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시간의 강제성을 거부하고 우리의 박제된 기억들을 제대로 마주해보고자 하는 "전시극 <2020망각댄스_4.16편>박제(이하 '박제')"가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그 날의 기억 속 여러 느낌들을 극단 신세계의 색으로 연도별로 풀어내며 관객들과 기억의 시간을 함께 했다.
2017년부터 극단 신세계는 장기프로젝트 『'망각댄스' 시리즈』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변화된 일상 속에서 공연이 공연으로 생존하기 위해 기존의 '다크투어리즘' 형식에서 벗어나 '전시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였다. 사회 전체가 재난을 경험하고 있는 2020년 지금, 재난은 개인화되고 피해자에 대한 애도는 부재하고 있다. 재난을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곧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의 역량이기에, 작품 "박제"는 코로나 19를 겪어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기억과 애도를 제안하고자 한다.
도슨트가 안내하는 2020년 전시에서 기억을 '입력'하면 두 그룹으로 순방향(2014~2019년)과 역방향(2019~2014년)으로 나뉘어 동시에 6개의 공간, 6년의 시간의 관람이 진행된다. 방향에 대한 결정은 관람 당일 티켓 수령 시 선착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전시 특성 상 관람객들의 시간(핸드폰, 시계 등)을 도슨트들이 안전하게 보관하였다.
2014년으로 가는 길은 아주 좁다. 그 문을 지나가서 어두컴컴하고 부스러진 파편들이 즐비한 공간에 들어서 작은 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둘과 어우러지던 순간 들려오는 나레이션의 소리에 한숨을 짓고, 그들의 놀람과 한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기억 속 그 날의 망연자실함을, '가만히 있어'라는 말에 몸소리치며 떠올린다. 내 몸 또한 한 동안 이어지던 무력감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말의 파도'에 실려가다 보면 2015년이 보이고 담쟁이 덤불이 덮여 있는 직사각형의 길쭉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무수히 많은 소리들을 듣게 된다.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누구나 전문가임을 자처하던 그 말 중에 '진실'은 얼마나 있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기억하고 있는 그 사건에서 진실은 무엇일까? 어디로 향해야 할지, 무엇을 향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때 외침에 답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밖으로' 나가면 막다른 길에 2016년이 있다. 촛불들이 줄지어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 작은 등에서 나오는 불빛의 흔들림이 파도처럼 느껴지는 문을 지나면 촛불을 든 한 사람이 있다. 그토록 슬픈 사건이 어째서 2년이 지난 그 때까지 밝혀진 것이 없을 수 있었는지는, 그 때도 지금도 알 수 없다. 그 답답한 벽을 넘어서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까?
어둡고 작은 지하실에서 계단은 올라 담을 넘으면 '잔치'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가다보면 2017년이 펼쳐진다. 조용한 촛불의 혁명으로 흡사 축제와도 같았던 그 날을 너무나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며 거짓말같이 7시간만에 물 밖으로 올라왔던 세월호의 잔상이 눈 앞을 스쳐간다. 하지만...바뀐 것은 없었다. 2017년 3월 31일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이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으며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박을 떠뜨렸던 마당으로 계단을 내려와 전면에 보이는 2층집에 들어서면 '보경이 방'이 나온다. 돌고 돌아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던 2018년이 나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아프고 슬픈 기억을 조금은 밀쳐두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기억은 너무나 아프기에 멈춰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멀리 서 있는 보통의 우리는 그래도 기억하겠다고 'Remember416'을 새기고, 노란 리본을 뗄 수 없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 하고 싶었다.
기억들을 상자 안에 넣고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던 그 때, 사방을 둘러보면 '찐TV'의 2019년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공소시효 만큼 4.16은 우리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닥에 빼곡히 붙어 있던 기억의 기록들과, 모니터 채팅창에서 올라가는 사건의 기록들을 마주하면 우리는 4.16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핸드폰과 모니터 속 세상과 더욱 친숙해진 만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 속에서 사라져 가는 기억을 잡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실'을 밝힐 수는 있는 것일까?
그리고 2020년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다시 시작해 본다. 기억을 '박제'하는 것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가벼이만 하고 싶지는 않다.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4.16참사 관련 범죄 가운데 공소시효가 없는 살인과 공소시효 10년에 해당하는 1~2개의 죄목들을 제외하면, 공소시효 5년과 7년에 해당하는 범죄가 대부분이다. 공소시효 5년에 해당하는 범죄들은 2019년 4월 15일 공소시효 완성으로 수사할 수 없게 되었다. 내년 4월 15일에는 공소시효 7년에 해당하는 범죄들도 더 이상 수사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세월호 참사 관련자 대부분이 수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면죄부를 받게 된다. 또한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증거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폐기되고 있다.
4.16참사 6주기가 지났지만, 4.16참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이전의 다른 참사들 역시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극단 신세계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4.16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기 때문에 올해도 계속해서 <망각댄스_4.16편> 공연을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망각댄스_4.16>편이 계속될 필요가 없기를 소망하고 있다.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은 오감으로 느낀 모든 것들이 함께 한다. 그렇기에 낡고 바스러지고 칠이 벗겨진 공간 속에서 다시 돌아본 4.16에 대한 기억은 '행화탕'과 함께 갈 것 같다. 공간과 말과 사람들이 전하던 메시지의 무거움을 아직은 마음 속에 그대로 남겨두려 한다. '진실'을 알게 될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