과를 받아내어도 결국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늦어버린 상황.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올 수 없고 내가 받은 상처는 결국 지워지지 않고 묻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허무함.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런 것이겠지요.
2. 대한민국에서 ‘정치범’, 정권교체에 따른 ‘특별사면’ 등 가해자에 대한 모호한 처벌은 5.18광주 민주화항쟁 이외에도 허다합니다. 또한 국정교과서의 시도는 다행히 불발되었지만 교육자, 사학자 및 언론에서의 위험스러운 수위의 발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느껴지는 작품 <너와의 불편한 사정거리>에서 5.18광주 민주화항쟁의 책임자 처벌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작품을 올리고 있을지 듣고 싶습니다.
・차명호 역 이종승 배우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과연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고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들의 행위와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화가 납니다. 피해자와 그에 관련된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고,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바라는데, 그렇게 실행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죽였던 죄인들이 처벌받고 속죄하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며 경호를 비롯하여 나라의 지원도 모두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명호 역 김윤태 배우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때 만행을 저질렀던 이들이 골프를 치며 웃고 떠들며 너무나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아픈 역사이고 슬픈 현실입니다. 조속한 처벌이 이뤄지길 이 나라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바랍니다.
・노혜자 역 전서진 배우
지난해 9월 일본군 위안부를 성매매에 비유하고 항의하는 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연세대 류*춘 사회학 교수가 연극 속 배역인 노혜자와 많이 닮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강의 도중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정말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제발 역사에 바른 판단을 하고, 잘못에 대해 사죄하고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종국에는 용서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세상이 오길 꿈꿉니다.
・심미화 역 노윤정 배우
5.18광주민주화항쟁을 비롯해서,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짓밟고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비극은, 그 더러운 권력과 부를 세습한 후손들이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능력인 양 이 사회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떵떵거리는 현실이 주는 박탈감을 많은 이들이 받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현재의 젊은이들은 가치관을 상실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죄인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김판식 역 공재민 배우
아직도 명확하거나 제대로 된 사과도 없는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누구 말대로 ‘자괴감’이 듭니다.
・구동만 역 맹봉학 배우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를 하고 화해를 외칩니다.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득권 세력들이 부정으로 나눠 가진 권력 그리고 5.18광주민주화항쟁의 책임자와 발포 명령자들을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들의 재산은 국가가 몰수해야만 합니다. 사회의 바른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면이 없는 종신형에 처해야 합니다.
・이지숙 역 변윤정 배우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반성 없이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 하며 오히려 자부심까지 가지는 행태를 보면 정말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극 중 노혜자 국사선생님처럼 그렇게 (국가의 거짓선전에) 세뇌를 당한 것 같아 답답하면서도 아픕니다. 계급을 유지하려는 자와 나라의 아픔을 걱정하는 자, 이렇게 두 개의 섞일 수 없는 층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
민초의 의병들이 온갖 왜란을 이겨온 것처럼 지금도 의병들이 나라는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한 세대가 더 지나면 나아지겠지, 내 자식들은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겠지’라는 희망을 가지며 지금부터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목소리를 보태고 있습니다.
3. 촌철살인이란 성어가 느껴지던 작품 <너와의 불편한 사정거리>에서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다 여기는 대사와 그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차명호 역 이종승 배우
명호가 겪은 일들이 특별한 게 아니라고, 그 세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일을 당하고도 당연시되었던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준 그 세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누가 알아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감사해하는 후배 그리고 후대들이 있습니다.
・차명호 역 김윤태 배우
자신의 삶과 태어남에 대한 근원까지도 부정하려는 명호...과연 이것들이 명호 개인의 잘못일까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입니다.
・노혜자 역 전서진 배우
틀에 갇혀 바라보는 세상은 한정된 사고와 선입견을 줄 것입니다. 노혜자 역 역시 그렇고 일상의 나의 모습 어딘가 에도 묻어날 수 있기에...오늘도 벗어나길 애씁니다.
・심미화 역 노윤정 배우
부모를 부정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김판식 역 공재민 배우
제가 차명호 역 배우에게 듣는 대사이지만, 사실 제가 누군가들에게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이지숙 역 변윤정 배우
이번 작품을 보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모든 인물들이...
전 극 중에서 제가 이 말을 하고 있지만...
4. 차기작들을 들려주세요.
・이종승 배우
당장 차기작이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초청이나 앵콜 공연으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극단 경험과 상상의 1년 공연 레퍼토리가 나오면 당산에 있는 극장에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서진 배우
김광탁 작가의 “황소 지붕위로 올리기”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노윤정 배우
6월 송희연 작/연출 작품 “LOVE”에, 12월에 또 다시 송희연 작/연출 작품 “아침에”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공재민 배우
국정농단의 주범을 다른 일종의 코믹극, 2인극 “원티드 우춘근”에 출연합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존재하듯이 우리네 인생 또한 무수한 인과관계로 얽혀있다.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의해 선택된 결정은 하나의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한번 꼬이기 시작한 인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장을 일으키다 말미에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종착지에 이르기도 한다. 그제야 후회하면 이미 늦을지도 모른다.(정범철 연출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