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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 마음 속 거리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907의 "어슬렁"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20/05/30 19:45 수정 2020.06.01 18:25
컨셉사진 | 비가 오던 공연 관람일, 하얀 우산을 쓰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배우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 /ⓒAejin Kwoun
컨셉사진 | 비가 오던 공연 관람일, 하얀 우산을 쓰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배우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 /ⓒAejin Kwoun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그리고 마음 속 거리에 대한 사소하고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 연극 "어슬렁"이 소수의 관객들에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지난달 14일부터 24일까지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극장 신촌극장에서다.

공연사진 /ⓒ박태준
공연사진 /ⓒ박태준

마스크를 한 두 인물이 코로나19로 인해 휴강을 한 옥탑방 조소교실에 각자 들어선다. 휴강 공지를 보지 못한 이유로 바깥과 분리된 공간에 단 둘이 남겨진 두 사람. 마스크를 한 만큼, 둘 사이의 빈 테이블 길이만큼 서로 거리를 두고 작업에만 집중한다.

공연사진 | "Esperare", 기다릴게 언제까지나. 어색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 노래. 들리지 않는 기다림의 말들이 무대 벽을 빼곡히 채운다. /ⓒ박태준
공연사진 | "Esperare", 기다릴게 언제까지나. 어색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 노래. 들리지 않는 기다림의 말들이 무대 벽을 빼곡히 채운다. /ⓒ박태준

어색한 시간의 흐름 속에 한 두 마디 툭툭 건네던 말들은 점차 대화가 되고, 어느덧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웃고 또 위로를 전한다.

공연사진 | 'Kokomo' 댄스? We will be falling in love. To the rhythm of a steel drum band. Down in kokomo.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는 새,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고요한 흥분과 즐거움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박태준
공연사진 | 'Kokomo' 댄스? We will be falling in love. To the rhythm of a steel drum band. Down in kokomo.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는 새,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고요한 흥분과 즐거움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박태준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만이 비추는 무대에는 영미와 자연의 목소리만 무대를 메운다.

공연사진 | '사랑니'. 난 이제 하나 났어요...난 이제 하나 남았어요...고요함 속에 귀가 열리는 순간을 기대했던 설유진 연출의 의도와 달리 관람일 당일에는 장대비가 내렸고...의도와는 달랐지만 빗소리 속 어두운 속에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또 다른 정감어린 느낌을 안겨주었다. /ⓒ박태준
공연사진 | '사랑니'. 난 이제 하나 났어요...난 이제 하나 남았어요...고요함 속에 귀가 열리는 순간을 기대했던 설유진 연출의 의도와 달리 관람일 당일에는 장대비가 내렸고...의도와는 달랐지만 빗소리 속 어두운 속에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또 다른 정감어린 느낌을 안겨주었다. /ⓒ박태준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느새 흉상을 완성한 두 사람은 닫혀 있던 옥탑방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멀리 바깥을 바라본다.

컨셉사진 /ⓒAejin Kwoun
컨셉사진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는 정말 친하고 편한 사이라고들 한다. 그런 사이...누구나 가지고 싶은 인연 아닐까? /ⓒAejin Kwoun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는 한 사람과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얼굴을 조각하는 한 사람의 시선의 방향은 다르지만, 보는 것은 같은 듯 하다.

사람의 얼굴은 자신이 보는 스스로의 얼굴과 남이 보는 얼굴이 같지 않다.

우뇌의 이미지 인식 기능으로 한 쪽 얼굴만 보고, 거울로 보는 자신의 얼굴을 좌우가 바뀌는 것 외에도 우리의 뇌는 한 번 인식된 기억을 눈으로 비춘 세계에 다시 덧씌우기도 하기에,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는 나도, 상대방이 바라보는 나도 모두 '나'일 것이다.

컨셉사진 /ⓒAejin Kwoun
컨셉사진 /ⓒAejin Kwoun 

관계의 시작은 누구나 어색하고, 누구나 서투르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본인에게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지만, 그 서투름을 바라보는 이가 짓게 되는 웃음은 서로의 거리를 오히려 좁혀주기도 한다.

처음 만났을 때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않을 듯 어색하기 그지 없던 두 사람은 깊은 속 마음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르며 서로의 거리를 좁혀간다. 코로나로 야기된 펜데믹은 우리의 사이들에 물리적 거리 뿐 아니라 마음의 거리까지 벌려놓았다. 그리고 그 간극들은 쉽게 다시 돌아오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별 것 아닌 작은 관심과 말들로 '어슬렁'거리며 쉽게 좁혀 나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품 "어슬렁"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설유진 연출과
밝게 웃고 있는 작품 "어슬렁"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설유진 연출과 서영미 역 하영미 배우, 이자연 역 옥자연 배우  /ⓒAejin Kwoun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지어진 신촌극장은 신촌역 부근 아직 예전의 정취가 살아있는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옥탑극장이다.

때때로 지나가는 기차의 소음이 들리고 창을 통해 보이는 반대편 주택이나 조명에 따라 거울처럼 관객석이 비추는 등 재미있는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조용한 골목 안 초록색 대문을 열고 조용조용 계단을 올라 옥탑극장에서 만난 907의 연극 '어슬렁'은 작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한 폭의 수채화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따뜻하고 소담스런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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