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연극은 상업적인 공연에서는 잘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나 너무 사소해서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을 자유로이 이야기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열어 주는 예술 장르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오롯이 배역의 인생을 살아내고, 그 인생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축복이기도 어쩌면 고행일지 모를 수많은 인생의 살아냄은, 희로애락을 넘어 인생철학이 한껏 버무려진 치유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직접 이야기하거나 행동하지 않아도,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무대 위 공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취미가 활성화된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몰입을 만들어 내는 취미활동을 함으로써 삶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혼자 독서를 하거나 영화 또는 공연을 볼지라도 그 책이나 영화, 공연이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사람 역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고립적이고 개인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이렇게 취미는 개인적인 행위이자 사회적인 행위이다.(“취미와 예술” 발췌)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나드 쇼가 연극과 뮤지컬 공연을 통해 2차 세계 대전에 지친 영국 국민에게 희망을 준 것처럼, 코로나가 만연하며 힘든 이 시기에 무대 위 펼쳐지는 여러 이야기들은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힘든 시간 속에서도, 인간의 삶에 대한 강인한 집념과 끈질긴 도전 의지를 그리며, 사람들은 공포와 연민의 정서를 느끼며 감정과 정서를 정화할 수 있는 작품 <만선>의 공연을 준비 중인 50년 지기 친구, 연기 외길 인생을 함께 걸어 온 순수한 영혼을 지니신 천상배우 정상철 선생님과 김재건 선생님을 함께 만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눠보았다.
두 분 선생님의 인연은 72년 국립극단 연기양성소5기로 들어가신 후, 73년 단원으로 함께 시작하며 50년 가까이 친구의 인연을 이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선생님의 첫 만남 그리고 서로를 보셨을 때 첫 인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김재건 선생님 ; 난 서울예대를 나왔는데 대학교 연극반은 이전까지 연기를 못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동국대학교 학교 연극 ‘흥보전’에서 정상철 배우를 처음 보았다. 창, 악극 비슷하게 하는데 놀부 역으로 인상도 좋았다. 그리고 극단에서 처음 봤을 때 결은 다르지만 라이벌이란 의식을 가지며 호감이 갔다.
- 정상철 선생님 ; 72년 2월 말 오디션을 보고 22~23명의 단원들이 3월부터 연기양성소를 들어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김재건 배우는 단연 눈에 띄었다. 아주 착하고 순해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명동 국립극단 시절, 우리가 끝나면 서로 담배를 하나씩 권하며 함께 한 개비씩 태우면서, 그때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반말과 존칭의 어중간하게 대화를 시작하면서 우연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업(오전 이론, 오후 대본 수업) 때 대본 리딩하는 모습을 봤을 때 이 친구 정말 잘한다고 느꼈다. 볼 줄 아는 거지.
두 분의 긴 인연 속에서 함께 한 첫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작품이었을지 궁금합니다.
- 정상철 선생님 ; 연구생으로 들어갔을 때 국립극단 무대에 처음 선 작품이 “포로들(이재현 작, 1972)”이다. 우리들은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감 된 포로들로 출연했다. 우리가 했던 건 대사가 거의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역할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하다 보면 대사가 없더라도 리액션을 적극적으로 하거나 영혼 없이 하는 쪽이 있는데, 우린 적극적으로 하는 쪽이다 보니 함께 친밀감을 더 느꼈다.
- 김재건 선생님 ; 우리가 함께 역할로 깊게 만난 인연은 “소(유치진 작, 장민호 연출. 1991)이다. 결이 다르니까 다른 패턴의 배역을 맡고 있는데, 형과 아우로 만난 것은 그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딱 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외형이 극 중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처럼 가기 힘들고, 외모나 톤이 반대로 간다. 외모가 김재건 배우가 주인공 역할을 했다면, 나는 중후한 역할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 때는 우리가 무대에서 많이 부딪힐 일이 없었다.
- 정상철 선생님 ; “초립동(한로단 작, 임영웅 연출, 1977)”의 대본을 읽으면서, 나는 간신1,2,3 배역이 김재건 배우가 할 것이고, 장군 배역을 내가 할 것이라 자신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임영웅 연출님이 배역 발표를 하시는데, 화랑 관창 ‘초립동’ 주인공 역할은 김재건 배우가 하고, 내가 간신의 역할을 맡았다. 그 때 우리끼리 참 많이 웃기도 했었다.
