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그리고 마음 속 거리에 대한 사소하고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 연극 "어슬렁"이 소수의 관객들에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지난달 14일부터 24일까지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극장 신촌극장에서다.
마스크를 한 두 인물이 코로나19로 인해 휴강을 한 옥탑방 조소교실에 각자 들어선다. 휴강 공지를 보지 못한 이유로 바깥과 분리된 공간에 단 둘이 남겨진 두 사람. 마스크를 한 만큼, 둘 사이의 빈 테이블 길이만큼 서로 거리를 두고 작업에만 집중한다.
어색한 시간의 흐름 속에 한 두 마디 툭툭 건네던 말들은 점차 대화가 되고, 어느덧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웃고 또 위로를 전한다.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만이 비추는 무대에는 영미와 자연의 목소리만 무대를 메운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느새 흉상을 완성한 두 사람은 닫혀 있던 옥탑방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멀리 바깥을 바라본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는 한 사람과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얼굴을 조각하는 한 사람의 시선의 방향은 다르지만, 보는 것은 같은 듯 하다.
사람의 얼굴은 자신이 보는 스스로의 얼굴과 남이 보는 얼굴이 같지 않다.
우뇌의 이미지 인식 기능으로 한 쪽 얼굴만 보고, 거울로 보는 자신의 얼굴을 좌우가 바뀌는 것 외에도 우리의 뇌는 한 번 인식된 기억을 눈으로 비춘 세계에 다시 덧씌우기도 하기에,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는 나도, 상대방이 바라보는 나도 모두 '나'일 것이다.
관계의 시작은 누구나 어색하고, 누구나 서투르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본인에게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지만, 그 서투름을 바라보는 이가 짓게 되는 웃음은 서로의 거리를 오히려 좁혀주기도 한다.
처음 만났을 때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않을 듯 어색하기 그지 없던 두 사람은 깊은 속 마음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르며 서로의 거리를 좁혀간다. 코로나로 야기된 펜데믹은 우리의 사이들에 물리적 거리 뿐 아니라 마음의 거리까지 벌려놓았다. 그리고 그 간극들은 쉽게 다시 돌아오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별 것 아닌 작은 관심과 말들로 '어슬렁'거리며 쉽게 좁혀 나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지어진 신촌극장은 신촌역 부근 아직 예전의 정취가 살아있는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옥탑극장이다.
때때로 지나가는 기차의 소음이 들리고 창을 통해 보이는 반대편 주택이나 조명에 따라 거울처럼 관객석이 비추는 등 재미있는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조용한 골목 안 초록색 대문을 열고 조용조용 계단을 올라 옥탑극장에서 만난 907의 연극 '어슬렁'은 작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한 폭의 수채화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따뜻하고 소담스런 매력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