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국립발레단의 다섯 작품이 MODAFE에서 선한 예술적 영향력을 펼치는 대한민국 무용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Center Stage of Korea 프로그램으로 지난 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의 아쉬움을 자아내며 무대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첫 번째 작품 ”메멘토 모리: 길 위에서...“의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까?'에서 시작된 작품은 한국 전통장례에서 영감을 받아 죽음의 간접경험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삶속에서의 죽음의 의미와 죽음 속에서의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연결성과 주관적 경험을 통한 시간 속 삶을 이야기하고 인생의 길 위에서 삶과 죽음을 돌아보고자 하고 있다. 창과 클래식음악이 어우러진 가운데 까만 무대 위 백과 적의 조명 아래 발레리나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를 처연하게 만들어 주었고, 사물놀이와 함께 바빠진 그들의 움직임은 발레의 선과 한국무용의 선의 조화를 아름답게 이뤄냈다.
작품을 안무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박나리는 2015년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Movement series 1’를 통해 안무가로 데뷔했다. 시인 이상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한 데뷔작 ‘오감도(烏敢圖)’를 시작으로, 개성 강한 안무작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2020년 안무작 ‘메멘토 모리: 길 위에서...’으로 ‘제23회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페스티벌 2020’에서 특별상을 받은 바 있다.
두 번째 작품 “발레 101”은 클래식 발레의 기본자세와 동작, 방향을 기준으로 정해진 다수의 포지션을 소재로 에릭 고티에가 안무한 작품으로 발레의 5가지 기본 포지션에서 시작된 발레 동작 101가지가 쉴 새 없이 펼쳐지며, 하나하나의 발레 동작이 모여 하나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가는, 2007년 독일 하노버 발레협회로부터 관객상을 받았으며, ‘발레를 사랑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평으로 발레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에릭 고티에는 캐나다 태생의 다재다능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199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후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2007년 10월 자신의 이름을 딴 ‘고티에 무용단’을 설립했다.
세 번째 작품 “Are you as big as me?”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로만 노비츠키의 작품으로 2013년 8월 노브레 소사이어티 젊은 안무가 부분에서 초연되었다. 세 마리의 원숭이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세 명의 무용수가 보여주는 익살스럽고 쉴 틈 없는 움직임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이다. 세 남성 무용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원숭이 묘사는 매력적인 웃음을 안겨주었다.
로만 노비츠키는 슬로바키아 태생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200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후, 2015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2013년에 안무한 ‘Are you as big as me?’으로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으며, 2020년 유럽 크리스틱 초이스에서 안무작 ‘Everybody Needs Some/Body’가 베스트 프리미어로 선정되었다.
네 번째 작품 “The Piano”는 피아니스트 조재혁 부부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피아니스트와 피아노의 관계는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며,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 그녀는 자신의 본신이며 연인이고, 피아노 역시 피아니스트 그가 없다면 차가운 사물에 불과하다. 피아니스트의 터치에 피아노는 적막에서 깨어나, 드뷔시의 ‘Rêverie L. 68’을 노래하며 남녀의 원숙하고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달빛 아래 몽환적으로 그려낸다. 그들의 사랑은 세속적이지 않고 통속적이지 않으며 서정적이고 애절함이 가득하다.
이영철은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이자, 현 발레마스터이다.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Movement Series’를 통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새로운 안무작을 발표한 이영철은 ‘The Piano’, ‘계절; 봄’ 등 서정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다섯 번째 작품 “요동치다”는 물가에 던진 돌멩이 하나에 물결이 요동치듯 사람의 마음속 심연에 던져지는 수많은 자극들 그리고 그 자극에 요동치는 우리 소용돌이처럼 요동치는 심연이 잠잠해질 때까지 이르는 순간순간을 그려내며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늘 많은 고뇌와 두려움 그리고 좌절과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는 원초적인 느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자극들에 요동치는 내면을 무용수로서 잠재우고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나가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의지를 담아냈다.
강효형은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로, 2015년부터 시작된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Movement Series’에 꾸준히 안무작을 발표하며 무용수뿐만 아니라 안무가로서도 입지를 탄탄히 굳히고 있다. 안무 데뷔작 ‘요동치다(2015)’로 2017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 안무가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강효형은 ‘허난설헌-수월경화(2017)’을 통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첫 전막 작품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후 국립발레단의 신작 정기공연 ‘호이 랑(2019)’의 안무를 맡아 2막으로 구성된 대작에서도 탁월한 안무 능력을 입증하며 안무가로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16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최고의 파드되 상'을 수상한 전호신 발레리노를 비롯하여 국립발레단의 전막발레에서 주역무용수의 그늘에 가려 숨은 실력을 뽐내기 어려웠던 무용수들까지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던 이번 무대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숨겨진 재능과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들의 단 한 번의 공연을 너무 아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