긴 시간 동안 두 분 선생님은 수많은 배역을 연기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국립극단 70주년 작품으로 다시 올라가는 작품 “만선”은, 요즘 세대들은 천승세 작가보다 김원 작가의 작품에 더 익숙한 분들이 많기에 더 반가운 공연 소식이기도 합니다. 극 중에서 정상철 선생님은 자기 이익을 한껏 챙기려는 선주 임제순 역을, 김재건 선생님은 역시나 기득권에 들어갔던 주막 주인 범쇠 역을 맡으셨습니다. 역할이란 것에서 좋거나 나쁜 역할을 구분할 순 없지만, 사건이나 사고의 중추에서 악한 역할의 존재는 필요한 것이라 여기는 부분에서, 두 분이 생각하는 ‘악역’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 정상철 선생님 ; 난 사실 아까 이야기했던 “초립동”에서 잠깐 나오는 간신 역할 빼고는 악역을 많이 해보진 않았다. 몇 개 한 기억이야 있는데, 사실 악역이나 좋은 역할이든 주인공이든지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이번 “만선”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악역이긴 하지만, 자기도 살기 위해 악인을 택한 것이라 여긴다. 또한 그래서 관객들이 내 역할을 보았을 때 밉게, 아주 얄밉게 보았으면 좋겠다. 악인이라 해서 아주 악한 사람이기보다는 얌체 같고 자기만 생각해서 아주 얄밉게 보이는 사람으로 연기를 하려 생각 중이다. 잘될는지는 모르겠지만.
- 김재건 선생님 ; 난 무슨 역할을 하든지 간에 ‘관객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모토가 있다. 그래서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 싶다. 이번 작품에서 내가 맡은 역할도 선하거나 좋은 역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순수하디 순수한 순수성을 가지고 싶다. 어쩌면 작가가 썼을 때 주막의 주인은 내가 돈이 있다고 그걸 뽐내면서 그 젊은 친구(극 중 슬슬이)를 말도 안 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려 하는 속에서, 난 그래도 그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깊은 속에 순정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관객이 봤을 때 내 역이 참 못됐지만 그래도 애처로운 부분도 있다고, 동정심을 일으키게 하고 싶다는 그런 쪽으로 방향성을 잡고 있다. ‘너무 그런 쪽이더라도, 사실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내 역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드리브를 하고 싶지만, 연출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역할에 대한 이야기 중 애드리브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셨습니다.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애드리브란 것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무대 위 애드리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정상철 선생님 ; 애드리브 또한 연기의 한 부분이다. 애드리브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을 꿰어 차고 있는 것이다.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애드리브가 될 수가 없다. 사실 애드리브란 것은 내가 이런 애드리브를 해야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상대역과 맞아 들어갔을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나 행동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만약 연출이라면 배우들이 애드리브 하는 부분에 대해서 간섭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 작품을 이해하고 있고, 뭔가 몰입되어 있다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재건 선생님 ; 작가가 작품을 쓸 때는 몰랐지만 무대 위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해보면서 느끼는 것이 애드리브다. 그런데 어떤 배우는 그 작품에 맞지 않는데도 일부러 웃기기 위해 애드리브를 하는데 이것은 나쁜 것이다. 정말 배우가 연기하면서 느끼는 부분에 대한 표현은 작가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애드리브는 참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만연한 요즘, 작품 “만선”의 연습 뿐 아니라 무대에 올라가는 과정 하나하나는 선생님들의 나이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분 모두 적지 않은 연세에서 공연의 준비와 진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오랜 기간 연극계를 지켜온 선배로서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무대 위에서 젊은 열정과 에너지, 깊고 넓은 발성까지 여전하게 보여주시는 비결도 궁금합니다.
- 정상철 선생님 ; 내가 배우라는 것만을 놓고 생각했을 때, 관여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우의 숙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공연을 하는 중에 상을 당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연 중에는 알려줄 수가 없고 나중에 알렸을 때 보통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온 관객과의 약속을 위해 대부분 공연을 끝까지 마치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우리가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을 위해 공연을 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는 결정권자의 의견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 김재건 선생님 ; 정상철 배우의 생각과 정말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40분간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루에 만보씩 걷고 있다. 소리 같은 경우, 우리는 국립극장에 있을 때부터 연습 시간 1~2시간 전부터 와서 소리를 키웠다. 국립극장은 대극장에서도 마이크를 안 썼기 때문에, 관객석 끝까지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대사를 전달해야 했다.
