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정신적 불안들의 목소리가 아직은 크지는 느껴진다. 하지만 신종 인플루엔자 이후 11년 만에 세계적으로 팬데믹을 선언하게 만든 COVID-19는 사회 전반과 기본적인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조금 잠잠해진 이 시기에도 안심하기는 시기상조일는지 모른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에 대해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임상시험이 100건 이상 보고되고 있다. 2020년부터 바이오기업들의 임상 1상은 시작되었고, 4월까지 WHO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임상 1상에 들어간 백신은 5가지이며, 약물재창출 관점에서 유망한 치료제에 대해 글로벌 임상 3상(‘solidarity’라 명명)까지 들어간 기존 치료제는 4가지이다.(한국생명공학연구원 자료 발췌)
피해자가 0명이 될 때가 비로소 펜데믹이 종식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종식의 시기에 대해서 아직 미지수인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1인 가구의 고립 뿐 아니라 많은 가족 간의 갈등을 야기했다. 개개인의 불안도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 간이더라도 아니 오히려 가족이기에 본인의 불안을 떠넘기려는 대화는 훨씬 위험하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과민해질 때 심호흡 한 번이면 충분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대화하는 것은 상대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스트레스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물에 내재된 복잡한 감정선을 몸짓으로 표현하며 얽히고설킨 감정과 갈등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한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얘기 좀 할까?”는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호흡으로 우리 시대의 소통의 부재 문제를 보여주었다. 작품을 작/연출한 민준호 연출은 “우리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반대로 우리들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공연을 본 후 이렇게 살자가 아닌 이렇게 살지 않도록 모두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하였다.
가깝다 여기기에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략되는 말들,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전달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 그리고 살아온 궤도가 달라지며 생기는 거리감, 본인도 인지 못하는 심경의 변화를 몇 개의 단어들이 얽힌 몇 개의 문장으로 온전히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을 쉬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말줄임표와 단어 선택의 고민들 속 숨겨진 감정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어렵기만 한 일일까?
현대 여성들의 속마음을 그리스 신화 속 여신들의 모습에 빗대어 보여준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창작집단LAS의 감각적이고 젊은 표현력으로 거침없는 대화들을 선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정답과 해답은 없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들은 내면의 깊숙이 숨겨져 있던,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정체성의 탄생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상대의 관념과 행동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충고마냥 던지지만, 상대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여자들의 대화들로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편견과 차별의 문제가 ‘여자’만의 문제일 수는 없기에 지금 우리 현재의 이야기와 생각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깊고 넓게 펼쳐진 많은 대화들은 세상에 부지불식간에 닫아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이해’라는 감정을 세상 밖으로 내놓게 만들었다.
늘어나는 피해자만큼 ‘코로나 블루’를 앓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치료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 중인 의료진, 질병관리본부, 119 대원 등을 비롯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이 사태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 등 너무도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위로가 필요한 때다 .이 시기가 초래하는 모든 심리적 부채를 예상하며,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라도 위로와 감사 그리고 동지의식을 담아 전하고, 서로를 감싸 안았으면 한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아마도 서로의 상처를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코로나19과학 리포트_Vol.11]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로나블루’ 발췌)
자신과의 정원을 가꾸는 것, 타자와의 관계의 정원을 가꾸는 것은 '고독의 공간'을 용기 있게 지켜내고 대면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한나 아렌트가 비판적 사유는 '고독(solitude)'의 자리에서만이 가능하다고 한 말은 이 '고립의 시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독의 공간'에 있지 못하는 사람은 타자와 진정으로 '함께' 있을 수 없다.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알림'을 보냄으로서 SNS와 밀착되어 살라고 강요하고, 코로나 19와 같은 다양한 위기들이 우리에게 '불안'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고립의 공간'이 아닌 '고독의 공간'을 지켜내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강남순 TCU 교수 facebook "고독과 고립의 경계에서" 발췌)
우리 모두가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전달함에 있어 이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이 뜻밖의 불행의 시간들은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와 방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고민하고 만들어 내기 위한 새로운 대화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