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풀어내는 안경모 연출의 작품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아래 스웨트)가 지난 18일부터 오는 7월 18일까지 한 달간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띤 땀으로 가득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해외연극계의 트렌드를 살펴보고 해외 최신 우수작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매년 1~2편의 해외신작을 제작해 온 국립극단은 올해는 노동, 성차별, 인종차별, 경제 불평등 등의 이슈를 모두 담아 브로드웨이에 파란을 일으킨 화제작 “스웨트”를 선정하였다.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린 노티지의 작품 "스웨트"는 미국의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소도시 펜실베니아에 자리잡은 철강산업도시 ‘레딩’을 배경으로 노동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노동자와 사측의 대립, 노동자 간 분열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경제난민의 유입과 경제적 불안정은 거의 모든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작품의 배경이 미국이지만 우리와 멀지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IMF의 급속한 변화와 그 이후 2000년대 이야기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 "스웨트"를 연출한 안경모 연출은 “이 작품은 노동, 인종 이슈를 뛰어넘어 ‘인간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우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인지, 노동 상실로 인한 사회활동의 파괴와 문화적 공황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타인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포항제철에서 올해 일어난 노동자 6명의 사망사고가 문득 떠오르는 건, 철강산업도시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2014년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 그리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급여의 70% 지급과 탄력적 유급휴업 등은 단지 포스코만의 문제일 수 없다. 작품 속 이야기가 끝이 나는 현시점에서도 글로벌 철강 시장의 생산설비 가동이 멈추고 있다. 물론 생산설비 가동 중단은 철강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스웨트”의 배경이 되는 ‘레딩’의 이야기는 먼 나라 미국의 이야기만이 될 수가 없다. 이 작품이 현재 우리 이야기이고, 우리 미래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런 변화를 감내할 여력이 없는 이들부터 스러지고 있다. 팬데믹의 여파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고, 장기화되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를 잃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몇 달치 소득이 없어도 생계에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여력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기업부터 개인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임시직과 일용직 그리고 여성과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정책에서조차 소외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은 고용시장에서 구직 활동을 쉬거나 단념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그들의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팬데믹이 오기 이전에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는 수차례 있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가치의 모든 것"에서는 1975년에서 2015년 사이 미국의 실질 국내 총생산은 5.49조 달러에서 17.29조 달러로 대략 세 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기간에 생산성도 60% 가량 성장했지만, 1979년 이래 미국 노동자 대다수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은 이윤을 장기적으로 생산에 재투자하는 데 쓰기보다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데 쓴다. 그 결과, 2015년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62명이 소유한 부의 총합은 세계 인구 절반인 하위 35억 명이 소유한 것의 총합과 비슷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업가들과 노동자들이 인식하는 '가치'의 차이는 경제학적 개념 뿐 아니라 정치적인 개념으로 그 지표들은 늘 중립적이지 않았다. 주주 가치 극대화 논리 속에서 '주주들은 가장 큰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는 주체'라는 개념이 달라지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언제나 교체할 수 있는 기기의 부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경제에서 우리 시장의 노동자들은 '가치'의 창조자에서 배제되는 게 정말 맞는 것일까? 영국 일글랜드 출신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노동자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게임에 들어선 처지"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누군가를 위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그가 그의 노동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고, 진정한 화해는 내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사과할 때 가능하다 이야기하는 연극 "스웨트"는 결말에 이르러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새 다인종, 다민족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도 노동의 가치 뿐 아니라 인종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까지 다양한 감정과 상충하는 입장들 사이에서 직접 갈등을 경험하면서 우리 내면을 차지하는 생각의 잣대를 가늠토록 만들고 있다.
국립극단은 ‘동반자 외 좌석 한 칸 띄어 앉기’ 예매시스템을 이번 “스웨트”부터 시범 운영한다. 일행끼리는 최대 4매까지 연속된 좌석을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된 좌석 좌우로 한 칸 거리두기가 자동으로 지정되어 동반자 간 따로 앉을 수도, 같이 앉을 수도 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일행 간 동반 관람을 쉽게 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공연을 너무나 만나고 싶은데도 표를 구할 수 없어 관람하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거리두기 세부지침을 준수하면서 최대한 좌석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