하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임영웅 선생님께 리포트를 잘못 써서 배역을 못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가무단 작품에서 다른 단원들은 대사가 한마디씩이라도 있는데, 나는 소대(가림막 뒤 무대 양끝 대기공간)에서 크게 외치는 한 마디만 받았다.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미친놈처럼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던 중에, 어느 날 내가 낸 소리를 듣고 연출님께서 저 소리 누구냐고 찾은 적이 있었다. (정상철 선생님) 그 뒤로 재건 배우에게 좋은 배역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예쁘게 보셔서.
- 정상철 선생님 ; 장충동 국립극단의 조건이 우리는 소리를 질러야만 했었다. 다정하게 하는 이야기나, 속삭이는 이야기더라도 객석 끝에 있는 관객분도 들으셔야 하니깐, 우리는 소리를 크게 낼 수밖에 없었다. 단지 소리에 호흡을 넣어서 관객에게 가까이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줄 뿐이지, 소리를 질러야만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성연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서 소리를 밀어내야 한다. 요즘에는 그런 소리하면 오히려 혼난다. 예전 장민호 선생님이 긴 대사를 하실 때 보면 무대에 무지개가 생겼던 걸 생각하면 된다.
체력관리 부분은 난 오래 전부터 진돗개를 키웠다. 혜화동에 살 때 아침에 성문을 끼고 1시간 정도 걷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술을 먹고도 1시간 정도 개와 함께 걸으며 건강을 지켰다. 15년 정도 개와 함께 산책을 해 왔는데, 작년에 그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후부터는 혼자 1시간 정도 높이는 못가도 새벽마다 산에 매일 간다. 이제 습관이 돼서 안 하면 이상할 지경이다. (김재건 선생님) 진돗개가 건강을 지켜준거다.
요즘 공연계는 지원금 관련 비용의 비효율적인 분배의 문제와 함께 이미지 위주로 현란함이 가득한 공연의 범람 등 많은 분들이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공연계를 든든하게 지켜온 선배로서 그리고 연기를 오래 하고 있는 배우로서 연극의 메카로 불리고 있는 대학로의 공연들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정상철 선생님 ; 대학로 연극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 그게 사실 말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연극은 말 그대로 종합예술이다. 예를 들면 연출가와 배우와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제작자, 기획 홍보 등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해야 한다. 그 전체적인 모든 것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아니고, 연극인들이 잘못해서 바꾸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중 가장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예를 들면 연극풍토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극하는 분들이 적어도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좀 어렵더라도 연극에 전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연 어떻게 바꾸어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한 번씩 꺼내는 말처럼 한 사람당 100만원씩 주는 것이 근시일 내 가능할까?
또 하나 가장 고쳤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은 연극영화과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1년에 그 친구들이 수천 명씩 졸업해서 대학로 연극 쪽으로 나온다는데, 대학로에서 하루에 170여개 극단이 공연한다 치면 공연 당 5~6명씩 나온다 해도 대략 1,000명 정도만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런데 졸업생들이 3,000명이 나온다 볼 때 나머지 3분의 2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다. 그렇게 새롭게 연극계로 들어오려는 친구들에게 연극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좀 많아져야 하는데, 과연 그런 기회는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지가 문제이다. 이런 기회가 너무나 없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일단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연극을 하다 보면, 좋은 연극이 나오기 일단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금 경험이 많은 배우, 연출 등 좋은 선배 밑에서 공연을 하며 질책이나 칭찬을 들으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 중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그런 기회 자체가 너무나 적다. 그냥 국가에서 돈 몇 푼 주는 그런 지원 말고 연극적 풍토가 바뀌는 중요한 것을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세세한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같은 경우 1972년에 국립극단 연구생으로 들어갔을 때 장민호 선생님이나 백성희 선생님 그리고 그 위에 변기종 선생님(신파연극시대 1세대 배우) 같은 엄청난 선배님들이 계시는 중에 그 분들이 일일이 지적해 주지 않아도 그 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라는 사소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을 깨달아 왔다. 서양에서 말하는 ‘창조는 모방이다’처럼 연기도 모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연기를 배우는 것은 선배 분들이나 좋은 연기를 하시는 분들의 연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분들의 연기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연기를 찾아가게 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너무 행복한 젊은 시절을 보내서 요즘의 친구들이 너무나 더 안타까워 보인다.
