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일상적 제스처를 기호화된 움직임으로 인물들의 병증과 불안한 심리상태를 통해 어쩔 수 없는 교착상태와 시간의 엄혹함을 표현한 연극 <터널구간>이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선정작품으로 선정되어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객들에게 개개인의 불안과 혼돈, 그 정체를 목격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선사하였다.
부(富)의 축적을 목표로만 살아온 장씨와 그의 가족. 장씨의 칠순을 맞아, 부(父), 모(母), 노여사(점쟁이)는 성공적으로 축적된 가족의 부를 열정적으로 자랑한다. 마흔 가까이 아직 미혼인 딸과 아들을 위해 장씨는 오늘 야심찬 기획을 준비한다. ‘아비가 아들을 위해 준비한 여자’. 오늘 그녀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올 것이다! 딸과 아들은 폭력적이기까지 한 부모의 욕망을 증오하면서도, 감히 거부하지도 못하고 알 수 없는 공포만 느낀다. 이때 벨이 울리고 한 검사가 찾아오는데...
연극 ‘그림자아이’를 통해, 아이를 낳지 못한 한 가족의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냈던 이상례 작가의 신작으로, 자본의 논리가 삶의 사명이 된 한 가족의 시간의 초상을 통해, 지금 우리 삶에 깊숙이 박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물욕과 그로 인한 불안의 정체를 목격한다. 그리고 실험적 구성을 통해 최대한의 예술적 조화를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극단 그룹動・시대의 오유경 연출은 작품마다 그 주제가 담기기 가장 적절한 공연양식들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실현해왔다. 이러한 사실주의 배경의 이야기에 초현실적인 형식의 연출과 배경들을 덧입혀 색다른 표현을 만들어냈다.
독특한 제목 <터널구간>은 이상례 작가의 일화에서 탄생되었다. 터널 안 큰 교통사고가 난 버스 안, 아수라장이 된 그 상황에서도 재산문제에 대한 전화 통화를 멈추지 않던 한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한 가족이 자본의 논리에 지배를 받으면 함정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질 못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욕망과 결별할 수 없다’는 욕망의 자화상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리고 장씨 같은 부모 세대가 아닌 ‘부’의 혜택을 받았던 ‘원래’, ‘미녀’와 같은 자녀세대에 포인트를 맞춰, 그 ‘부’로 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착상태를 무대화했다. 간결한 무대에 소품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샹들리에가 몇 개의 장식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뿐이다. 그리고 광대를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런 표정과 마리오네트마냥 한데 뭉쳐 움직이는 등의 독특하게 기호화시킨 움직임들은 영상과 음악을 통해 모호함에서 벗어나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껍데기 증후군’과 ‘건조인간’, 극 중 가족의 병명을 나타내는 위 두 단어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진단하는 이유이다. 작품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장용철 배우는 소외와 고립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우리의 정신적 외상은 끊임없이 가지를 치지만, 그 이유가 수만 가지기에 해결과 치유의 방법은 묘연하다. 그래서 많이들 체념하고 병증에 적응하는 걸 택하는 편이 쉽다‘라며 진정한 관계와 자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부가 가져온 병폐에 대해 작품에 훌륭하게 풀어내었다.
흄(David Hume)은 “이성은 욕망의 노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이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욕망중추가 다이기에, 이성의 역할은 제한적이라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사회가 공정이나 희생, 배려 같은 최소한의 인간적 도덕적 가치들을 손쉽게 버려도 된다 여기게 되고, 버리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지 않게 된 것 또한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조차 이성이라는 가면의 뒤에 숨어 어느새 당연시하기 때문일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