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아니타와 데이비, 2명이 여백이 가득한 무대에서 펼치는 대화들로 채워진 작품 '빈센트 리버'가 120여 분의 시간을 찰나로 여겨지는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 사진작가, 작사가, 공연 예술가인 동시에 라디오 드라마도 집필하며 다양한 매체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필립 리들리(Philip Ridley)가 희곡을 쓰고 직접 연기까지 보였던 연극 '빈센트 리버'가 신유청 연출이 이끄는 연극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나 동성애 혐오와 혐오로 인한 범죄에 대한 고찰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과연 나는 타자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2시간 동안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작품 '빈센트 리버'는 피해자이면서 방관자이고, 혐오와 편견을 지닌 우리의 마음속에 작음에도 길고 큰 아픔을 주는 작은가시같은 불편함을 안겨주고 있다.
작가 필립 리들리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 동부의 배경을 지형과 장소, 그리고 분위기까지 자세하게 그려냈다. 비행을 일삼는 거친 청소년들의 범죄, 그리고 대중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그로 인해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숨어들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작품을 연출한 신유청 연출가는 “이 작품은 결국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음으로 시작하여, 누군가의 아픔을 마치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목적지로 나아간다. 우리의 삶 곳곳에는 불평등의 요소가 늘 내재해 있고, 우리가 같지 않고 다르다는 지점에서 결국엔 비뚤어진 사고와 혐오의 감정이 일어나기 마련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동성애 혐오와 혐오에 기인한 폭행 살인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아들 빈센트를 잃은 ‘아니타’와 그런 ‘아니타’의 주변을 맴도는 미스터리한 인물 ‘데이비’의 긴 대화 끝에 아니타는 진짜 빈센트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연기파 배우 전국향, 서이숙, 우미화, 이주승, 강승호는 절망과 동시에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는 혼란을 느끼는 ‘아니타’와 어딘가 불안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데이비’를 자신만의 호흡과 색채로 저마다 다른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작은 행동, 눈빛 하나하나 각자의 의미를 담아내는 배우들의 연기와 서로 다른 앙상블로 만나는 배우간 다양한 스펙트럼은 불편한 이야기의 작품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 작품을 안 본 이들이 있을지언정, 한 번만 만나본 이들이 많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현재 개별적 차별금지법만이 조각조각 난 채로 남아 한계가 명확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소망해 본다. 사회 속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암묵적 침묵으로 길든 우리들의 마음속 이야기에 눈을 뜨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반성하고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희망이 그려지길 바라는 연극 '빈센트 리버'는 오는 7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블랙에서 만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