- 김재건 선생님 ; 나는 일단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도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줬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베푼다 이야기하며, 오히려 점점 규모가 축소되어 가고 있는 것부터 역효과가 되고 있다. 여럿에게 많이 베푸는 것도 좋겠지만, 연극제 등을 오랜 기간 준비하는 배우들이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펼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국립극단도 공연을 많이 해야 하기는 하는데, 내 생각에는 한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의 개런티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주면 좋겠다. 그런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는 게 내 바람이다. 그래서 대학로 배우들이 국립극단에 출연하고 싶다는 열망도 일으켜야 할 터인데, 오히려 국립극단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오랜 연습기간 때문에 빚만 더 지고 있는 상황이다.
- 정상철 선생님 ; 우리가 국립극단 연구생으로 시작해서 단원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이 받지 못했던) 그런 혜택을 받아왔다. 내가 30년을 있었고, 김재건 배우가 38년을 있었다. 난 지금도 국립극단에 전속배우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1950년 국립극단이 처음 생길 때, 중앙인 서울에 하나 두고 대구, 부산, 광주 등 지역에 국립극장을 주기로 한 게 대통령령에 있었는데, 6・25전쟁이나 여러 경제사정으로 일단 서울에 국립극단을 두고 그 밑에 전속단체를 두며 시작이 되었다. 제일 먼저 국립극단 그리고 무용단 등이 들어갔다. 국립극단이 국립극단 창설공연을 1950년 4월 말일에 올리면서 그 때부터 전속단원이 쭉 있었다. 그리고 여러 속사정으로 인해 지금의 시즌단원제로 오게 되었다. 국가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극장을 국립극단이나 서울시 뿐 아니라 좀 더 만들고, 진짜 열심히 하고 가능성이 있는 배우들을 먹고 사는데 걱정하지 않고 공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그런 풍토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연극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립극단에 전속단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 명예단원의 경우는 우리가 국립극단에 있을 때부터 있었다. 국립극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하다 텔레비전이나 다른 부분이 바빠져서 외부로 나갔던 분들, 한 두 번 참여했지만 작품의 가치를 대단히 높여주었다 생각되는 분들을 국립극장에서 모실 것을 말씀드리고 그 분들이 수락하면 명예단원으로 모시고 있었다. 외부 출연자가 필요한 경우, 그 분들을 모셔서 한 경우들도 있었다. 지금도 좋은 연기력을 가진 분들이 항상은 아니더라도 한 두 번씩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로연극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연극제인 “늘푸른연극제”가 언젠가부터 사실상 연극인들만의 축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원로연극인들은 대부분의 연극인들에게 대선배의 의미 이상이기에 연극제에 대한 문제제기란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두 분 선생님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더욱 들어보고 싶습니다.
- 정상철 선생님 ; 사실 저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늘푸른연극제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나도 3년을 연속으로 참여했는데, 주인공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고 도와주는 입장에서 참여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암기를 다 했는데도, 대사가 잘 생각이 안 나서 애를 먹은 경우도 있다. 늘푸른연극제가 작년 즈음에는 신청을 받아서 연극제를 진행했다. 본인들이 본인을 가장 잘 알 것이기에, 본인들이 먼저 거절을 해야 한다. 도와주는 식으로 참여를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평생 한 번 하는 것인데 정말 공연을 결정하기 전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김재건 선생님 ; 꼭 모두 주인공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주인공은 젊고 잘 하는 배우들이 하고, 그 분들은 무대에 서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 작은 역이라도 멋있게 해 주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낫다. 그 나이 되면 대사 외우는 것도 힘들고 외웠더라도 금방 까먹는다. 내가 알기로 아주 천재 아닌 이상은. 그런 실수가 몇 년 사이 계속 와 있다. 관객들이 보면 더 잘 안다. 그래서 일반관객들이 거의 없는 이런 상황까지 왔다. 늘푸른 배우들은 적당하면서도 품위 있는 배역을 하면 부담이 없고 멋있게 남을 것이다.
- 정상철 선생님 ; 국립극단에서도 단장들은 항상 바쁘기에 작품에 출연을 해야 할 경우, 마지막 즈음에 나와서 존재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본을 읽다가 이거 단장님 역할이다 하는 그런 역할이 있었다. 작게 나오지만 임팩트 있는 역할들. 그런 역할로 나와서 박수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지 않나 싶다.
- 김재건 선생님 ; 배우한테는 무대에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인생이 있다. 옛날 자신들이 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거창하게 보여주려 하는 것보다 그런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면 한다.
