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시적인 느낌의 유약으로 소박한 디테일을 불어넣는데 재능이 있는 작가’ 줄리아 조의 사막 3부작 중 완결편, 국내초연작 <듀랑고(Durango)>가 지난 9일부터 19일까지 대학로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던 작품 “가지”의 정승현 연출과 만나 사회적 이슈 보다는 소소하고 일반적인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지쳐있는 많은 관객들에게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 주에 살고 있는 어느 한국계 가족. 겉으로 보기엔 서로 사랑하는 따뜻한 가족이지만 각자 큰 비밀을 숨기고 있다. 10여 년 전 아내를 떠나보내고 두 아들을 길러 온 한국계 이민자 아버지 이부승. 의대 진학을 준비하지만, 음악을 더 좋아하는 첫째 아들 아이삭 리. 슈퍼 히어로 만화를 그리는 전국 수영 챔피언 둘째 아들 지미 리.
어느 날, 아들들을 위해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부승이 은퇴를 4년 앞두고 정리 해고된다. 모든 게 막막하기만 한 부승은 아들들에게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한다. 목적지는 콜로라도의 듀랑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들들에게는 비밀이 있었고, 가족 관계를 지탱해 줬던 아내는 이제없다. 부승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모른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낯선 지명 "듀랑고"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미국차 특유의 직선적인 디자인과 오프로더다운 높은 지상고가 특징인 SUV차량을 떠올릴 것이다.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의 4개 주가 만나는 '포 코너스(Four Corners)' 지역에 위치한 듀랑고(Durango)에서는 지금은 역사 속에나 영화 속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증기기관차를 직접 타고 과거 서부 시대에 지어진 듯한 건축물들과 아찔한 절경들을 만나 볼 수 있다.
2017년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 평가받았던 '가지'의 작가 줄리아 조(Juliac Cho)는 재미교포 2세대 작가로 애리조나 사막을 가로질러 듀랑고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삼부자의 이야기 "듀랑고(Durango, 2006)"는 "상실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Loss, 2004), "BFE(2005)"와 함께 사막 3부작(Desert Trilogy)으로 불리운다.
고독과 죽음을 의미하는 버려진 땅이라고도 생각되는 사막을, 작가는 위험하면서 아름답고 또한 매우 고립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왔다. 낯설고 황량한 사막을 마주하는 인간들은 인생무상과 고독함을 느끼지만, 그 속에서 집착을 버리고 또 다른 생각을 열 수 있게 만든다. 자연의 거대함 속에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삼부자는 각자 스스로에 갇혀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한 각자의 방법으로 '가족'을 아끼고 사랑한다. 둘째아들의 상상 속 등장하는 인물과 아버지의 기억 속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들의 가슴 속에 숨겨 있던 비밀의 문을 열게 만든다.
어쩌면 서로의 비밀을 드러내고 나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각자의 아픔을 숨긴 채 함께 <듀랑고>로 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여정은 어쩌면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 줄지 모른다.
최근 사회적 메시지와 이슈를 이야기하는 많은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 <듀랑고>에서는 커다란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없이 이미 결정된 존재, 가족에 대해 서로가 힘이 되는 존재이자 짐이 되어버린 존재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이야기한다. 함께 있지만 고독한 현대의 인간관계 속에서 ‘가족’을 다시 돌아보는 이 연극은 소소한 감동을 전하며 일상 속에 잔잔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