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관객들과의 신명 난 마당놀이, 전통극적인 과장 속에 허균, 홍길동, 광해, 이이첨 등이 펼치는 발칙하기 그지없는 연극, “허길동전”이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대학로 씨어터 쿰에서 관객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의 문을 함께 열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조선 시대에 괴물로 칭해졌던 허균, 왕권과 사대부의 세계관을 부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주요 관직에 머무르면서 언문으로 글을 쓰고 홍길동과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얻고 싶어 했던 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의 삶을 광해, 이이첨이라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인물들과의 마지막 술자리는 허균이라는 이상주의자의 안식처가 되었던 매창과 이상향 속 인물의 갈등을 통해 산받이가 이끄는 관객들과의 놀이판으로 신명 나게 이어진다.
술에 취하고, 이상에 취하고, 우정에 취한 자들의 죽음을 즐기는 마당판 “허길동전”은 이금구 작가와 박일석 작가의 마당놀이 판을 김관 연출의 시각을 더해 산받이를 통한 객석과 배우, 관객의 소통이 원활한 꼭두각시놀음과 마당놀이의 환경으로 허균의 마지막 새벽을 전통극적인 과장을 입혀 재구성하였다. 오브제를 이용한 단출하게 열린 공간으로 구성된 무대와 3면으로 구성된 객석, 라이브 연주와 영상의 적극적 활용과 현실과 상상을 비추는 조명은 무대를 현대판 마당놀이판으로 만든다.
술에 취한 이들이 벌이는 다소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무대 위 시간과 공간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광해군 10년, 1618년 10월 12일 역적으로 사지가 찢겨나간 허균과 혹자는 광해군을 불행하게 만든 이라 일컫기도 하는 이이첨, 세자시절과 재위 시절 극명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걸은 광해, 조선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부인에 비견되는 순수한 플라토닉 러브를 꿈꾼 허균의 시벗 매창, 허균의 사대부 의식에 갇힌 유토피아 율도국을 버리는 홍길동 등에 대해 굳이 알지 못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가는 자신들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풀어내고, 연출은 시ㆍ공간의 동시성을 관객들이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맘껏 자신의 색채를 뿜어낸다. 그리고 그런 작가와 연출의 넘치는 소망을 무대에서 펼쳐내는 배우들은 온몸을 사리지 않고 각자의 매력을 최대한 발산한다. 이렇게 미치도록 나를 보라고 외쳐대는 즐거운 외침을 무대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다양하고 재미난, 무대의 매력을 제대로 살린 그런 지극히 공연다운 공연들을 보고 싶다고 소망하고 있다. ‘연극제’에서 관객들이 바라는 연극은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 잡거나 구태의연한 극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은 서툴지만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는 연극들을 단순하게 좋다나 나쁘다고 평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지는 않을까? 다양한 연극의 판은 관객들이 응원이 있어야만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연일 매진으로 표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아우성들이 SNS에 이어지던 연극 ‘허길동전’의 발칙하고 설익은 매력이 관객들의 응원으로 무럭무럭 자라 11월 재연에서는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