- 정상철 선생님 ; 故 김동원 선생님이 맡은 역할이 대사 한마디 없이 시장에 와서 국밥 한 그릇 맛있게 먹고 퇴장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 장면밖에 안 보이고 최고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존재감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관객들이 왜 그렇게 기억을 하는지에 대해 연구를 해 봤다. 선생님은 단지 국밥 한 그릇 먹고 가는데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세히 연기플랜을 짜서 다 느끼면서 하는 거다. 그것이 ‘진짜’로 보이는 거다. 배역이 커야만 반드시 좋은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역일수록 기억에 남는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난 더 기분이 좋다.
- 김재건 선생님 ; 주인공은 행동이나 표정 하나까지 대본에 쓰여 있다. 그런데 작은 배역은 세세히 쓰여 있지 않기에, 작가도 생각 못하는 것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 꼭 관객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입장에서는 그 인물을 연구할 수 있는 범위가 오히려 넓어진다. 나 같은 경우도 주인공을 맡았을 때보다 작은 역을 맡았을 때가 더 기분이 좋고 신이 난다. 요즘 주인공을 맡으면 대사를 외우는 것 뿐 아니라 모든 것들이 부담이 크다.
아동/청소년극 발전 양적 성장 중에서 질적 발전 유도를 위해 국립극단 부설로 국립 아동/청소년극 연구소 설립과 함께 예전과 다르게 아동과 청소년이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어릴 때 가치관도 정립되기 이전에 가장 먼저 만나는 공연이, 세세한 배려와 철학을 담기보다는 상업성만을 우선시한 듯 보이는 공연, 특히 뮤지컬 쪽에서 그러한 경향이 너무나 심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젊은 친구들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기도 한 아동/청소년극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선생님들의 고민이 듣고 싶습니다.
- 김재건 선생님 ; 어린이 뮤지컬의 배역은 다 젊은 친구들이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연극일수록 그 나이에 정말 맞는 배우들이 투입되어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비로소 산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상업성이 너무나 많이 가미된 어린이 뮤지컬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 정상철 선생님 ; 우리나라에 뮤지컬이 정착한 것은 극단 현대극장 김의경 연출가의 공로가 크다. 그리고 부인 최문경 연출이 초반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어린이 뮤지컬을 하는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생각이 내가 보기엔 염불보다 잿밥에 많이 가 있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본 아이들이 커 가는데 감성을 많이 쌓게끔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형식으로 재미만을 추구해서 관객을 모으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논현동 어린이뮤지컬 전용극장 등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제작하는 분들이 정말 우리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좀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 정상철 선생님 ; 배우니까, 배우는 무대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나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1~2번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할 때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연기력이 더 좋다. 우리 때는 항상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시대라 표현력이 부족했고, 남 앞에 나서는 데 두려움이 있었는데 요즘 친구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뚜렷하게 하고, 그런 부분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참 잘한다. 가끔 그런 잘 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하면 젊어진다는 느낌도 들고, 저런 면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마추어 연극을 하시는 분들과 10년 넘게 시민극장을 하고 있는데, 그 분들과 계속해서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 김재건 선생님 ; 건강하게 연극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밖에 없다. 배우는 누구보다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국립극단 창단 70주년을 맞이하며 4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기념공연 “만선”을 공연한다.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 공모 당선작으로 같은 해 7월 초연된 “만선”은 작은 섬마을에서 살아가는 곰치 일가의 이야기를 통해 1960년대 당시 한국 서민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초연 이후 제 1회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현 백상예술상)에서 천승세 작가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크게 사랑받았다. 치밀하게 의도된 지극히 연극적인 희곡을 쓰고 있는 작가 윤미현이 윤색을 맡고, 깊이 있는 작품해석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연출가 심재찬이 연출을 맡아, 과거 국립극단 단원이었던 원로 배우, 현 국립극단 시즌단원, 한국 연극을 함께 해온 객원배우들이 앙상블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은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문화는 창의력의 근원으로 창의적인 경제사회를 일으키는 효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코로나로 인한 공연의 취소나 연기의 무게를 온전히 예술가 개개인에게 전가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하면서도 한껏 무너지기 쉬운 예술계의 핵심동력을 지켜야만 한다. 한 예로 영국처럼 국공립 지원사업의 일부가 수익을 잃은 예술가와 프리랜서들을 돕기 위한 기금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힘들어진 시점에서 나라에서 무조건 예술가들을 도와야 한다는 프레임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