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고전을 지금 우리네 삶으로 가져와 재해석한 작품들은 고전을 진부하거나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들에게 새로이 흥미를 자극할 수도 있지만, 원작의 행간을 훼손하지 않고 해석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원작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들을 만족시키는 것 또한 어렵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현대의 시간으로 시간과 공간만을 옮겨온 것이 아니라, 원작의 깊은 에너지를 시간의 흐름에 맞춰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두 작품, “리어 외전”과 “조치원 해문이”는 원작에 담긴 소중한 가치들을 우리 앞에 생생한 숨소리를 들리게 만들며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줌은 놀라울 따름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비극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리어왕’의 ‘리어’에게 고선웅 식 위트와 재해석으로 주체성을 부여해 준 “리어외전”과 또 다른 비극적 작품 “햄릿”에서 ‘햄릿’을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농촌총각으로 묘사하며 구수한 햄릿을 만나게 해 준 “조치원 해문이”는 관객들에게 같은 듯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현명해진 다음에 늙을 것을 그랬어. 현명하기 전에 늙어서는 안 되거든.”
우리나라의 마당극이나 이탈리아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가 떠오르기도 하는 사각 무대는 정면을 제외하고 극 중 모든 인물들이 무대를 둘러싸고 앉아 있다. 그리고 앙상블 역할 등 단순하고 복잡한 인물들을 아우르는 어릿광대와 주체적으로 인물들이나 시대를 비판하는 역할의 피에로로 등장하여 모든 인물에 대한 설명과 비판을 이어가며 인물관계의 파악이 쉽지 않은 고전을 관객들에게 쉽게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교향곡과 가요, 고전의 황실과 기관총 등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들과 패러디들은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공명시키며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자신의 차를 ‘리어카’라 이야기하고, 조용필의 ‘허공’을 부르며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을 노래 부르는 ‘리어왕’의 모습과 스스로 과거의 엉킨 끈을 잘라내고 자신을 정리하는 마지막 장면은 눈물을 불러일으키며, 희망적인 코델리아와 아프지만 경외심을 들게 만들던 리어왕의 모습으로 작품 “리어외전”은 익히 알고 있던 고전 ‘리어왕’에 매력적인 색채가 더해진 기억을 덧입혀 주었다.
"내가 살던지 뒈지던지 매조지를 져야 되여!"
세종특별자치시가 들어서기 전, 땅 투기로 들썩거리던 조치원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돈에 대한 욕망을 충청도식 유머를 가미해 희극으로 풀어낸 “조치원 해문이”에서 ‘햄릿’의 대한민국 버전 ‘해문이’는 이장이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연극에 대한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떠밀려 내려온 마흔이 가까운 아픈 청춘이다.
상처를 준 이는 기억도 못 할 듯 한 지워지지 않은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욕망을 가지게 된 삼촌을 비롯해 겉으로 잘 보이지 않은 상처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드라마는 시종일관 이철희 연출의 특유의 아재개그식 위트와 독특한 마임에 가까운 동작들로 실소와 박장대소를 오고가게 만든다. 그리고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현란한 조명과 움직임이 가득한 이철의 연출 특유의 반어적인 표현은 그들의 절망적인 현실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고전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만든 두 작품은 원작의 사회 비판을 놓치지 않고 현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옮겨온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종속적으로 매인 수동적인 관계를 깨뜨려 버리고 각자 깨달음과 행복을 누려야 할 ‘개인’으로 부각시킨다. 그렇기에 익숙함 속 새로움을 그려낸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스러울 다음 작품도 ‘조치원 해문이’의 프롤로그 격이라는 충남시리즈 2탄이 될 다음 작품도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