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2010년대 유럽 사회의 복잡한 이면을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보다 다각도로 분석하고 통찰한 연극 “7분”이 11명의 여성 배우들의 출연만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지난 16일부터 오는 2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제안서의 찬성과 반대를 판가름할 마지막 한 표가 될 대답을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과 여성,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촉발할 수 있는 여러가지 분노를 11명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
실제 프랑스의 노동현장을 모티브로 2014년 이탈리아에서 연극으로 초연되었던 이번 작품 “7분”은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유급휴가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는 내용이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럽국가 중에서 상당히 체계적으로 노동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프랑스에서조차, 노동·인종·교육의 문제는 8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바라보기에 이질적이지 않다. 2010년 프랑스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민자 중의 37%가 임시직으로 상당히 불안한 고용상태였다.(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2012년으로, 이쌍고(Yssingeaus) 지역에 있는 르자비(Lejaby) 공장의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인종차별 문제 특히 프랑스 사회의 변화, 수차례의 테러로 인한 아랍세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이주자들의 취업 시장은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현재도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극작 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희곡 ‘허연 적막의 향기’로 ‘돈텔리 상(Tondelli Award)’을 수상하며 이탈리아 연극계의 샛별로 뛰어오른 “7분”의 작가 스테파노 마시니(stefano massini)는 냉철한 시선으로 동시대 문제에 귀 기울이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변혁을 보여준 작품 ‘리먼 트릴로지’의 NT Live로 대한민국의 관객들과 처음 만났던 작가는 이번에는 프랑스의 노동현장을 다룬 이번 작품 “7분”은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깨인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가 되고자 하는 극단 파수꾼 이은준 연출의 색채가 담긴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스테파노 마시니는 프랑스, 미국 뿐 아니라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페루, 멕시코에서 러시아 등까지 다양한 나라를 배경으로 계속해서 냉철한 시선으로 동시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번 작품 “7분”의 희곡은 레지날드 로즈 감독의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기법을 감각적으로 차용해 극작했기에 작품을 이어가는 초반에는 굳이 모든 배우가 왜 모두 여자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섬유회사의 특수성을 제외하더라도 생산직과 사무직 모두 왜 여자여야 했을까? 작가는 물론 11명의 남성의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여성을 맨 앞에 세워 고질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측면을 이야기에서 영리하게 제외했다. 이는 여성이 이데올로기와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뜻보다는, ‘노동’이라는 본질적인 핵심에 좀 더 접근하게 해주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끄집어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프랑스에 자리 잡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섬유회사 Ricard&Roche는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 다국적기업에 매각되고, 그들은 10명의 각 부서 노동자에게 단 하나의 제안을 한다. 30년 전 같은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휴식 시간 45분을 허용했다면 현재는 30분을 줄인 15분뿐이지만 이제는 8분으로 줄이려고 한다. 15분에서 7분을 줄이는 것은 이민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대다수 노동자에게는 기꺼이 고용인들에게 제공하기에 정당하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노동자들은 억압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11명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며 선택권을 주는 듯한 세련됨으로 포장된 노동력 착취에 대한 문제는 일면 작아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어 노동자만의 권리문제가 아니라 일을 위해 노동자가 어디까지 포기해야만 하는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시간 주권(working time sovereignty)은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포함한 삶의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간 주권이 사용자에게 집중될 수 있는 탄력근무제가 오히려 지나친 과로와 공짜 야근을 방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보다 더욱 불안한 상태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달콤한 말로 포장되며 수수료 조정만으로 필요한 보호장치 없이 값싼 노동력을 받고 있음을 감추고 있다. 그들의 딜레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억압되고 닫힌 틀에 길들여진 우리의 생각을 깨운다. 그들의 딜레마는 우리 모두의 딜레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의 제안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견을 제시하는데 찬반을 가를 마지막 표가 당신 손에 들려 있다.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